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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ug 10. 2020

현대의 신화

인간은 왜 가상의 존재를 소망하나

*<올드 가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글을 쓰려면 스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올드 가드>는 새로운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죽지 않는 존재라는 설정 자체가 진부할 만큼 많이 쓰이기도 했고 이들을 다루는 방식도 기존 영화에서 쓰이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멸의 존재 혹은 힐링 팩터를 가진 이들은 영화시대 이전에는 신화를 통해 신으로 존재하기도 했고 햇빛 아래서 걸을 수 없다는 설정을 얹어 뱀파이어가 되기도 했다가 코믹스가 발전하면서 슈퍼히어로 혹은 빌런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불멸이라는 소재는 선과 악 양면을 모두 지니고 있었고 극히 드물게 <맨 프럼 어스>에서처럼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어느 시대에서건 사람들의 상상 속에 초월적인 존재로 존재해왔다. 어떻게 보면 닳고 닳은 이 소재를 넷플릭스가 빼든 방식은 진부하기도 하지만 시원시원한 액션과 자본의 향기가 나는 스케일은 영화관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만큼 매력적이다. 특히 <몬스터>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데 이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사령관 퓨리오사를, <아토믹 블론드>에서 로레인을 연기해 믿고 보는 액션스타로 거듭난 샤를리즈 테론의 액션 연기는 보는 것만으로 쾌감을 안긴다. 그런데 샤를리즈 테론은 3부작의 시작이라는 <올드 가드>에서 놀랍게도 상처 회복력을 잃은 모습을 꽤 이른 시점부터 보여준다.


<올드 가드>의 차별점은 신화에 맹점을 만든다는 데 있다. <로건>에서 이미 힐링 팩터를 잃어가는 로건의 모습을 통해 저물어가는 영웅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앤디(샤를리즈 테론 분)는 이와는 달리 회복력을 잃고 이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과 뱀파이어, 그리고 뮤턴트들이 평범한 인간은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채 죽는 모습만을 봐온 관객은 이제 초월적인 존재가 능력을 잃고 생존하는 모습을 보고 신화가 현실에 당도한 것을 목격한다. 앤디는 본인 스스로도 말했듯 신으로 추앙받은 적도 있었지만 회복력과 긴 수명을 제외하면 평범한 사람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즉 <올드 가드>는 기존에 그려진 불멸자들이 가졌던 이점을 모두 포기하고 회복력과 긴 수명만을 남겨 놓음으로써 현대의 신화를 창조해낸다. 불멸자 그룹은 천둥을 던지지도 못하고 엄청난 스피드와 선천적인 전투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훈련을 장기간 해서인지 후천적 전투력은 막강하지만), 손에서 칼날이 튀어나오거나 하늘을 날지도 않는다(그렇다고 해서 힐링 팩터와 얼굴을 맞바꾼 데드풀과의 비교는 사양합니다). 이들은 그저 오래 살 뿐이고 이 비밀을 들키지 않고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군사력을 키웠고 먹고 살기 위해 이 군사력을 이용해왔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본인들에 대해 놀라울 만큼 아는 것이 없다. <퍼시 잭슨> 시리즈에 등장하는 신들이야 신이니 아는 게 많고, <트와일라잇> 사가를 비롯한 많은 뱀파이어물 속 뱀파이어들도 장기간의 탐구를 통해 많은 것들을 알아냈으며 <엑스맨> 시리즈 속 뮤턴트들이나 플래시를 위시한 DC의 메타 휴먼들은 아예 연구소도 세운다. 헌데 불멸자 그룹은 그들 자신에 대해 필멸자들만큼이나 아는 게 없다. 본인들이 신화 그 자체이면서도 신화를 여전히 탐구하는 모양새다. 아는 거라고 해봐야 전 세계에 몇명 되지도 않는 종족이고, 떨어져 있을 때는 꿈으로 연결되지만 함께 있으면 서로에 대한 꿈이 사라지며 드럽게 오래 살지만 언젠가는 회복력을 잃고 죽는다는 것이다. 새로 등장한 불멸자 나일(키키 레인 분)이 왜 서로에 대한 꿈을 꾸느냐고 묻자 운명이라서 그런갑지 하고 대답하는 장면은 황당할 정도다. <올드 가드>의 설정은 설정을 탐구하는 자체가 하나의 재미였던 기존 작품들의 치트키를 과감히 포기하고 이들의 고뇌와 액션에 집중한다. 사실 이 고뇌와 액션마저 기존 작품들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것이기에 새롭지는 않지만, 앤디가 돌려받은 필멸성으로 인해 기시감을 밀어내고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상징적인 배우로 시청자를 붙잡는다.


