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가 지났다. 어르신 일을 겪고 나서인지 근 일주일간 리어카 끄는 어르신을 자주 목격했다. 크기가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리어카 종류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리어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것도 있었다.
하루는 몇 개 리어카가 지나가나 세 봤는데, 생각 이상으로 많아서 세다가 포기했다. 갑자기 리어카 끄는 사람 수가 많아진 건 아닐 터다. 원래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친 것일 터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았다니. 오래도록 이 동네에서 살았는데, 동네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지 관심을 두지 않으며, 항상 있던 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리어카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저번에 마주친 어르신인지를 살폈다. 물건 잃어버린 사람이 제 물건과 비슷한 걸 보면 내 것인지 확인해 보는 것처럼 확인했다. 그렇다고 열심히 찾아다닌 건 아니었다. 원래도 시간이 생기면 산책을 자주 하는데, 그때마다 지나가는 리어카를 보면 한번 확인해 보는 정도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인간적인 호기심이 생겼었다. 도대체 까막눈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그리고 어쩌다 그렇게 되셨는지 말이다.
"아우 목말라"
여름이 다가올 즈음이어서인지 햇빛이 점점 강해졌다. 원래도 땀이 많은데 햇빛이 강하니 땀이 더 났다. 당장 마실 게 필요해 편의점에 들어가 이온음료를 샀다. 음료수 하나로는 부족하겠다 싶었던 찰나 1+1 제품이 보여서 바로 골랐다. 계산을 하고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았다.
벤치는 그늘져서 햇빛 피하기가 좋았다. 날이 건조해 그늘에 있으면 시원했고, 바람이라도 불면 기분이 상쾌했다. 거기에 시원한 음료수를 꿀꺽꿀꺽 마시니 더없이 좋았다. 세상의 여유로움은 모두 내가 가진 것 같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틀었다. 살랑살랑한 느낌의 노래였다. 잠시 눈을 감으니 노래 가사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게 낭만이다 낭만. 하지만 낭만은 곧 깨졌다. 한 어르신이 나를 툭툭 치며 깨웠다. 순간 짜증이 났다.
"아이씨 뭐야"
내 눈앞엔 한 어르신이 서서 내 옆에 있던 깡통을 가리켰다. 그 어르신이 이 주 전에 내게 욕을 했던 그 어르신이었다. 내 기억보다 훨씬 더 주름이 깊었다. 이 정도는 아니셨던 것 같으데, 확실히 사람 기억은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싶었다. 한편, 어르신은 이미 나 같은 건 잊어버렸다는 듯 내 옆에 있는 깡통에만 관심을 두셨다.
"그거 버릴 거야?"
깡통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아직 음료수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돈 주고 산 건데 마실 건 다 마셔야지. 게다가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 게 기분 나빴다. 인간적인 호기심이 있는 거지, 이 어르신에게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동정심도 없었다.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제대로 모르고 지금 모습만 보고 동정하고 싶지 않았다. 동정하면 괜히 약한 사람 취급하게 되는 것 같아서 싫기도 했다.
"아직 덜 마셨어요. 왜요."
내가 생각해도 말에 가시가 있었다. 어르신은 덜 마셨다는 말에 실망했다는 듯 말없이 뒤돌아 쓰레기통 쪽으로 갔다.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어서인지 그 쓰레기통은 항상 쓰레기가 넘쳐 있었다. 플라스틱 컵, 비닐봉지, 깡통 갠, 담뱃갑 등등 안 떨어져 있는 게 없었다. 어르신은 그쪽으로 가더니 깡통만 골라서 담으셨다. 고철로 팔면 돈이 되는 듯싶었다. 저런 걸 고물상에 팔면 얼마나 받을까. 내가 마시고 있는 음료수가 하나에 600원꼴인데, 이거 하나 팔아봐야 100원도 안 나올 것 같았다. 풍족히 잡아 100원이라고 쳐도, 10개 주워야 천 원이다. 1시간 주워봤자 최저시급에도 못 미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어르신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궁금해서 물어보고는 싶은데, 저 어르신 성질상 쉽게 답을 줄 것 같지는 않고 저번처럼 욕 안 들으면 다행이다 싶었다.
"아 어쩌지"
마주친 이상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무엇보다 지금 아니고 나중에 만나면 내가 별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았다. 쇠뿔도 당긴 김에 빼라고 했다. 저 어르신에게 욕먹지 않고 말을 걸면서, 궁금한 걸 물어보려면 무언가가 필요했다. 저 어르신이 구미가 당길만한 무언가가 말이다. 아 근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나랑 상관도 없는 저 어르신한테.
"이제 다 먹었어?"
어르신은 어느새 나한테 다시 와서 내가 들고 있는 깡통을 가리켰다. 기어코 내가 쥐고 있는 캔을 가져가시려는 것 같았다. 음료수도 이미 다 먹은 뒤였다. 아직 덜 마셨다는 변명도 소용없었다. 습관이 무섭다고 다 마신 캔을 꾸기는 버릇이 있는데, 내가 손에 쥔 건 이미 다 꾸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주고 나면 어르신은 이제 굿바이다.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지, 어쩌지. 그때 마침 떠오른 게 있었다. 이거면 어르신한테도 도움이 되고, 나도 시간을 조금 벌 수 있다. 욕을 먹지도 않을 거다.
"어르신, 책도 가져가세요? 한 세 박스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