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보고야 말았습니다...
잘 만들었다고 소문이 자자하고, 나 빼고는 주변 사람들이 다 본 것 같고,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영화의 소재나 배우나 줄거리나 혹은 짧은 예고편을 잠깐 본 것으로 인해 너무나도 궁금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면 안 될 것 같은 영화들이 종종 있습니다. 너무 보고 싶지만 동시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안 보려고 참게 되는 그런 영화들이죠. 저에게는 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고, 그로 인해 보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너무 슬퍼질 것만 같아서 보기가 꺼려지는 그런 영화들이죠.
제 경우 대표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 몇 개를 꼽아보자면 <택시운전사> (결국 봄...), <변호인> (이것도 결국 봄...), <동주>, <영웅> (TV로 우연히 봄...), 그리고 <서울의 봄> 정도입니다.
<서울의 봄>은 넷플릭스에도 풀리게 되며 더욱 그 유혹을 참기가 힘들어졌고 TV에도 방영이 되기 시작하면서 채널을 황급히 돌리게 되는 경우도 빈번해졌죠. 그러던 중, 계획했던 것은 아니고 정말 우연히 11월 29일 제45회 청룡영화상을 생중계로 보게 됩니다.
다른 때였으면 아마도 채널을 돌렸겠지만 딱히 볼 것도 없었고 시상식 그 자체보다 관심을 모으고 있었던 정우성 배우의 참석 여부와 과연 그가 무대에 서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까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난생처음으로 청룡영화상을 생중계로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정우성 배우는 참석을 했고, 무대에 섰고, 이런저런 소감을 밝혔고, 그에 대해서 객석에 있던 누가 어떻게 반응을 했네 마네를 가지고 여론은 또 설전을 벌였죠. (이게 그렇게나 설전을 벌일만한 일인가 싶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뭐, 그게 어찌 됐든 간에 시상식에서는 예상대로 영화 <서울의 봄>이 여러 부문에 걸쳐 수상을 하게 됐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인상 깊게 봤던 <Past Lives> (제 리뷰 참조)가 그래도 몇 개 부문에서는 경합을 벌이지 않을까 예상했습니다만 <서울의 봄>이 사실상 주요 부문을 싹쓸이해갔죠. 그로 인해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한 저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운명이었을까요?
시상식이 끝나고 채널을 돌리던 중.... <서울의 봄>을 방영해 주는 채널을 찾고야 말게 됩니다. 러닝 타임의 대략 20%가량을 지난 것 같더군요. 이제 막 전두광과 그 패거리들이 그들의 국가 전복 계획을 실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작전회의를 하던 시점... 결국 리모컨을 내려놓고 영화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두광 패거리들이 작전회의 및 지휘소로 사용하는 벙커가 상당히 눈에 띄더군요. 영화 특성상 영화 전반에 걸쳐 여러 군부대와 벙커, 작전회의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전두광 패거리의 벙커는 매우 도드라지죠. 아마추어적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조명과 미장센의 색감입니다.
전두광 패거리의 벙커는 붉은색 커튼이 모든 벽면을 감싸고 있습니다. 감히 이들 패거리의 열정이라 해석하고 싶진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 패거리의 만행으로 인해 흘려질 피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전두광의 벙커 장면에서는 마치 조명을 밑에서 위로 쏘는 듯한 느낌이 나죠. 그로 인해 인물들의 얼굴이 불타 오르는 듯한, 모닥불 주변을 둘러싼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반면 타 부대나 작전회의실, 벙커, 특히 또 다른 주인공 이태신 장군이 나오는 장면은 어떨까요? 일단 색감이 매우 칙칙합니다. 조명은 천장 위에 매달려 있는 형광등이 전부... 그로 인해 전두광 패거리와 달리 이태신과 그 주변 인물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영화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장면에서 전두광의 얼굴은 모든 빛을 머금고 마치 폭발할 것처럼 부각이 됩니다.
이러한 대비는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지속되고 더욱 명확해지죠. 빛을 머금고, 빛을 앞세워 전진하는 전두광의 패거리와 빛을 마주한 채 어두운 뒷모습만 보이는 이태신 장군의 대비와 같이 말이죠.
