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밥일지
(천현우/ 문학동네/ 1판 3쇄/ 2022.09.14)
- 용접이나, 하는 게 아니다 -
군복무를 할 때다. 보급수송대대였던 우리 부대엔 정비만 전담하는 정비병들이 있었다. 분대 이름도 정비분대였다. 동기는 없고, 선임과 후임만 있는 분대였다. 정비병들은 부대의 온갖 궂은일은 다했다. 무언가를 만들어야 되면 뚝딱 만들었고, 부대 점검 날이 되면 모든 차량을 일일이 정비했다.
하루는 작업 보조가 필요하다며 정비 업무에 차출된 적이 있다. 차량을 정비소에 들여놓고, 정비 보조를 하고 정비가 완료되면 차를 빼서 다시 주차시키는 일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우리 중대 하사가 정비소로 올라왔다. 그리고 파이프 두 개를 정비병에게 주면 땜질 좀 해달라고 했다. 중대에 옷 걸이를 만든다는 이유였다. 정비병은 마지못해 받아 들고, 용접마스크를 쓰고 치익 치익 하며 용접을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친했던 상병에게 "한번 해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하곤 용접 마스크와 용접기를 손에 쥐었다. 처음으로 용접을 접하고, 용접공들의 시야가 어떤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용접 마스크에 있는 유리만큼 시야가 확보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안경 쓰듯이 바로 시야가 보일 줄 알았건만,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마치 망원경 같았다. 눈을 잘 조절하면 멀리까지 보이지만,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까맣게만 보인다. 용접 마스크가 그랬다. 그 좁은 시야를 조금씩 맞춰 가까스로 시야를 조금 확보하고, 상병의 말에 따라 용접을 했는데 이게 웬걸 모양은 이상했고 곳곳에 구멍만 뚫렸다. 겉으로 쉬워 보였던 용접이 상상이상으로 어렵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란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아무렇지 않게 용접을 하는 상병이 빛나 보였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이 일이 오해하고 있었나 깨달았다.
<쇳밥일지>는 용접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지방 청년들의 삶, 현장직 중소기업의 진짜 작업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나 자신도 지방 중소기업과 노동자들, 청년들에 대해 얼마나 잘 못 생각하고 오해하고, 아둔하게 보고 생각했나 반성하게 된다.
책의 저자는 평생을 마산에서 살고, 실업계 고등학교와 전문대를 졸업해 일평생 지방 중소기업과 하청을 전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가정환경은 기초생활수급자 신세였고, 주변의 어른들조차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나마 가진 것도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말 그대로 희망이 없었다. 빚은 쌓여갔고, 어떻게든 그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최저시급도 주지 않는 일일지언정, 거미줄이라도 휘젓는다는 마음으로 해야 했다. 그에게 주어진 현실에 중소기업과 하청은 유일한 길이었다.
그 유일한 길을 저자는 묵묵히 걸어간다. 그 과정에서 학창 시절 동창을 만나기도 하고,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하기도 하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 어린 동생들을 만난다. 그들의 처지역시 저자와 다르지 않았다. 최저시급도 안주는 중소기업과 하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작업 현장은 위험의 연속이었다. 10톤 무게 철판에 다리가 깔리기도 하고, 400도가 되던 용접물에 큰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건, 2만 원의 택시비를 아까워하는 사장과 오늘만 쉬고 내일 나오라는 매정한 말이다. 그는 그 모진 환경에서도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고, 용접 마스크를 쓰며 작은 시야에 의지한 채 용접을 해나간다.
