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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Nov 30. 2020

신체를 긍정하는 공포

신체를 열망하거나 혐오하거나

바디체인지물은 은근히 꾸준히 만들어지는 장르 가운데 하나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너의 이름은.>이 있다.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 분)와 타키(카미키 류노스케 분)의 신체가 랜덤으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각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초해 있어 아쉬운 면이 있었다. 특히 미츠하보다도 타키의 경우가 두드러지는 편인데 단적인 비교를 하자면 미츠하가 타키의 몸으로 카페에 가길 즐기는 것은 카페가 거의 없는 산간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이다(영화를 보면 타키의 몸을 한 미츠하가 타키의 남자친구들과 카페에 종종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타키가 미츠하의 몸으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성적인 호기심에 기인하여 미츠하의 신체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며 이는 미츠하의 생존 근거로서도 사용된다. 블룸하우스의 신작 <프리키 데스데이>는 성별 반전 바디체인지물을 보다 여유롭게 활용한다. 밀리(캐서린 뉴튼 분)의 몸을 가진 부쳐(빈스 본 분)는 밀리의 가슴을 만지작거리지만 타키처럼 변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변환된 신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타키의 몸이 된 미츠하는 타키의 신체를 보고 놀라면서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부쳐의 몸이 된 밀리는 볼일을 보면서 편리성(?)에 반응하고 남성 신체를 가지고 놀며 신기해한다. <프리키 데스데이>는 자신의 신체를 긍정할 줄 모르던 소녀가 바디체인지를 겪으며 긍정하는 법을 배우고, 나아가 이것이 남성들에게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이야기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에 비춰지는 밀리의 모습은 사회적인 미의 기준에서 그닥 나무랄 데가 없다. 금발을 길러 가지런히 정리했고 날씬하며 키도 결코 작지 않다(구글 프로필상 캐서린 뉴튼의 키는 165cm다).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얼굴도 미인상이다. 인형탈을 쓰고 응원단을 할 정도니 체력도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밀리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외모평가를 당하며 대부분 부정적이다. 영화 초반 운동부 소년들은 밀리를 보고 '얼굴만 가리면 쟤도 꽤 괜찮다'는 개소리를말을 서슴없이 하고 또래 소녀들마저 밀리의 옷차림을 비웃는다. 밀리와 몸이 바뀐 부쳐는 밀리의 몸이 약하다는 말을 계속해서 내뱉고 실제로 몸이 바뀌기 전 하던 방식대로 살인을 저지르려고 하면 언제나 밀리의 신체가 발목을 잡는다. 문을 부수려고 해도 주먹의 힘이 예전같지 않고, 성인 남성을 상대하려니 근력이 부족해서 도리어 발에 채이고 만다. 하다못해 손에 쥐고 있던 식칼마저도 밀리의 어머니에게 쉽사리 빼앗길 정도니 196cm의 거구였던 남성이 느낄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밀리의 몸을 한 부쳐가 쉽사리 하던 짓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초반 밀리로 대변되는 여성의 신체는 한없이 나약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부쳐는 밀리의 신체를 얻고 밀리의 평소 스타일과는 다르게 소위 말하는 '쎈언니' 스타일로 등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밀리의 신체가 타인들에게 공포감을 주지는 못한다.



와중에 부쳐는 하던 가닥이 있어 밀리로 대변되는 소녀적인 특성은 또 기가 막히게 악용한다. 부쳐의 모습을 한 밀리가 나타나자 연약한 피해자가 되어 경찰을 부르는가 하면, 밀리의 또래 소년들을 살해하기 위해 유혹도 마다하지 않는다. 즉 영화 중반부까지 밀리의 신체는 타인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연약하고, 성적으로 유혹적인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물론 부쳐가 그 몸을 하고도 기어코 살인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 날렵해진 신체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밀리의 몸에 익숙하지 않은 부쳐의 엉성한 모습이 함께 나타난다.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밀리의 몸에 적응한 부쳐는 근력을 이용하는 대신 살인 대상이 방심한 틈을 타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한다. 바로 이 시점부터 영화는 밀리의 신체를 긍정하기 시작하며 동시에 남성신체에 대한 대상화와 부정적 시각을 함께 반영한다. 게이인 조쉬(미샤 오쉐로비치 분)가 밀리의 신체를 한 부쳐를 묶어놓고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기 위해 롤플레잉 중이라고 하는 등 성 고정관념을 결국 활용한다는 데서 아쉬운 면도 보이지만 동시에 거구의 남성신체를 단순히 공포의 대상이 아닌 약점을 가진 신체로 대상화하는 지점들이 드러난다. 로리(제이미 리 커티스 분)를 위시한 <할로윈> 속 여성들은 살인마 마이클(닉 캐슬 분)을 쓰러트려야 할 거대 악으로 여겼을 뿐 자신들과 같은 신체를 가진 인간임은 간과했다. <할로윈>을 오마주한 <프리키 데스데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각을 달리한다.


