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

by 한량


"네? 뭐요?"

"글.. 좀 가르쳐 줄.. 수 있나?"

"네?"


갑자기 무슨 소리가 싶었다. 책 가져가다가 갑자기 글을 가르쳐 달라니. 나는 영문 모른다는 표정으로 어르신을 쳐다봤다. 어르신은 슬며시 책 한 권을 내게 보이셨다. 한글 쓰기 공책이었다.


"아"


한글 쓰기 공책은 내 악필 교정으로 썼던 거였다. 악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교정용으로 썼었다. 저런 공책 몇 권을 쓰고 나니 다행히 악필이 조금은 교정되어서 그 뒤론 쓰지 않았다. 나름 추억이라고 가지고 있었는데,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애물단지가 될 것 같아서 버리려던 참이었다. 저걸 보고 내가 한글 선생님인 줄 아신 건가?


"아... 그 한글을 가르쳐 달라는 말씀이신 거죠?"

"아... 으응.. 안 되나?"

"아 어르신 죄송한데, 저는 한글 가르쳐 드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가르쳐 본 적도 없고요."

"아아... 그런가..."


어르신은 실망한 눈치였다. 그럴만하다. 나름 어르신도 용기를 낸 것일 텐데. 왠지 죄송했다.


"어르신 그런데 한글은.... 왜"


말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까 생각하지 못했다. 듣기에 따라 기분 나쁠 수도 있었다. 나는 실수했다며 표정을 찡그리곤 어르신께 죄송하다고 말하려는 찰나 어르신이 말했다.


"아... 조금 부끄러운 데, 내가 글을 몰라."


나는 가만히 어르신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내가 어릴 때 글을 못 배워서, 글을 몰라. 그런데 조금 배워볼까 했는데, 늦은 것 같아. 그런데 뭐 이런 공책이 있길래 혹시나 하고 물어봤어"


나는 잊고 있던 호기심이 샘솟았다. 궁금했다. 저 어르신이 왜 글을 배우지 못하셨는지, 그리고 갑자기 글을 배우려고 하시는 이유가 무어인지. 대충 짐작은 간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트리거가 되어 그런 마음이 들게 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이야기를 섣불리 할 수는 없었다.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그 현장에 있던 사람이고, 눈물 흘린 모습을 안다고 생각하면 심히 부끄러울 것 같았다. 묻고 싶은데 물어볼 수 없으니 답답했다.


"실은..." 어르신이 말했다. "실은 얼마 전에 조금 일이 있었는데, 글을 모르는 게 참 부끄럽더라고. 이게 참 자존심도 상하고"


어르신이 말하는 '얼마 전에 일'은 내가 목격한 그 일일 것이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르는 척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걸 모르는 척하려니 표정이 영 지어지지 않았다.


어르신은 그때의 상황을 조금씩 말씀하셨다. 물건을 두고 싸우던 상황, 경찰이 와서 이름을 적으라는 데 적지 못한 상황, 그리고 싸우던 노인이 큰 소리로 글도 모른다며 말한 상황. 나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무어라 드릴 말이 없었다.


"아... 미안해.. 내가 괜한 소릴 했네."


어르신은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상자를 집어 드시려고 했다. 나는 내가 하겠다며 재빠르게 상자를 집어 들었다. 어르신은 미안해하는 표정이셨다. 나는 괜찮으니 리어카 쪽으로 가자고 말하곤, 상자를 하나씩 집어 리어카에 실었다. 하나, 둘, 셋. 리어카의 빈 공간에 맞게 테트리스 하듯 상자를 실었다.


"아.. 아까 내가 한 말.. 신경 쓰지 말아."

"아.. 네.."


어르신은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잠시 한숨을 쉬셨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해버렸다.


"어르신 그런데 죄송하지만, 그러면 혹시 왜 글은 배우지 못하셨던 건가요?"


내가 왜 그랬을까. 멍청한 놈, 한심한 놈. 내가 한 말이 아픈 사람에게 병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르신도 그 말이 상처가 됐는지, 잠시 고개를 숙이시더니 리어카 근처에 있던 벤치에 앉으셨다. 그러더니 한숨을 한 번 쉬셨다. 나는 사과드리려고 어르신 옆으로 갔다. 사과하려는 찰나 어르신이 먼저 말씀하셨다. 숙연한 어투의 말이었다.


"사느라.. 그랬어.... 살아 내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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