욕 먹었다. 좋은 일 하고 욕먹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건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우라는 거였다. 모범생처럼 남을 도왔는데, 욕을 먹었다. 제기랄. 누군가 자신을 도와줬으면, 당연히 고마워해야 되는 건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조상들의 지혜가 대단하다. 당연히 처마 끝에 있어야 할 어처구니가 없는걸 보고, 수백 년 뒤 후손이 분명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겠구나 예견해 표현을 만들어 두셨다.
"생각하니까 또 어처구니없네."
차에 올라탄 뒤 씩씩대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계속 뭔 일이냐고 물었다. 생각하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었다. 침묵과 "아 몰라"로 일관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으며, 조용히 고깃집으로 갔다. 고기는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과 목살을 먹었다. 저기압일 때 고기 앞으로 오라 했던가. 육즙이 흐르는 고기를 먹으니 빡침이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사라졌다.
"사장님 소주 하나 더 주세요. 아 맥주도요."
"뭘 두 개나 시켜 하나만 시켜"
"아 싫어 나 섞어 마실 거야. 막지마."
잠시 뒤 사장님이 소주와 맥주를 가져다주셨다. 맥주잔에 소주 두 잔을 붙고, 나머지는 맥주로 채우고 벌컥벌컥 마셨다. 달달했다. 마법 같은 술이다. 소주만 마시면 쓰고 맥주만 마시면 톡 쏘는데 섞으면 달달하게 톡 쏜다. 술을 넘기고 고기 두 점에 밥 한술을 떠서 꾸역꾸역 먹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안쓰럽다는 듯이 보더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네가 소냐? 굶었어? 천천히 먹어"
소냐는 말에 순간 사례가 들려 기침이 계속 나왔다. 먹던 밥알이 코로 들어갔는지 코가 아렸다. 급하게 휴지를 찾아 코를 풀었다. 목구멍으로 넘길 때 소냐고 말할 건 뭐야 대체. 속을 달래려 남아있던 소맥을 다시 마셨다.
"아니 밥 먹는데 소냐고 말하면 뭐 그건 밥을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일했더니 배고프단 말이야"
"먹어도 천천히 먹으라는 거지. 그리고, 얼굴 좀 펴고 먹어. 맛있는 거 먹는데 표정이 왜 그래."
"아 몰라 욕먹었더니 어이없어서 또 빡치네"
"뭔 욕을 먹어 네가."
후. 나는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까 어르신과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중반부터 무어라 무어라 하는데, 끝까지 올라가더니 왜 지랄이냐고 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아빠가 괜히 어르신 도우라고 해가지고 욕만 먹었잖아."
"어르신이 뭐 욕할 줄 알았냐. 뭔가 사정이 있으셨겠지."
"아니, 사정이 있어도 그렇지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아버지는 알았다는 듯이 진정하라며 내 잔에 술을 따라줬다. 나도 잔에 술을 따라줬다. 건배를 하고 벌컥벌컥 마셨다. 아버지와 나는 대화를 멈추고 서로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돼지 껍데기를 새로 주문해 구웠고, 나는 그 옆에 삼겹살을 새롭게 구웠다. 고기가 익는 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돼지 껍데기에 양념이 잘 베지 않았는지, 껍데기가 팝콘 튀듯 탁탁 튀었다. 사장님이 그걸 보곤 그릴 프레스를 가져와 괜찮으시냐며 눌러 주셨다. 그걸 보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겨서 아버지께 물었다.
"그런데, 아까 어르신 왜 도와드리라고 한 거야. 아는 어르신이야?"
"내가 어떻게 알아. 당연히 모르지."
"그런데 왜 도와드리라고 한 거야."
"아 어르신 힘들어 보이잖아. 너도 나이 들어봐 인마.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힘들어. 그리고 사람이 서로 돕고 살아야 되는 거지, 이기적이게 본인만 잘 살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이야, 나 우리 아빠 이렇게 훌륭한 사람인 줄 몰랐네. 그러면 자식 일당 좀 더 챙겨줘."
아버지는 내 말을 무시하곤 소주를 따라 한 잔 마시곤 다 익은 돼지 껍데기를 꼭꼭 씹어드셨다. 내가 어릴 때는 주말에 등산을 가면 꼭 돼지 껍데기를 먹었던 게 생각났다. 그땐 시뻘건 양념이었는데, 여기서 먹는 건 간장과 된장 그 중간의 어느 색 양념이었다.
"아니 아까 차 끌고 가는데, 그 어르신 울면서 가시더라고. 리어카 끌면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봐." 아버지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보아하니 80은 넘어 보이던데, 그 나이 사람이 한낮에 그렇게 울면서 리어카 끄는데 안쓰럽더라고. 사람이 나이 먹을수록 감정을 숨기기 마련인 건데, 얼마나 힘든 일이 있었으면 그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