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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Sep 21. 2020

스크린이라는 현미경

파리에 가지 않고 다 빈치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스크린이란, 그리고 스크린이 있는 극장이란 시네필들에게 경의를 갖추어 대할 만한 무엇이다. 더러 스크린을 모독하는 수준 낮은 영화가 스크린에 걸릴 경우 중간에 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영화가 웬만큼 재미가 없더라도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어두운 곳에서 오랜 시간 큰 화면의 빛을 눈으로 좇는 것은 그만큼 관객에게 집중력을 선사한다. 이와 더불어 스크린에 비춰지는 것들은 자세히 볼 수 있다. 이런 연유로 뮤지컬을 녹화한 작품들이 스크린에 걸리거나, 월드컵 기간에는 무려 3D로 경기가 생중계되기도 한다. 심지어 때로는 인기 드라마의 경우 새 시즌이 발표될 때 일부 에피소드를 극장 상영하는 이벤트도 진행되곤 한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고 넷플릭스 등의 ott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영화를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공식을 깨져간다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스크린은 여전히 매력적인 무엇이다. 특히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한국 극장가는 이러한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이맥스나 4D 등의 새로운 관람 형태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반드시 큰 화면으로 봐야 한다고 홍보되는 영화들은 대부분 규모가 큰 텐트폴 무비나 액션영화다. 필자의 경우 우연히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아이맥스 3D와 2D 형태로 반복 관람했는데 집중도가 확연히 달랐다. 첫 장면에서 외계 행성의 붉은 대지를 아이맥스로 목격했을 때의 충격은 일반 스크린에서 봤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스크린에서, 혹은 특수 관람 형태로는 볼 필요가 없는 걸까. 소규모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혹은 다큐멘터리 등은 일반 스크린이나 TV로 봐도 충분한 걸까. CGV에서 단독 개봉한 <루브르박물관 기획특별전>은 이 질문에 회의적인 답을 내놓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뮬란>과 나란히 개봉한 데다 CGV 단독 개봉이고, 한국 관객에게 크게 소구되지 않는 다큐멘터리라 이런 영화가 개봉한 줄도 모르는 관객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들을 스크린이라는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무려 해설과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살면서 프랑스에, 루브르 박물관에 가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영화에 따르면 매일 약 3만 명 가량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고 한다. 간 사람이 또 가는 경우도 있을테니 평생 가볼 일 없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 프랑스까지 가는 비행기값에 머무르는 숙소 비용만 해도 예산을 꽤 잡아야 하므로 생활에 여유가 없으면 루브르 박물관은 사치다. 교육격차로 인해 루브르 박물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루브르박물관 기획특별전>과 같은 작품들은 이러한 이들에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TV 다큐멘터리에서도 필경 다 빈치에 대해 다루는 일이 흔하겠지만 스크린으로 볼 수는 없다. 거기다 루브르 박물관을 가본 이들은 알겠지만 다 빈치의 역작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간다 해도 가까이에서 볼 수 없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그림 근방에 저지선을 쳐 놓은 데다 그 저지선 밖으로도 관광객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모나리자는 스크린으로 만나는 편이 현장에 가는 것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거기다 모나리자는 굉장히 나이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에 날이 다르게 그림이 변화한다. 영화에 따르면 모나리자를 보존하기 위해 바른 바니쉬가 그림을 변형시켰고 그림을 받치는 판넬도 나무인지라 점점 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모나리자는 자리에서 내려올 수 없다. 내려오면서 그림을 변형시킬 우려가 있어서다. 여타 그림들처럼 전세계 여행도 불가능한 모나리자를 프랑스에 갈 여력이 없는 일반인이 자세히 보려면 결국 스크린을 통해서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3만 5천여 점의 작품 중 극히 일부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화의 러닝타임은 약 2시간 정도다. 이수정 브런치 작가님이 친절하게 계산해주신 바에 따르면(https://brunch.co.kr/@insightraveler/86) 작품당 1분씩 할애해서 24시간 본다 해도 24.3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모든 작품을 영상으로 기록한다면 엄청난 분량이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그 모든 작품을 2시간 안에 전부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객은 다 빈치의 작품을 일부나마 자세히, 설명과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 셈이다. 또한 영화에 실린 해설은 결국 큐레이터의 가치판단이 들어간다. 관객은 결국 스크린을 통해 루브르 박물관이 원하는 시각으로 다 빈치의 작품을 볼 수밖에 없다. 프랑스인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전 세계의 예술작품들을 강탈해온 역사로 악명이 높은 프랑스가 본인들을 미화하는 시각으로 영상을 제공한다면 관객이 그대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동시에 루브르 박물관의 해설에서는 아마도 들을 수 없을, 복원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다 빈치 특별전에 대한 뒷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다. 큐레이터들이 하고 많은 다 빈치의 작품 가운데 특별전에 어떤 작품들을 선정했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등이다. 또한 말한 대로 모나리자는 하루가 다르게 안색이 안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ㅠㅠㅜ) 필름으로 현재 상태를 기록해두는 것은 후대에 남을 귀중한 유산이 된다. 아무리 복원 기술이 좋아져도 언젠가 모나리자는 자연의 법칙으로 사라질 것이고 후대에 태어나는 이들은 모나리자를 자료로밖에 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다 빈치의 작품들을 조금이라도 더 영상매체로 기록해두는 편이 마땅하다. 위 사진을 보니 최후의 만찬은 벌써 많이 맛이 간 듯하다. 다 빈치가 살아있을 시기에 색감이 선명했던 그림들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또한 스크린을 통해 루브르 박물관을 접한 이들은 영업당할 가능성이 높다. 필자만 해도 대학시절 방문했던 파리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며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브르박물관 특별기획전>은 다 빈치의 작품만을 보여주지 않고 박물관의 아름다운 야경을 함께 보여주며 관객을 유혹한다. 예술의 도시(라 포장된) 파리에서 마카롱을 한입 먹고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다가 루브르에서 한적하게 그림을 보고 세느강변을 걷는다니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지 않은가(실제로 루브르 박물관은 관광객 천지라 한적하게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은 인기가 없는 전시실 뿐이다). 현대 미술이 발전하고 아이패드 등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면서 유화를 그리는 이는 적어졌지만 유화가 주는 생동감과 붓터치의 미학은 실제로 본 이들만이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이렇게 변화해가는 시대에 과거의 유산을 시대의 기술에 발맞춰 선보이면서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있지도 않은) 향수를 자극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아름다운 그림 가운데 다 빈치의 작품, 그것도 그 중에서 일부만이 소개된 점은 아쉽다.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에 가 보면 모나리자에 정신이 팔려 다른 좋은 그림들은 지나치는 관광객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몰랐던 다 빈치의 작품도 함께 소개하고, 그렇게 해서 관광객을 루브르로 불러들여 다른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소명은 다 한게 아닐까. 스크린은 사회 현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예술작품 그 자체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기능도 한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출처 : 포스터는 CGV 홈페이지, 여타 그림들은 구글링입니다. 다 빈치의 작품들은 감사하게도 아주 나이가 많아 저작권따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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