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

by 한량


나에게 전화하기 전 아버지는 일을 하나 끝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일의 특성상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부딪힐 일이 잦았는데, 그때도 자주 마주치는 할머니 한 분이 아버지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차를 세웠다.


아버지는 혹시나 아는 사람 마주치면 주려고, 차에 항상 비타민 음료수를 두고 있었다. 그러다 마주치게 되면 꼭 한 병씩을 주셨다. 그런 걸 알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루에 꼭 한 번씩은 그렇게 서서 이야기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먼저 아는 척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먼저 와서 말을 건다고 했다. 몇 번씩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렇다 저렇다를 내게 말했었다.


그때도 차에서 내려 음료수 한 병을 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하루 종일 말하는 분이었다. 본인 자식 이야기, 손주 이야기, 영감님 이야기, 안 하는 이야기가 없다고 했다. 중간에 적절히 끊지 않으면 하루 종일 이야기 들어야 해서 힘든 분이라고. 그때도 이야기가 길어져서 언제 이야기를 끊어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르신이 지나갔다.


"어유 저 사람 뭐가 그렇게 서럽다고 저렇게 운 데야"


아버지는 할머니가 말을 듣고 시선을 옮겼다. 시선이 간 곳에는 한 어르신이 서럽게 울며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얼굴은 고목의 껍질처럼 주름져 있었고, 햇빛을 많이 받아서인지 그을렸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그 어르신을 보고 있었다.


"저 사람도 울 줄도 아나 보네." 할머니가 말했다.

"네? 무슨 말이세요?"

"어? 아 저 사람 성질 지랄맞게 고약하거든. 막 뭐만 하면 막 욕하고. 저번에는 파지 줍고 있길래 가지고 있던 거 줬더니, 막막 욕을 하더라니까."

"왜 욕을 해요?"

"나야 모르지, 주변에 가까이 가려는 사람이 없어. 누가 가까이 가겠어. 뭐만 하면 핏대 세우고 욕을 하는데. 아유 한편으론 안쓰러워.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아버지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어르신을 빤히 쳐다봤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어르신을 쳐다봤을 것이다. 리어카에는 개수를 세기도 어려운 파지가 쌓여 있었고, 종종 깡통이랑 컴퓨터도 보였다. 얼핏 보아도 쓸만한 컴퓨터는 아닌 것 같고, 뭔지도 모를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컴퓨터라는 말에 낮에 컴퓨터를 두고 싸우던 어르신이 생각났다. 어르신 컴퓨터엔 이상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아까 어르신 얼굴도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우수꽝스러운 옷을 입어도, 다른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더니 사실이었다. 그 옷은 기억 날 지라도, 사람은 기억나지 않는다. 상황이 맞다면, 아버지가 본 어르신은 컴퓨터를 두고 싸운 뒤일 것이다. 그리고 내 추측이지만, 어르신이 운 이유는 싸우면서 들었던 이 말 때문일 것이다.


"저 인간 글 몰라요. 지 이름도 적을 줄 몰라."


나는 고기를 오물오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상황을 생각하니 무언가 납득이 갔는지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가 "왜 고개를 끄덕여"라고 말했다. 나는 아까 있었던 이야기를 말했다. 어르신이 컴퓨터를 두고 다른 파지 줍는 어르신과 싸웠고, 경찰이 와서 중재했는데 본인 이름조차 쓰지 못하셨다고.


"까막눈이신가 보네. 고생 많으셨겠어. 세상이 안 보였을 텐데."


아버지는 돼지 껍데기를 오물오물 씹으며 술을 한잔 마셨다. 아버지도 어르신이 울던 이유가 납득이 간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버지가 말한 "세상이 안 보였을 텐데"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메뉴판도 한글로 적혀있고, 마트에 가면 물건도 한글로 적혀있는데 어르신은 파지 주워서 번 돈으로 어떻게 밥을 사 먹고, 음식을 사고, 생계를 이어가시는 걸까. 파지 주워 판 돈이 생계를 책임질만한 돈이 되는 걸까. 글을 모르는데, 돈에 적힌 금액이 얼마인지는 제대로 알 수 있을까.


까막눈이 살아가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 걸까, 까막눈이 살아왔던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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