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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Sep 03. 2020

The Oscar goes to...

아카데미 시상식 혹은 오스카에 관한 이야기들

아카데미 시상식, 혹은 오스카. 별칭 오스카 때문에 이 시상식의 시상자들은 수상자를 호명할 때 "수상자는.." 대신 "The Oscar goes to..(오스카상이 누구에게 갈거냐면..)" 라는 표현을 주로 쓰죠.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스카상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데는 몇가지 유래가 전해집니다. 일단 저 트로피 이름이 오스카라 오스카상이라 불리게 되었는데요. 가장 유력한 설은 미국 아카데미협회의 도서관 사서였던 마거릿 헤릭 여사가 트로피를 보고 삼촌 오스카와 닮았다고 한 것을 지나가던 신문기자가 듣고 신문에 실어 오스카로 굳어졌다는 설입니다. 이외에 배우 베티 데이비스가 첫 남편이었던 허먼 오스카 넬슨과 트로피가 닮았다고 해 굳어졌다는 설이나, 칼럼니스트 시드니 스콜스키가 '그 상(that statue)'라고 부르던 것에 염증을 느껴 오스카라고 합시다..라고 명명했다는 설도 있죠(아니 왜 헨리도 로버트도 아니고 오스카였던거죠?). 셋 다 좀 황당한 설이긴 한데, 어느 것이 사실인지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만 이제 오스카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공식적인 별칭이 되었고 홈페이지에도 실려 있는 이름입니다. 아카데미 어워즈보다는 오스카가 훨씬 발음하기 쉽고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전 세계에 있는 하고많은 시상식 가운데 오스카는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 걸까요. 미국에서 열리는 시상식이라서..라기엔 감독조합 시상식도 있고 미국에도 시상식 종류는 많습니다. 오스카는 봉준호 감독 말대로 로컬 시상식입니다. 후보군 대다수가 헐리우드 영화이고 국제 영화상 부문(원래는 외국어 영화 부문이었으나 올해부터 변경되었죠) 후보에 오른 작품들이 아니면 외국 영화는 후보군에 들지 못합니다.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와 다른 점은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미국 영화가 후보의 절대 다수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객에게 익숙한 헐리우드 상업영화가 대거 수상 후보가 되죠. 그러다 보니 덕후들의 잔치처럼 보이는 세계 3대 영화제에 비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좀더 대중적이고, 그만큼 많은 돈이 오가는 시상식이기도 합니다. 뭐 나름 역사도 오래된 편이고요. 단순비교로 오스카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1944년에 시작되었는데 오스카는 1929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돈이 많이 오가다 보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수상하는 일이 헐리우드 관계자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되었죠. 올해 <기생충> 팀도 그야말로 지옥의 마케팅이라는 오스카 레이스를 했다고 하는데, 사실 오스카 레이스는 지금은 감옥에서 코로나에 걸려있는 하비 와인스타인이 시작했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작품상을 타게 하려고 투표자인 영화인들에게 DVD와 안내문을 보낸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하네요. 결국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당해 작품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와인스타인 컴퍼니는 하비 와인스타인을 향한 미투 고발로 파산하기 전까지 가장 많은 오스카 작품상을 소유한 회사이기도 했습니다(모종의 이유로 오스카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와인스타인 컴퍼니 배급입니다). 영화로 인해 일어선 이가 영화인들의 고발로 무너지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죠. 이러한 자잘한 에피소드는 뒤로 하더라도, 어쨌든 오스카는 전 세계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시상식임이 분명합니다.


와인스타인 에피소드 이외에도 아카데미 시상식은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사건들이 많습니다. 오스카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이런저런 오스카 소식이나 짤 등을 다들 접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에 관한 짤들이죠. 수차례 후보에 오르고 이미 연기력도 인정받은지 오래건만 디카프리오는 유난히 오스카와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레버넌트>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죠. leo oscar meme으로 검색해보니 구글에 재미있는 이미지가 상당히 많네요. 이를테면 이런거..?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가 오랫동안 수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아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매년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들은 등장하는데 한 해에 남녀 주연/조연 네명밖에 못 주니까요. 거기다 연기력이 좋아도 작품이 별로면 후보에조차도 오를 수 없고 그 해에 대진운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벌써 세 차례나 수상(여우주연상 두번, 여우조연상 한번)한 메릴 스트립은 3년에 한 번씩 후보에 올리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죠. 이렇듯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오스카의 악연은 유명하지만 정작 레오보다도 악연인 글렌 클로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디카프리오는 7번만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같은 횟수로 후보에 올랐던 글렌 클로즈는 (심지어 조연상조차도)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유력한 후보였던 2019년에도 처음으로 후보에 오른 올리비아 콜먼에게 주연상을 넘겨주었죠. 콜먼은 단상에 올라 "글렌, 이건 내가 원한 게 아니었어요.."라는 말로 수상 소감을 시작했습니다(글렌언니 심지어 나이도 많아요ㅠㅠㅠㅜㅜ).


2017년 방문한 돌비 씨어터.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되는 곳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기생충>의 수상으로 전 세계가 들썩거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카데미 수상작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3대 영화제의 수상작을 사실 일반 관객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아카데미 수상작은 들어보기라도 하는 경우가 많죠. 물론 한때 영화제나 아카데미 수상작은 지루하다는 소문이 있어 오히려 수상이 악영향을 끼친다는 업계 내 한탄도 있었으나 수상이 꼭 나쁠 건 없습니다(최악의 영화를 시상하는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는 예외일수도..). 하다못해 <밀양>조차 주연배우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국내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겼죠. 전도연의 수상이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레버넌트>만 해도 디카프리오의 수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 드디어 레오가 오스카 상을 탄거야? 무슨 영화길래 그러지? 한번 봐야겠다! 하는 식으로 보는 경우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CGV의 경우 매년 아카데미 후보작 특별전까지 진행하는 마당인데 오스카 시상식이 일반 관객에게 영향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걸려 있으면 일단 누군가는 보니까요.