그가 만든 용접은 어느 도시의 다리가 되었고, 어느 도시의 지하철 손잡이 틀이 되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다리도 지하철도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모르는 사회에선 용접공을 비하하는 말들만 가득했다. 공부 안 하면 '용접이나' 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용접이나, 한다. 이 말에는 사회가 어떻게 이들을 바라보는지 여실히 드러나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성공한 삶과 인생이라고 정의하고, 그 밑으로는 실패하고 패배한 인생이라는 기저가 깔려 있다. 용접이나,라는 말에는 용접을 한다는 건 인생에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사회가 추구하는 데는 감히 '용접이나, 하는' 청년이 낄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고, 목소리를 낸다고 하여 그게 사회 공론장까지 울리는 일이 없다는 의미였다. 200만 원 안 되는 월급으론 수도권에 갈 수도, 집을 살 수도 없고 빚만 갚아 나가야 한다. 사회제도와 추구하는 바가 '용접이나'하는 청년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년, 청년, 청년을 말하는 사회가 참 웃기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가 SNS에 올린 글이 우연히 공유를 타고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이후 저자는 언론과 인터뷰도 하고, 주기적으로 칼럼도 쓰게 된다. 청년 용접공의 이야기가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아무도 관심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용접공의 이야기는, 세상이 마침 듣고 싶어 하던 진짜 이야기였다. 그 진짜 이야기에는 지방 중소기업과 하청 직원들의 현실과 목소리와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이야기에는 절대 '용접이나'라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딘가에서 쇳밥 먹으며 일하는 누군가의 노고 위에 만들어진 사회였다.
책 속의 사람들은 용접이나, 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용점만 특별한 건 아니다. 용접공, 청소부, 간호사, 선생님, 택배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서 만들어진다.
각자의 역할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그 역할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온전히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고, 들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는 게 중요한 이유 같다. 나 역시도 내가 해보지 않고,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보지 않은 걸 남들이 말하는 대로 판단하지 말자고 다시금 다짐한다. 처음 용접마스크를 쓰고, 용접기를 써보고서야 그 일을 이해하게 됐던 것처럼 말이다.
현재 저자는 미디어 스타트업에 근무하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한다. 부디 그의 글을 통해서 사회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긁어졌으면 좋겠다. 용접이나,라는 말을 하는 누군가에게 '용접이나, 하는 게 아니다'라는 글을 그가 써줬으면 좋겠다.
밑줄
- 미래의 이틀보다 오늘 하루가 더 중요한 쾌락주의자에겐 먹고살 생각보다 게임 랭킹 올리는 일이 더 급했다.(p.14)
- 고졸로 사회 나가면 평생 월급 200만 원에서 못 벗어난다. 나중에 나이 들면 대학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다. 마치 대학'교'의 교주라도 된 양 열렬히 전도하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눈앞에 불이 났는데 목마를 때를 대비해 물을 아껴 두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끝으로 수시 원서 접수 기간 얼마 안 남았으니 얼른 결정하라는 말을 듣고 교무실에서 나왔다. 찝찝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입은 말하지 않았지만 눈이 떠들고 있었다. 대학 안 가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고졸'이란 딱지는 수갑이며 죄수복이자 족쇄나 다름없다고. 그날 집으로 돌아와 오랜 시간 공설운동장 부근을 배회했다. 대학을 강요하는 세상이 못마땅했다.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사람 착하고 몸 건강하며 상식 있는 것만으론 부족한 걸까.(p.18~19)
- 당시엔 정말 돈만 주면 지옥 맨 아래층의 재래식 화장실 청소라도 할 자신이 있었다.(p.39)
- "내야 집구석 꼬라지 때미 가방끈 잘맀어도, 현우 니는 대학 졸업해라. 대학 졸업해가꼬 돈 마이 벌어라."(p.46)
- 회사 사무실은 이층에 있었는데 첫 입사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사장은 "초보들한테까지 최저 시급은 못 준다" "일 잘하면 시급 금방 올려준다"라고 했다. 당시엔 그 말이 너무 생경했다. 최저 시급도 안 주겠다는 공장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저 시급도 안 주니 근로 계약서를 쓸 리가 없었다. 곧바로 현장으로 넘어갔고, 안전 교육도 뭣도 없이 첫날부터 일을 시작했다.(p.57~58)
- 사고는 세 번째 주형 작업 중에 일어났다. 팔이 후들후들 떨리는 걸 억지로 참다가 그대로 수지를 바닥에 쏟았다. 재빨리 통을 기울였지만 섭씨 400도 온장고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수지가 발등에 떨어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절로 비명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할 줄 몰라 진땀 흘리며 수지를 쏟았다고 외쳤다. 사수 형님이 펄쩍 뛰며 어딘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이내 사장이 꿍꽝대며 뛰어오더니 이마를 짚은 채 대뜸 병원부터 가자고 했다. 그 병원이란 게 커다란 창원병원도 아닌 내동 상가에 있는 작은 동네의원. 대기열엔 외국인 노동자들이 끙끙대고 있었고 내 차례는 한참 이후에 왔다. 그렇게 초기 냉각이 중요한 화상을 한 시간 넘도록 방치했다.(p.58~59)
-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원장은 허공에 한숨을 쉬었다.