한편 부쳐의 몸이 된 밀리는 어설프긴 하지만 부쳐의 몸에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힘과 자유를 발견한다. 거구의 몸과 살인마의 얼굴로 인해 존재 자체가 공포가 되었다는 사실을 힘들게 깨달은 밀리는 신체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부쳐의 신체는 영화 초반 어느 정도 부정적으로 묘사되긴 하지만 이는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부쳐의 생활습관 때문에 파생된 부정성이다. 잘 씻지 않는지 몸에서 냄새가 나고(피를 자주 만지면 씻어도 냄새가 잘 가시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긴 하다), 무서운 인상을 하고 있지만 이는 부쳐가 면도를 하고 옷만 정장으로 갈아입어도 사라지는 단점들이다. 반면 밀리의 신체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은 단순히 밀리가 노력을 한다고 변화시킬 수 있는 지점들이 아니다.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되는 얼굴과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엉덩이는 밀리가 그 무엇을 한다 해도 바꿀 수 없으며 기실 애초에 단점이 아니기에 개선의 여지 자체가 없다. 얼굴은 사회적인 미의 기준에 따라 평가당하며 엉덩이는 단순히 밀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대상화되는 신체부위다. 하지만 밀리는 자신을 괴롭히던 소년이 부쳐의 신체로 마주치자 바로 겁에 질리는 것을 발견하고 물리적인 힘으로 대변되는 권력을 마음껏 즐긴다. 동시에 밀리는 이 무서운 하드웨어조차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이는 영화 말미 반전을 안김과 동시에 밀리가 자신의 신체를 긍정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성별에 따른 신체의 긍정/부정성과 함께 <프리키 데스데이>는 타고난 것을 긍정/부정하기보다는 활용 여부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싸구려 원피스를 입고 등교하던 밀리는 또래 소년들에게는 아무런 시선을 받지 못하고 또래 소녀들에게는 경멸섞인 비웃음을 받는다. 밀리의 몸을 한 부쳐는 붉은 색의 가죽자켓을 입고 머리를 한껏 올려묶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등교하는데 밀리를 바라보던 소년들의 시선이 달라졌음이 드러난다. 밀리를 비웃던 소녀는 밀리가 부쳐에게 살해당할 뻔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어떤 식으로든 밀리가 받는 관심이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기에 사회적인 여성성이 주는 한계 또한 드러나지만 같은 신체를 가지고 다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게 볼 수 있다. 부쳐의 신체 또한 그 자체로는 위협적이지만 밀리의 엄마 코랄(케이티 피너런 분)과 대화할 때에는 목소리만으로 타인에게 안정감을 준다. 게다가 부쳐의 신체를 한 밀리가 친구들에게 소프트웨어가 밀리임을 알리기 위해 춤을 추는 장면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밀리와 부쳐가 각자의 신체를 가지고 대결하는 마지막 장면은 밀리에게서 어느 정도 부쳐의 모습마저 비쳐 보이는데, 이는 하드웨어만큼이나 소프트웨어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성들은 태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혐오하는 방법을 배운다. 얼굴의 잡티를 가리기 위해 화장을 하고 더 날씬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한다. 사회적인 여성성은 죽을 때까지 개인에게 도전하며 획득할수록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이 함께 덧씌워진다. 마릴린 먼로는 멍청한 금발 여성으로 프레임되었으며 영화 속에서도 밀리를 비웃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소녀는 외모강박에 시달리지만 자신의 무지로 인해 살해당한다. 반면 남성의 신체는 사회적인 남성성을 획득할수록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관리된 모습보다는 타고난 남성 신체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턱수염이나 콧수염은 관리의 대상인 여성의 털과는 달리 남성성의 증거로 간주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부쳐는 밀리의 신체가 가진 장점을 활용하고도 마지막까지 밀리의 신체를 부정하며 밀리를 모욕하지만 밀리는 부쳐의 신체적인 약점을 파악해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밀리는 남성 신체와 여성 신체를 모두 경험하고 각 신체의 장단점을 파악한 명민한 소녀이며, 부쳐는 남성 신체의 장점에 매몰되어 살아온 나머지 단점을 간과한 남성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주로 공격 대상으로 삼던 약자인 10대와 여성에 의해 붙잡히고 최후를 맞이한다.



헐리우드의 많은 공포영화들을 오마주한 <프리키 데스데이>는 공포스럽기보다는 우스꽝스럽고 드라마틱하다. 영화적인 만듦새에 있어서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지만 신체 변화의 끝무렵에 선 사춘기 소녀가 자신의 신체를 긍정하고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성취라 할 지점들이 읽히기도 한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스크린에 비친 밀리의 표정은 밀리처럼 보이기도, 부쳐처럼 보이기도 한다. 밀리의 무표정은 사회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보여주는 사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밀리는 부쳐의 하드웨어를 겪은 후 그가 가졌던 장점만을 획득해서 탈출한 건 아닐까.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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