특히, 홀로 행주대교에서 공수부대의 강북 진입을 막아서는 장면을 보면 이러한 특징이 매우 잘 드러납니다.
역설적으로 '악당'인 이들은 빛을 뿜어내고, 영웅들은 지속적으로 어둠 속에서 이 빛을 외롭게, 그리고 차갑게 맞서는 구도로 영화는 지속됩니다. 맞습니다. 반역 세력에 맞섰던 이들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조명이 어두울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미장센의 색감이 매우 차가운 느낌을 발산합니다.
전두광과 그 패거리들이 빛을 발산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장면들은 바로 그 유명한 화장실 scene들입니다.
무슨 의미일까 생각을 해보면 너무나 안타깝게도 전두광 세력들의 기세와 운은 불타 올랐고, 반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전두광에 맞섰던 이들의 운은 이미 다하였으며 그들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무능함이 판을 치던 국군들 속에서 몇 안 되는 의인들이 감행했던 처절한 싸움은 이러한 화면적 대비로 관객에게 더 뼈저리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와중에 화장실 장면만은 전두광 조차 어둠 속에 두었던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 밝혀진 바와 같이 어둠 속에서 악이 탄생했음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겉으로는 빛을 뿜어내는 듯 보이는 그들의 이면에는 어둡고, 더럽고, 상상 이상으로 추악함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주연 배우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카메오라 칭하기 애매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카메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했습니다. 이들의 열연이 처절했던 1979년 12월 12일 밤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어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에 풍미를 더해준 듯합니다.
처음 시청했던 시점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그 여운이 너무 강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자리에서 한참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한 채 술만 계속 들이켰죠. 그러나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은 확고했습니다.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죠.
그렇게 나름 강렬했던 11월 29일 밤이 지나고 정확히 나흘 뒤인 12월 3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화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순간 과거로 되돌아간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쌍욕이 나왔습니다.
뉴스를 틀어 놓고 한 6시간을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출근도 잊은 채 비상계엄령이 공식 해제 되고 나서야 잠깐 눈을 붙인 게 전부였죠.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습관적으로 선포되었던 계엄령과 <서울의 봄> 같은 영화가 대중에게 닿으며 국민들이 반면교사를 삼아서였을까요? 혹은 몇몇 분들이 제기하 듯 아직은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하지 않았고 하늘이 도운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이 모든 것의 조합이었을까요? 계엄령 선포 후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월담을 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인 국회의원들... 경찰과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맨 몸으로 막은 일반 시민들과 보좌관들...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파를 통해 퍼 나른 언론들...
그렇게 국민과 민주주의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쿠데타를 종결시켰습니다. 세계사를 보더라도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국격과 민주주의를 몇십 년은 후퇴시킨 인간말종의 몹쓸 결단으로 인해 오히려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국민 의식은 그 어느 나라보다 선진적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계는 굳건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민들의 도움을 받아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국가 전복을 막아냈기 때문이죠.
이후 여의도 집회를 나온 10대나 20대 분들이야 아마도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었을 테니 어떠한 생각을 가졌을지 모르겠으나 저와 같은 30대 이상의 분들은 2016년도에도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모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었다면 '내가 8년 만에 이 짓거리를 왜 또 하고 있지...?'라며 허탈하고 분노에 찬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반면, 일단 탄핵소추안은 비교적 빠르게 가결되어 다행스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2016년 당시처럼 기약 없이 주말마다 한겨울에 길거리로 나와야 되는 상황은 일단 면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끝나지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까지는 <서울의 봄> 실사판을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해야 하는 악몽 같은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죠...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정치 성향도 다를 수 있고요. 추구하는 가치관 또한 물론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이러한 다름이 공존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니까요.
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나요...?
이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쓰지 않겠습니다.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면 <서울의 봄>은 잘 만든 영화이고 청룡영화상을 휩쓸기에 충분했습니다.
<서울의 봄> 관객 1,312만 명. <택시운전사> 관객 1,218만 명. <변호인> 관객 1,137만 명.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몇몇 분들의 말마따라 우리나라에 '빨갱이'가 저렇게나 많은 걸까요? 아님 시민의식의 성숙도, 진정한 서울의 봄의 재림에 대한 염원을 담은 지표일까요?
Till next ti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