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렸다
그동안 일이 하도 재미없어서 잘리기를 속으로 몇 번 바랬는데, 막상 잘리니 기분은 더러웠다. 이 시시한 코로나 임시직 일을 더 이상 못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날 우울하게 하는가? 자존심 상했다. 코로나 시국에 직장에서 권고사직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남일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현타는 세게 왔다. 첫날은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둘째 날부턴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일단은 쉬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동안 사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진 않았다. 새벽 4시 40분에 기상해서 첫차를 타고 출근해, 11시간 풀 근무 반복업무를 하고, 지옥철을 타고 집에 오면 저녁 9시였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조금이라도 나를 회복하고 싶어서 급하게 공원에 가 30분 달리기라도 했다. 씻고 자고, 또 출근해야 했다. 생존은 했지만, 보람은 없었고, 삶의 낭만은 아예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된 거 이제 나에게 휴식을 허락할 시간이 된 거라서 생각하자. 잘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보자.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김태리)은 도시에서의 지친 일상을 멈추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고향 친구 은숙(진기주)은 혜원에게 시험 떨어져서 남친한테 잠수타고 내려온 거 아니냐?며 아픈 곳만 찌르는 질문을 던지지만, 혜원의 진심은 그게 아니다.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혜원은 밀린 허기를 채우려는 것처럼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간다. 눈 속에 파묻힌 배추를 직접 꺼내 만든 배추 된장국을 비롯해 수제비, 떡 케이크, 사과 꽃을 얹은 파스타, 밤 조림등 정갈하고 소소한 음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영화 내내 보여진다. 그 과정의 시간은 느리지만, 매끼 허기를 채워가는 혜원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허기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요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결혼 전 혼자 산 기간이 꽤 길었음에도 많은 음식을 사 먹었다. 매끼 사 먹었다는게 더 사실일 것이다. 요리를 조금이라도 해볼 법도 한데 왜 안 해봤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단 시간이 아까웠다. 식재료를 사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모든 과정들이 노동의 시간으로 여겨졌다. 청춘의 시간은 꿈을 향해 내달리는 시간으로도 충분히 바빴고, 혈기 넘쳤다. 차분한 요리의 시간은 내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는 공간도 고시원, 하숙집 이런 곳들이었기에 요리를 할 수도 없는 환경이었다. 매끼를 간단하게 사 먹었고, 때웠고, 허겁지겁 살았다. 고향 친구는 가끔 하는 통화에서 내게 이런 말을 종종 했었다.
“속 베린다잉...”
한가한 시간들이 되니, 이것저것 전부터 하고 싶은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하며 지냈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남아돌았다. 심심했다. 책 읽는 것도, 영화 보는 것도, 예능을 보는 것도 할 만큼 했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고 단순히 뭔가를 보는 시간들로는 공허함을 달래긴 어려웠다. 움직임이 필요했다. 뭐를 할까? 문득,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었는데, 지금 문득, 시간이 많이 드는 행위를 하고 싶었다.
‘그래, 요리를 해보자, 내가 바로 짜파게티 요리사’
첫 요리론 가장 쉬운 것부터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혜원의 첫 요리는 정갈한 배추 된장국이지만, 나의 첫 요리는 간장 버터 계란밥이었다. 자취생들이 가장 많이 해먹는 간단 요리. 밥에 계란 후라이 반숙으로 올리고 양념장 몇 개 섞어 만들고 버터 한 조각 살포시 밥 속에 넣어서 비벼 먹으면 되는 초 간단 레시피. 첫 요리를 완성하고 생각보다 버터의 풍미가 고소해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첫 끼니를 만족스럽게 요리한 후, 유튜브로 < 초간단 >위주로 키워드를 검색했고, 양파 덮밥, 불 맛나는 달걀 볶음밥, 친구가 매일 찾아오게 하는 대패 삼겹 덮밥, 고소한 김치 라면 등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 먹었다. 혜원의 유기농 요리들과는 달랐다. 내가 만든 음식들은 익숙히 아는 맛의 요리다. 백종원 요리다. 이후에는 자신감이 더욱 붙어 된장국, 미역국, 소고기뭇국, 돼지 불백을 위한 고기를 직접 양념하고 재우는 시도까지 했다. 물론 요리 만드는 시간은 오래 걸렸고, 설거지 거리도 많았다. 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하지만 요리는 즉각 보상이 되었다. 내 정성이 내 혀와 위를 만족스럽게 채웠다. 어쩌면 요리를 하는 행위는 나를 긍정하는 쉽고도 재밌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하면서 마치 다른 차원의 삶으로 넘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는 음식만 받아먹던 삶과 직접 행위를 통해 내 노력을 기울이는 삶의 차원은 분명 다를 것이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되는 것이었다. 부지런의 형용사를 몸에 붙이면 삶의 밀도는 올라간다.
요리는 진짜 행위다. 영화 속에서 많은 장면, 나는 요리 말고도 진짜 행위의 순간들을 본듯하다. 마당의 눈을 치우고, 친구들과 직접 만든 요리로 밤새 걱정 없는 수다를 떨고, 계곡에 전세를 내고 다슬기를 잡는 풍경들까지, 사실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삶의 진실된 순간들은 그런 순간들이 아닐까? 하고 도시 생활을 하다 보면 진짜인 순간들을 잊고 산다. 월세와 취직을 걱정하고, 지인들의 SNS를 훔쳐보면서 나의 삶은 누군가에게 뒤처지는 게 아닌가 조바심 낸다. 스스로를 다그치며 속도를 부추긴다. 그리고 지쳐 간다.
혜원은 엄마(문소리)의 떠남을 처음엔 원망하지만, 엄마가 어린 혜원에게 남겨준 시간들은 혜원이 스스로의 삶을 가꾸는 뿌리가 된다. 영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엄마(문소리)의 편지였다.
“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엄마는 믿어 ”
영화를 다 보고 나에게 과연 ‘리틀 포레스트’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나를 회복시킬 수 있는 작은 숲, 기억. 공간.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형상은 없었다. 다만 내게 이야기의 형태로 남겨진 영화와 책 속 많은 삶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