"사장 글마 완전 상도라이네. 산재 처리 안 해주드나? 이거 최소 전치 오 주감인데, 고마 드러누우뿌라."
그때 만약 내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알았더라면, 하다못해 교수님께 전화를 걸 '시근머리'라도 있었다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터. 하지만 망친 학점을 메워야 한다는 생각에, 출근 첫날 회사를 관두었을 때 생길 불이익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원장에게 그냥 통원 치료를 받겠다고 했고 무지의 대가는 고통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은 내 생애 최대로 앓았다. 감각이 돌아오자 피부에서 찌그러지는 듯한 통각이 느껴졌다. 발목에 꺼지지 않는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입에선 이따금 끅끅하는 신음이 흘렀다. 아픔과 설움이 섞이고 진땀과 눈물이 섞인 밤이었다.(p.60)
- 동거인과 친가는 얼마 안 되는 부조금과 5,000만 원 남짓한 사망 보험금으로 서로 싸워댔다. 와중에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자칭 아버지의 친한 친구는 귀신같이 돈냄새를 맡았다. 어느 날 동거인과 함께 와서는 확약서에 서명 하나만 써달라고 했다. 이후 모든 송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고개 들어 둘의 비굴한 낯을 본 그 순간, 마침내 저들 세상의 민낯이 보였다.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고 승냥이로 살아가는 자들. 떳떳하게 벌어낸 돈의 가치를 망각해 버린 짐승들. 그 모습이 너무 역겹고 혐오스러워서 오히려 머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얼른 서명을 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평생 남한테 빌어먹고 사이소. 평-생."(p.63)
- "행님, 내는요. 지금은 짭퉁 인생이지마는, 언젠가 진퉁 롤렉스 찰 낍니더. 중고 포르쉐 말고 람보르기니 쌔삥으로 뽑을끼고." (중략) "… 지금은 동기부여만 하는 기라예. … " 그제야 동생이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화려하게 놀기 위해 노력한다. 그 나름 멋진 삶의 방식 아닌가. 헤어지는 길에 돈을 뽑아 동생에게 20만 원을 건네주었다. 재밌는 경험시켜줘서 고맙다는 인사에 동생은 씩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짝퉁이 아니라 진퉁이었다.(p.82~83)
- 학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면 거짓말. 수능도 안 봤지만 대학 순위표는 머릿속에 줄곧 각인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명문대란 만병통치약 같아서 어딜 가나 약발이 들었다. 당장 효성만 해도 현장 쇳밥 수십 년 먹어온 기술자가 명문대 학사 몇 년 먹은 관리자 눈치를 살폈다. 게임 속 세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은근슬쩍 대학을 드러내는 이부터, 명문대생을 사칭하는 유저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이제껏 봐온 세상이 그 꼴이었지만, 학벌의 그림자가 우리 사이에까진 드리우지 않길 바랐다. 대체 그놈의 학벌이 뭐라고 사람들을 줄 세우고 급을 나누게 만드는 걸까? 앞으로도 이렇게 전문대 나왔다고 무시당하면서 살아가야 하나? 가슴에 시퍼런 멍이 진 느낌이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 두 병과 새우깡을 사서 모텔 안에서 마셨다. 다음날 반나절 넘게 침대 위에서 끙끙댔다. 더러워서 편입하고 말 테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p.92~93)