출연 배우들의 면면은 <올드 가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포인트다. 샤를리즈 테론은 연기력과 액션 스타라는 점 이외에도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을 통해 젊음을 탐하는 마녀를 연기한 적이 있는데 앤디는 마녀라는 누명을 쓴 전사가 있다(그리고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뱀파이어물인 <트와일라잇> 사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불멸자 그룹을 쫓는 코플리를 연기한 치웨텔 에지오포는 <닥터 스트레인지> 에서 마법사를 연기했고 후에 빌런이 될 가능성을 암시했다. 가장 흥미로운 배우는 이들을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스티븐 메릭을 연기한 해리 멜링이다. 현대의 20~30대 관객에게 있어 성장기의 신화라 할 만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 사촌을 둔 머글 두들리를 연기한 전적이 있다(근데 이름은 해리). 마법사인 해리를 집에서 나갈 때까지 괴롭혔던 두들리처럼 메릭은 불멸자 그룹을 잡아두고 연구라는 명목 하에 이들의 세포를 채취하고(아니 할거면 좀 재우든가) 신체에 상처를 내서 회복하는 과정을 관찰한다. 부커를 연기한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전작 <레드 스패로>에서도 하는 짓이 읍읍..



출연 배우들의 전작이 어떤 식으로든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그만큼 <올드 가드>가 기존작들의 설정을 상당히 따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뱀파이어 이야기가 글 중간중간 나오는 이유는 <트와일라잇>사가 이외에도 미드 <뱀파이어 다이어리> 시리즈와 스핀오프인 <디 오리지널스>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회복력이 있고 좀 오래 살았을 뿐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그렇기에 앤디는 자신이 정확히 몇 살인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불멸의 능력을 가진 채 수장된 꾸인(베로니카 은고 분)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사는데다 자신이 해온 일들에 대한 결과도 알지 못한다. 앤디는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악화된다고 말하면서도 필멸자에 대한 시혜적인 시선을 보내거나 필멸자를 업신여기지 않는다(어리다고는 한다). 또한 그런 와중에도 세상의 일부나마 구하려는 노력을 거듭해왔는데 이들의 노력으로 수많은 인류가 살 수 있었음을 후반부 코플리를 통해 알게 된다. <올드 가드>는 신을 인간의 단계로 격하시켰지만 동시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가졌던 인간의 속성을 더욱 세심하게 다듬었다. 그 결과 세상을 구하는 대신 연애나 하고 배신을 일삼으며 친가족을 죽였다 살렸다 하던 신 혹은 불멸자들은 따듯한 마음씨를 가지게 되었고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메릭은 인류를 위한 볼드모트모르모트가 되는 대신 자신들의 삶을 선택하는 불멸자들을 향해 이기적이라고 소리치지만 시간이 걸렸을 뿐 이들은 언제나 인류를 구해왔던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현재 행한 선행의 결과가 눈앞에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암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왜 신과 같은 존재를 열망하는 것일까. 절대자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에서 오는 꿈이 빚어낸 존재들이 신, 뮤턴트, 뱀파이어와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J.R.R.톨킨은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모르도르까지 운반하는 이를 엘프도 마법사도 아닌 호빗으로 설정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실제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이들조차 정치 역학 등으로 희생당하거나 묵살되어 후대에 가서야 발굴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암호 해독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한 앨런 튜링은 동성애 배척으로 인해 자살했고 영국이 튜링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지는 불과 10년이 되지 않았다. 헤디 라머는 와이파이를 발명했지만 영화 한편으로 인해 발명 업적은 주목받지 못하고 아름다운 여배우로만 기억되었다. 역사 속에서 개인은 언제나 힘이 없었고 좌절하는 민중을 위해 탄생한 이들이 상상 속의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올드 가드>는 이제 그런 이들을 다시금 불러모으며, 현재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는 때로 아주 늦게 나타나기도 한다고 위로한다.



현재 우리는 정말로 개인도 국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있다. 가상의 세계 속에서야 아이언맨이 외계인도 물리치고 원더우먼이 악신도 때려잡지만 현실의 적은 실체조차 알 수 없다. 이런 시기에 도착한 넷플릭스의 불멸자 이야기는 아마도 그 자체로 지친 시청자를 위안하는 신화가 아닐까. 고대 그리스 시대 목동들이 양떼를 지키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신화를 만들어 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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