회사원이 된 이후 가능하면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날은 연차를 내고 시상식 중계를 지켜보는 일이 어느새 저의 1년중 중요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영화팬이기도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제가 잘 아는 영화들이 그나마 많이 출전하는 올스타 대회이기 때문입니다. 기개봉작들이 후보에 오른 경우는 괜찮지만 미개봉작이나 개봉 예정작들이 후보에 오른 경우는 가능하면 CGV의 기획전을 통해 예습하고 관전합니다. 어떤 영화가 상을 탈 것인지는 마치 우리 아이가 대회에서 1등을 할 것인지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내가 응원하는 영화가 과연 상을 탈 수 있을까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되죠. 어떤 부문은 각축이라 할 만큼 치열하지만 어떤 부문은 너무나 쉽게 예상이 되기도 합니다. 일례로 2009년 남우조연상 수상자가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라는 건 시작도 전에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후보들이 안타까울 정도였죠. 간혹 막강한 후보를 제치고 다른 후보가 수상하는 이변도 일어나기는 하지만 아주 흔한 케이스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은 재미있는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시상식입니다. 특히 올해같은 경우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아성을 무너뜨린 <기생충>이 전 세계 영화인을 놀라게 했죠. 저조차도 <1917>의 수상을 예견했었으니 이변 중 이변이었습니다. 이외에도 <라라랜드>와 <문라이트>가 치열하게 경쟁했던 89회 오스카에서는 작품상 수상자로 <라라랜드>가 불려 <라라랜드> 제작진이 전부 무대까지 올라왔는데 수상이 번복되는 역대급 방송사고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막강한 작품상 후보였기에 있을 수 있었던 사고이기도 합니다.


돌비 씨어터 내부. 실제로 가서 보니 감개무량했습니다.


왜 <기생충>이 이변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아카데미 회원의 구성이 많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백인 남성 위주로 투표하던 과거에 비해 각성한 아카데미 회장은 다양한 회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흑인, 동양인, 여성 등 많은 비주류 영화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죠. 그렇다곤 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전히 백인 남성 중심이며 보수적입니다. 또한 이런 아카데미 시상식의 장벽을 처음으로 뚫은 것이 <기생충>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많은 이들이 헐리우드 내 차별을 반대하며 지금껏 노력해왔으니까요. 백인 중심인 아카데미에서 <노예 12년>과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거머쥔 역사가 있지요. 거기다 극장에 걸린 영화만 영화로 볼 것인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볼 수 있는 영화도 후보군에 넣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아카데미는 넷플릭스를 거부한 몇몇 영화제와는 달리 놀랍게도 넷플릭스 영화까지 후보군에 포함해 주는 아량(?)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감독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은 캐스린 비글로우 하나뿐입니다. 아직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아카데미는 나아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그만큼 아카데미 시상식은 헐리우드가 얼마나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아카데미는 전통적으로 코믹스 기반 영화를 지독히도 싫어해 <다크 나이트>는 작품상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지만 이후 <블랙 팬서>는 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캡틴 마블>이나 <원더 우먼>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죠. 한때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 역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썰도 있었지만 끝내 그는 MCU에서 은퇴하기까지 단 한번도 아이언맨 역으로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는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해냈죠. 아카데미의 취향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매년 아카데미 회원은 변화하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요.


매해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들의 이름이 걸리는 곳입니다. 지금은 PARASITE도 박혀 있겠군요.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는 곳이지만 일반적으로 무려 4시간에 달하는 시청 시간, 기타 등등의 이유로 인해 점점 시청자를 잃어가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이 헐리우드 내에서 갖는 권위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일요일 밤에 진행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월요일 오전에 방송되기 때문에 연차를 내지 않으면 국내 직장인은 보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또한 생방송을 중계하다보니 자막이 안 맞거나 해석이 이상해지는 면도 있어서 그냥 영어를 듣는 게 나은지 자막을 어떻게든 쫓아가는 게 나은지 고민이 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영화팬들에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전히 생중계로 지켜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시상식입니다. 시상식 시즌의 끝판왕인데다 아카데미에서 상을 타면 전세계 영화계에서 온전히 인정받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영화들이 거금을 들여 오스카 레이스를 벌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죠. <기생충>의 수상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만 봐도 아직까지 오스카의 영향력은 막강해 보입니다.


*국내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이동진 평론가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중계하며 해설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원래 채널CGV에서 중계되었는데 올해부터 tv조선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이야기는 길고도 많습니다. 언젠가 이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드디어 브런치에 새로운 분야로 연재를 결정했습니다. 한 해에만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만큼 한 해 분량도 몇 번에 나눠서 써야 할 것 같아 겁도 나지만, 보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독자분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재미있게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1929년 이전 생이 아닌 까닭에(..?) 1회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고, 올해 시상식부터 역순으로 쓸 계획입니다(어디까지 쓸지는 흠..). 오스카의 꽃은 작품상이겠지만, 이외에 분장상이나 편집상 등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도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점도 알려드리고 싶네요. 한국영화가 오스카에 도전해온 역사도 있고, 의외로(?) 기생충 팀 이전에 오스카 후보로 올랐던 한국인이 있었다는 점도 말이죠. 간헐적으로 연재하게 되겠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년도 오스카는 누가 가져가게 될까요. The Oscar goes to..?

 

헐리우드 거리에서 살 수 있는 짝퉁 오스카 트로피. 살까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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