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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어르신을 마주친 편의점에서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가 걸렸다. 가면서 우선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어르신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다. 내가 이 어르신의 삶을 도울 수는 없고, 그럴 마음도 솔직히 별로 없지만 이 분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한 번쯤 들어보고 싶었다.


집에 가면서 내 상상력을 발휘해 시나리오를 짰다. 책을 드리고, 무거우니 집까지 가는 걸 도와드리겠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르신이 있는 사는 곳까지 가는 거였다. 허접하지만,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마침 오늘 주말이었다. 고물상도 문을 닫아 팔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계획이 완벽해 보였다.


다행히 어르신은 내 말에 수긍하곤 가자고 하셨다. 세 박스의 책이 있다는 말에 반가운 기색이 눈에 역력했다. 설령 이 어르신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해도 괜찮았다. 어르신께 드리려는 책은 어차피 처리해야 할 책들이었다. 중고서점에 팔 수 있는 책은 다 팔고, 더 이상 팔 수 없는 책들이었다. 그래도 내가 직접 사고 읽었던 책이라 버리기 아깝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르신이 가져가면 나름 소득에도 도움이 되고 좋겠다 싶었다. 못된 심보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어르신은 리어카를 끌며 계속 나를 따라오셨다. 뒤에서 민다고 하자 됐다며 앞으로 가라고 했다. 아무래도 누가 자기 리어카에 손대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며 어르신 속도에 맞춰 앞장서서 걸었다.


집까지 가려면 큰 신호등 하나를 건너야 했다. 신호등을 건너고 50m만 걸어가면 집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빨간불이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이 건너기 시작했다. 나와 어르신도 함께 건넜는데,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게 느껴졌다. 리어카가 크기도 하고, 횡단보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해서 사람들이 쉽게 건너기가 어려웠다. 마치 횡단보도 중간을 자동차가 막아서는 느낌이었다. 신호등을 건너면서 작게 작게 볼멘소리를 하는 게 느껴졌다. 어르신은 익숙하다는 듯 신경 쓰지 않으셨다.


신호등을 다 건너고 집에 도착했다. 집 대문과 복도에는 인테리어 때문에 빼놓은 짐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나는 어르신께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하곤 상자를 꺼냈다. 박스가 여러 개라 어떤 게 책인지 확인해야 했다. 어차피 버릴 거라 버릴 것이라고만 써놓고 책인지 아닌지 써놓지 않았었다. 10분 정도 걸려 책 박스를 찾았다. 그 사이에 땀이 흥건했다.


"아우 힘들어. 어르신 한번 확인해 보세요."


나는 혹시나 몰라 책을 살펴보시라고 말했다. 괜히 책이 아닌 다른 걸 버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무 책이나 다 받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어르신이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어르신은 세 상자를 찬찬히 보시곤 책을 일일일 살펴보셨다. 책에 하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시는 것 같았다. 책이 젖었는지, 오래됐는지, 책이 바랬는지 아닌지 등이었다.


어르신이 책을 확인하시는 동안 어떻게 질문할지 생각했지만 딱히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르신은 얼추 다 확인한 듯 뜯은 상자를 다시 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뜯은 상자에 테이프를 붙이셨다. 이제 끝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어르신 다 확인하신 거죠?"


어르신은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리어카에 싣는 것까지 도와드린다고 말하곤 리어카로 갔다. 책 한 권이면 별거 아니어도, 쌓이니 꽤 무거웠다. 나는 리어카에 책을 실었다.


"후, 어르신 가시는 방법은 아세요? 아까 신호등까지만 같이 가 드릴까요?"


어르신은 계속 대답이 없으셨다. 무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무언가를 말하려는데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듯했다. 어떤 걸 물으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르신 뭐 할 말 있으세요? 더 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


나는 혹시나 더 받고 싶은 게 있으신가 싶어서 말했다. 실제로 더 드릴 수 있는 건 없었다. 남아 있는 짐은 인테리어가 끝나면 전부 집에 들여놔야 되는 물건들이었다. 몇 초를 기다려도 대답이 없으시기에 나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 판단했다. 길을 모르시면 같이 가드리려고 했는데, 길을 모르시는 눈치도 아니어서 그만 인사를 해야겠다 싶었다.


"아 어르신 그러면 그냥 갈게요. 조심히 가세요."


내가 인사를 하고 고개를 돌리자 어르신은 급하다는 듯 나를 부르셨다. 그리곤 내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호혹시 글도 가르치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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