- 일도 일이지만 정말로 속 쓰렸던 건 몇몇 정직원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노키아건 효성이건 생산직은 정직원과 하청 직원이 똑같은 일을 했다. 임금, 대우, 고용, 복지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날지언정 같은 노동자이며 동료란 느낌은 있었다. 지엠은 아니었다. 우리가 두세 시간 만에 한 라인을 비우면, 정직원은 그제야 간이 사무실에서 나와 프레스기 설정을 교체했다. 입여 분의 작업을 마치면 도로간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뭐하는지 들여다보니 휴대폰으로 주식이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예 자는 사람도 보였다. 티브이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을 해달라 절규하는 하청 직원들을 보았는데, 현실은 동일 노동조차 안 시켜주는 셈이었다. 진짜 욕먹어야 할 주체는 재벌과 대기업이건만, 유달리 노조가 더 비난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재벌의 횡포가 아메리카노 정도라면 눈앞에서 직접 체험하는 차별은 에스프레소 원액만큼 썼다.(p.111)
- "야, 현우야. 우리 없으면 누가 다리 만들어주냐? 우리뿐만 아냐. 청소부, 간호사, 택배, 노가다, 이런 사람들 하루라도 일 안 하면 난리 나. 저기 서울대 나온 새끼들이 뭐하는 줄 알어? 서류 존나 어렵게 꼬아놓고, 돈으로 돈 따먹기만 하고, 땅덩어리로 장난질이나 치지. 그런 새끼들보다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 기죽지 마."(p.116)
- 그때 선생님 입에서 나온 액수를 듣고 너무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박찬호 선수가 선생님 백 명을 합친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까? 그날의 의문은 끝끝내 풀리지 않았다. 그저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딜 가나 얼마 안 되는 승자들이 패자가 응당 가질 몫까지 몽땅 빨아들이는 현실만 알아갈 뿐. 스물다섯 살의 나는 일찌감치 사회에 투항했다. 승자 독식에 의문을 느끼고 저항할수록 나의 초라함만 되새길 뿐이란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명문대생은 공부 많이 했으니 유능해서 대단한 일을 하고, 전문대생은 공부 안 했으니 무능해서 못난 일만 한다. 그리 생각하면 세상만사가 일목요연하고 질서정연해 졌다. 체념하면 모든 게 편할 텐데, 오히려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라니. 확신에 찬 그 목소리가 참 멋지다고 느꼈다.(p.117)
- 점심시간만 되면 늘 몽롱했던 나날, 우연히 정직원들이 탈의실을 휴게실로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슬며시 따라 들어가 봤더니 불을 꺼놓고 에어컨 틀어놓은 채로 낮잠들 자고 있었다. (중략) 점심시간 종료 오 분 전, 알람에 맞춰 일어나니 머리가 무척 개운했다. 가벼워진 몸으로 탈의실을 나가려 하던 그때, 정직원 아저씨 한 명이 뱁새눈 뜬 채로 문 앞을 막아서더니 하청 직원은 여기 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p.146~147)
- 돌아서서 현장으로 돌아가는 순간 입술이 떨렸다. 물론 차별에 나름의 논리는 있었다. 엄밀히 말해 노조가 회사와의 투쟁으로 얻어낸 협약의 산물을 비노조원과 나눌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하청 직원 입장에선 서러웠다. 자기들은 냉방기 쐬어가며 일하면서, 우리보다 월급도 두 배 가까이 더 받으면서, 여름휴가 때 출근 안 하고 쉴 거 다 쉬면서, 어째서 잘 쉴 권리마저 독점하려 하는가. 차별의 설움은 이렇듯 사소한 곳에서부터 찾아왔다. 이날 이후로 노조워 개개인과는 친분을 가지되 단체는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p.147)
