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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남편의 담석수술로 며칠 못 가다가 생리가 시작돼서 미루다가 장마로 인해 비가 억수로 쏟아져서 안 가다가 맛있게 먹은 양송이 수프와 베이글 때문에 체해서 며칠을 약과 죽으로 지내다가 방학숙제처럼 개학 전날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수영장에 갔다.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시켜서도 아니고, 수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수영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수영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으려고 수영장에 간다. 머리도 감고 씻으려고 수영장에 간다. 벽에 달린 선풍기의 찬바람과 헤어드라이어의 따뜻한 바람으로 머리카락을 말리려고 수영장에 간다. 좋아하는 샌달우드 향 바디로션 바르러 수영장에 간다. 새로 구입한 샤워 하면서 바르는 설화수 백삼팩하러 수영장에 간다. 줄지어 걷는 물속 산책하러 수영장에 간다. 40kg대로 진입하면 사려고 29cm 장바구니에 담아둔 귀여운 수영복과 수영모 때문에 수영장에 간다. 수영이 끝나고 파리바게트에 들러 막 나온 따뜻한 호두 베이글을 사서 집에 가려고 수영장에 간다.
가고 싶은 이유를 계속 만든다. 나의 수력은 50미터 레일을 자유형으로 컥컥거리고, 평영은 왕복가능, 배영은 레일이탈이 무서워 시도도 못해봤고, 접영은 물에 빠진 사람처럼 하는 미천한 실력. 4개월 배운 수영을 지금까지 우려먹고 있다. 폼은 엉망이지만, 땀 빼러 간다. 광고인 박웅현 씨 말처럼 수영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땀 빼러 운동하러 간다.
무엇보다 수영을 간 날의 내가 좋다. 그래서 수영장에 간다.
커버 : 이브 클랭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