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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bstane (서브스턴스)

내부로부터의 파멸

by Popcorn and Whisky

아카데미 시상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요 부문에서 누가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될지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올해는 특히나 여우주연상 부문에 많은 귀추가 주목되는 듯합니다.

2025 여우주연상 최종 후보들

워낙 쟁쟁한 후보들이 올라오기도 했고, 각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 또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기에 더욱 관심이 많이 가는 부문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노라>의 미키 매디슨과 (위 사진 우측 상단)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 (위 사진 하단 중앙) 두 배우의 2파전을 예상해 봅니다.


특히 데미 무어의 경우 그동안 후보에 이름을 몇 번 올리기는 하였으나 수상과는 인연이 유독 없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여자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헌데, 이번 <서브스턴스>의 펼친 연기는 그야말로 놀라웠고, 많은 이들이 평가하기를 데미 무어의 자전적인 이야기와도 같은 영화라 그간의 설움을 연기로 폭발시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수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올해 가장 미친 것 같았던 영화

그렇다면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는 어떤 영화일까요? 주변에서는 정말 '미친' 영화라는 평가를 많이 하던데 동의하는 바입니다. 꼭 부정적인 의미이지만은 않습니다. 소재는 다소 클리셰 하게 다가올 수 있겠으나 이러한 소재를 가지고 감독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법이 미쳤고, 배우들의 연기가 미쳤고, 시각적인 파급력 또한 미쳤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고어에 비위가 약하신 주변 분들은 결말이 너무 궁금했는데 차마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없었다는 이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줄거리를 정말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 볼까요?

데미 무어의 극 중 캐릭터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한 때 촉망받던 여배우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을 비켜가지 못하며 아침 에어로빅 방송의 메인 자리를 겨우 지켜내 가며 전전긍긍하는, 한마디로 한 물 간 배우가 되어 버렸죠. 그런 와중 겨우 붙들고 있던 에어로빅 방송에서 마저 잘릴 위기에 놓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너무 늙어서... 볼품 없어져서...

그러던 와중 여차저차 The Substance라는 신비한 약물을 소개받게 되고, 이 약물은 더 젊고, 아름다운 버전의 나를 생산해 내는, 즉 복제인간을 만들어 내는 약품입니다. 그렇게 해서 엘리자베스의 젊은 버전, 수(Sue)가 탄생합니다.

The Substance 약물을 투여하자 세상 밖으로 나온 Sue (우측)

The Substance를 제공한 '회사'에서 매우 강조한 규칙이 하나 있는데 이는 바로 예외 없이 7일마다 본체(엘리자베스)와 복제인간(수)을 교체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젊고 아름다운 Sue로 주구장창 계속 생활할 수 없고 7일 간격으로는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쯤에서 드는 의문점 하나. Elizabeth와 Sue는 각각 다른 인격체인 것일까요? 아닙니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The Substance 물품 박스를 개봉한 후 나오는 마지막 쪽지 한 장에는 "Remember. You are one"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즉, 본체와 복제인간 둘은 서로 다른 인격체가 아닌 한 사람이라는 것이죠.

흥미로운 설정이고 대충 어떻게 전개될지 감이 오는 듯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그저 순조롭게 흘러가지만은 않고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영화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화면의 구도입니다. 매우 답답합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특정 물체나 인물에 줌인을 해놓은 장면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런식으로 줌을 땡겨서 각도가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나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며
기괴합니다
한 명의 인물만 겨우 보이는 화면이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죠

영화 내내 세 명 이상의 등장인물이 한 컷에 잡히는 화면이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이러한 구도는 영화에 긴장감을 더하는 효과가 상당합니다. 주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혹은 누가 다가오고 있는지, 그리고 전반적으로 시각적으로 답답한 느낌을 선사하며 몰입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몰입하게 되는 효과를 만들어 내죠.

그리고 정상적으로 보여야 하는 인물이나 사물들도 다소 과장되게 나타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기괴하게까지 느껴집니다.


시각적인 효과 외에도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화면 구도로 나타내고자 했던 의도가 담겨 있는 듯하기도 합니다. 외모와 외관에 집착하는, 근시안적인, 갈수록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 과하게 집착하는 사회현상을 풍자하는 듯하죠.

그 외에도 영화에는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메시지와 성상품화에 대한 풍자도 곳곳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를 꼽아 보자면 어린 Sue를 향해 정작 본인들은 늙고 볼품없는, 화면 구도상 혐오스럽게까지 보이는 아저씨들이 '아름다운 여자들은 늘 미소 지어야 해!'라며 강요하는 장면이죠.

당사자 관점에서 보면 소름 돋는 광경이죠....

좀 더 근본적인 메시지를 들여다보자면 영화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대함과 관용, 더 나아가서는 사회 일원들의 서로에 대한 관용에 대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화장을 몇 번씩 고쳐도 맘에 들지 않아 결국 약속장소에 no-show 하는 장면...

엘리자베스는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캐릭터입니다. 늙은 자신이 너무 싫은 것이죠. 주변에서 아무리 여전히 아름답다고 얘기를 해줘도 이러한 칭찬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혐오는 자신의 또 다른 버전인 Sue에게까지 확장되죠.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며 Substance를 제공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럴 때마다 회사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서로는 없다. 당신은 하나다."

결국 Sue를 없애기로까지 마음 먹는 Elizabeth

엘리자베스와 수가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불평불만과 혐오는 보는 관객으로까지 하여금 헷갈리게 만듭니다. '진짜 다른 인격체인건가???' 함께 영화를 보던 아내도 제게 질문을 하더군요. 저 정도면 진짜 각자 생활하는 7일에 대해 다른 자아는 기억도, 인지도 못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런 듯 보일 수 있으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두 기억하고 인지하는 듯합니다. 이것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는 Sue가 세상 밖으로 처음 나왔을 때 Elizabeth가 읽고 인지했던 '조치'들을 완벽하게 실행해 낸다는 것이죠.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Sue는 이미 The Substance를 이용하는 방법과 규칙에 대하여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를 외면하며 모른 체 할 뿐....

즉, 두 자아는 의도적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타자화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이러한 현상의 결말은 파멸입니다.

실제 엔딩 장면은 훨씬 더 끔찍하나 독자들의 눈을 위해 굳이 여기 올리진 않겠습니다...

그나마 한 줌 남아있던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새겨진 본인의 별 위에서 엘리자베스와 수는 파멸을 맞이합니다.

한 인격체의 자기 환멸, 자기혐오를 넘어 사회에 이를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좋으나 싫으나 한 공동체 (그게 국가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던 간에) 안에 속한 일원들이 애써 서로를 부정하고 혐오하면 결국 다 같이 파국을 맞게 된다는 경고를 감독은 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면 더욱 씁쓸해지는 메시지이죠.


명연기로 명작을 완성시킨 마가렛 퀄리와 데미 무어

데미 무어에 뒤지지 않는 연기를 펼친 마가렛 퀄리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도 엄청 말들이 많죠. 의외이긴 합니다. 충분히 이름을 올릴만한 연기 었고 많은 관객들이 이에 동의하여 논란이 지속될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미 무어가 첫 오스카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그 한을 풀어줄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시각적으로도 재미났고 여러모로 놀랍고 쇼킹했던 <서브스턴스>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Till nex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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