- 버스 안 모든 승객이 기름내와 용접 '흄 fume' 냄새 풍기는 나를 불쾌하게 여길 것 같아 불안하다. 이 인 좌석 구석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기대는 동안, 만원 버스임에도 누구도 옆에 앉지 않는 현실에 예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누구도 던져주지 않는다. 세상은 그저 냉소로 회답한다. 넌 흙수저 주제에 노력도 하지 않았잖아?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나도 나름 열심히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행복하게 해 달라는 게 그리 거창한 부탁인가?(p.148)
- 10톤짜리 중량이 과장님의 뒷다리를 덮쳤고 사방에 피가 튀었다. 공장 전체에 비명이 메아리쳤다. 온몸이 순간 저릿하더니 힘이 풀려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p.210)
- 그제야 나 자신의 안일함을 깨달았다. 내가 누린 일상이란 그저 불행이 닥치지 않았기에 유지됐을 뿐. 나 또한 언제든 다칠 수 있으며, 사고로 인해 삶이 끝날 수 있단 생각이 들자 온갖 나쁜 미래상이 그려졌다. 일상이 무너진 현실을 상상하니 두려워졌다. 누가 중소기업의 이런 현실을 알아줄까? 기자? 정치가? 금속노조? 진보 지식인? 아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없는 공론은 허상일 뿐. 그날부터 현장의 모습을 촘촘하게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p.211~212)
- 한 입시 강사가 용접공 비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부글부글 끓기에 동영상을 보았다. 특별한 건 없었다. 신상을 찾아봐도 역시 특별한 건 없었다. 명문대, 번듯한 차림새, 이른 나이에 스타 강사,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할 게 없는 이력이다. 곁눈질할 필요 없이 오로지 자기 삶만 일직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분은 사교육계에 종사한다. 사교육의 본질은 보험과 같다. 최악의 상황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해야 시장이 커진다. 여기서 최악의 상황이란 성적 경쟁에서 뒤처짐을 의미한다. 경쟁에서 지면 용접공 같은 패배자가 된다. 강사 개인 역시 그런 사교육을 받아왔을 터이고, 그걸 그대로 가르쳤다. 그렇게 해서 자신은 성공한 인생에 안착했으니까, 스스로 한 말의 문제점을 전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 발언 속에 담긴 건 우월감이 아닌 대학 서열화와 성적 경쟁의 부작용이었다.(p.214~215)
- 나는 강사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빌려 튀어나온 세상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교육과 대학 서열화는 결국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의 소산물인 돈이 만들어낸 결과물. 평등과 이해는 돈이 되지 않는다. 돈이 안 되니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연히 자신의 욕망 외 다른 가치를 모른 채 어른이 된다. 현대 대한민국 사회는 이런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 강사 같은 이들은 삶에 순위를 매겨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고, 실패한 이들에게 냉소를 퍼부어왔다. 공부 안 한 너희들이 잘못했어.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하는 건 당연한 거야.ㅣ 열심히 살아온 자신은 응당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배워왔을 터.(p.215)
- 비하의 당사자인 내가 화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놓고 말하지만 않을 뿐, 이미 많은 이들이 이러한 행동과 인식에 동조해 왔다. 이런 일에 분노만 해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사태에서 일어난 분노의 본질, 평등을 향한 갈망 아닌가. 우리는 언제든지 경쟁의 절벽에서 떨어질 수 있는 삶을 산다. 누군가를 떨어뜨리는 삶이 아닌, 손잡고 나아가는 세상을 모두가 바랄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뀐다.(p.215~216)
- "그저 세상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나이 먹어갈수록 미래가 점차 불안해져만 갑니다. 그간 노력하지 않았기에 이런 삶을 응당 감내해야 하는 겁니까?"(p.221)
- 우리가 공장 바닥 전전하며 보낸 이십 대는 그저 통장에 찍힌 얄팍한 숫자 따위가 대표할 수 없다. 사회에서 '못 배운 놈년들'로 통칭당하며 냉소와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는, 자존감을 찌그러뜨리려는 온갖 압력에 저항한 결과, ㅅㄹㅁ의 형태에 고하 따윈 없다는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 헤어지는 길에 은주와 나는 약속했다. 우리의 삼십 대는 결코 불행으로 끝마치지 말자고. 다시 만났을 땐 집, 차, 돈, 주식 따위 얘기밖에 남지 않은 멋없는 마흔 살이 되지 말자고. 충충한 가로등 빛 아래, 첫 노동을 함께했던 동창의 등이 멀어져 갔다.(p.246)
- 어디에나 다 쓰인다는 점도 맘에 들었어요. 밖으로 나와서 잠깐만 둘러봐도 용접이 안 들어간 사물이 참 드물잖아요. 가로등이며 신호등, 수많은 자동차와 빽빽한 빌딩 안쪽, 지하철의 몸체와 그 아래 깔린 레일까지 말이죠. 제가 현대로템 하청에서 잠깐 일했는데요. 거긴 본사가 창원이라 우리가 만든 물건이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몰라요. 그러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탄 순간 알게 됐죠. 객차 맨 앞과 뒤칸이 짧았던 이유는 노약자석 때문이었구나. 출입문 바로 위 공간이 비었던 이유는 역안내 표지판이 붙기 때문이었구나. 검사원이 천장에 붙는 파이프 용접이 중요하다고 자꾸 강조한 이유는 손잡이가 달리기 때문이었구나. 남들은 알 리 없는 고생의 이유가 눈에 보였을 때. 어쩐지 콧잔등 비비고 싶은 뿌듯함과 우리가 만든 물건이 온전히 제 역할 다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보람참. 그리고 내일이 세상에 도움 되고 있단 사실에 행복함을 느꼈어요.(p.266)
- "내가 니 칼럼은 전부 챙겨 보거든. 근데 그 왜, 우리 판때기에서만 쓰는 말들이 있잖냐? 그 상스러운 걸 칼럼에다 그대로 다 실을 순 없잔어. 그렇다고 먹물들 말로 쓰면 맛이 안 살고. 그 중간 언어를 찾아야 하는데 니가 그걸 잘하더란 말이지. 노조 아재들이 이게 안 돼. 맨날 머리띠 매고 메가폰 잡고 소리만 치잖아. 간절한 건 이해하겠는데 촌스러워. 그림이 너무 구리잖아. 우리가 그리 욕해도 결국 가진 놈들은 먹물이잖냐? 그 먹물들이 원하는 양식미라는 게 또 따로 있을 거 아니냐. 우리 얘기를 먹물들 언어로 번역해야 해. 좀 아니꼬워도 세상은 그렇게 바꾸는 거지. 넌 그게 되더라. 그래서 니가 중요한 거야. 쇳밥 얘기를 먹물들 알아먹게 쓸 수 있으니까."(p.284)
- 마산에서 얌전히 용접만 하고 살았다면 평생 볼 일 없었을 사람들의 환대와 존중은 기쁘고도 불안했다. 공장 일꾼이란 정체성으로 현장의 서사를 팔아 나 혼자 비겁하게 출세하는 건 아닐까. 진짜 현장 노동자들은 천현우를 기득권 앞에서 글 재롱부리는 간신으로 생각하진 않을까. 아저씨의 고마운 덕담에 최근 들어 점점 무레를 불려 나가던 걱정의 무게가 훌쩍 줄어들었다. 나는 마치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의 초짜 노가다꾼의 눈을 하고 물었다.
"내가 잘할 수 있겠으예?"
"하모. 당연하지!"
(p.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