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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Nov 23. 2020

보이지 않는 이들을 수면 위로

시나리오 작가를 보여주는 방법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 가장 보이지 않는 이는 어쩌면 시나리오 작가들이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각본을 쓰는 이들은 감독이나 배우보다 스포트라이트를 현저하게 덜 받는다. 오죽하면 <데드풀>의 오프닝 크레딧에서 감독 및 배우들은 농담삼아 떨거지(?)처럼 표기하고도 작가들만큼은 진정한 히어로들이라 표기했을까. 여담이지만 <데드풀>의 작가들은 무보수로 현장에 출근할 것을 제작사로부터 강요당했는데, 이를 들은 주연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흔쾌히 사비로 이들에게 보수를 제공했다고 한다. 헐리웃에 작가조합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작가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는 이유는 작가 대부분이 내성적인데다 공적인 자리에서 인맥을 만드는 걸 잘 못해서라고 한다(제작 쫑파티 등 파티에 참석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이들이 적어서라고도 한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스크린 출장도 희귀한 편인데 같은 글쟁이 직군에서도 소설가나 언론인들은 종종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반면 유독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종은 보기가 어려웠다. 나만 해도 당장 기억나는 작품이라곤 <트럼보> 하나뿐이다. 마찬가지로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내가 추측해보건대 작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직군을 다룬 이야기 자체를 민망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드디어 시나리오 작가를 다룬 또 다른 이야기 <맹크>가 넷플릭스와 극장을 통해 공개됐다. <맹크>는 스크린에서 보기 드문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종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도 영화사적인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시나리오 작가가 얼마나 서러운(?) 직종인지 설명을 해둘 필요가 있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영화의 시작점에 해당하지만 제작사에서 프로젝트 식으로 진행하는 작품이거나 업계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는 케이스(대표적으로 조너선 놀란이나 애런 소킨)가 아니라면 시나리오 개발에 거의 투자받지 못한다. 조너선 놀란은 <인터스텔라>를 쓰기 전 4년간 대학에서 물리학 수업을 들었다고 하는데 일단 청강(에 돈이 든다면)료, 수업을 듣는 동안 다른 작품을 쓰지 못하니 기회비용, 거기다 시나리오 작업 후 물리학 교수에게 검수를 받는다면 검수료까지 개발비에 포함된다. 좋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는 돈이 들지만 역설적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트리트먼트도 없이 선뜻 개발비를 지급하려는 제작사도 잘 없을 것이다. 거기다 우여곡절 끝에 시나리오를 완성해 들고 가면 제작사는 이게 맘에 안드네 저게 맘에 안드네 뜯어고치기 시작한다. 최악의 경우 다른 작가가 고용되어 내가 만든 초고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제작사의 입김 및 상업성을 고려하여 몇몇 사항은 변경되기도 한다. 시나리오 개발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원작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인공이었던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의 경우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이유가 타 제작사들이 주인공을 백인으로 변경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섀도우 헌터스>의 경우는 주인공 클레리를 남성으로 바꾸자고까지 했다고 하니 원작자들이 얼마나 이마짚했을지 눈에 선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기껏 유려하게 대사를 써 놓으면 어떤 배우들은 애드립을 쳐서 대사를 바꾸어 놓는다(배우 김하늘은 작가들이 캐릭터를 고려하여 대사를 썼을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대사를 바꾸지 않고 연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악은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반대하는 말한마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맹크>가 실제 인물인 허먼 맹키위츠(게리 올드먼 분)를 얼마나 반영했는지, <시민 케인>의 제작과정이 어느 정도로 고증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고초(?)를 겪는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맹크>는 반가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영화 속 맹크는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고집이 세고 제작사와 싸우며 마시지 말라는 술도 마음대로 마셔 버리지만 독일의 한 마을 전체를 미국으로 이주시켜 주민들을 구한 이이기도 하다. 책상 앞에 앉아 글만 써야 할 것 같은 작가라는 이미지를 과감하게 부수고 맹크는 헐리우드를 돌아다니며 감독, 배우들과 어울리고 의견을 교환한다. 교통사고로 인해 영화의 중심축은 침대에 꼼짝없이 갇혀 속기사를 시켜 대본 작업을 하는 맹크의 모습이 주를 이루지만 그 와중에도 영화는 활력을 잃지 않는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 속기사 리타(릴리 콜린스 분)와의 에피소드 그리고 하우스먼(샘 트로튼 분)과의 팽팽한 긴장감은 맹크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요소들이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한편이라 일컬어지는 <시민 케인>은 아마도 이런 복잡성을 가진 맹크에 의해 탄탄한 토대를 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시나리오 작가들은 책상 앞에서 타자만 치는 이들이 아닌 사회를 경험하며 의견을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성장해야만 더 뛰어난 작품을 써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맹크>는 <시민 케인>의 제작과정에서 어떤 정치적인 변화가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함께 다룬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를 함께 다룸으로써 <맹크>는 예술과 사회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주지사 선거와 함께 속기사 리타의 남편이 공군으로 전투 중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사회적인 변화가 맹크를 통해 <시민 케인>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암시한다. <시민 케인>은 헐리웃이 성장하던 시기에 다각적인 사회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작품이었고 이는 기본 토대를 써낸 맹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민 케인>의 성취는 지금도 여러가지로 회자되지만 촬영 기법에 있어서 딥포커스(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또렷하게 찍는 기법)로 유명하다. 영화의 가장 기본은 내러티브일텐데 <시민 케인>을 걸작으로 만든 서사는 배제한 채 촬영 기법이 더 주목받는 현실은 작가들에게 있어서는 억울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이는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필명을 써가며 각본을 집필했던 달튼 트럼보를 다룬 영화 <트럼보>를 연상시킨다. 트럼보도 맹크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격변 한가운데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간 작가였고 이들의 성취는 오스카 수상으로 증명된다. 물론 오스카 수상이 반드시 작가의 역량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오스카 시상식에서 다수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시민 케인>이 가져간 트로피는 오리지널 각본상 하나뿐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작가의 역량이 감독의 역량보다도 저평가되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사실 <맹크>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제작 과정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액자식 구성이 된다는 데 있다. 스크린 속 작가 맹크는 배우 게리 올드먼에 의해 묘사되는데 게리 올드먼이 외는 대사는 결국 다른 작가가 작가를 연기하라고 써준 대사다. 영화라는 작업은 작가들이 보이지 않는 유령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또 한 층의 수면이 생기는 셈이다. 하부에 생긴 다른 한 층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영화는 종종 각본에 쓰이는 신 표기를 그대로 가져온다. 이 신 표기는 각본에 표기하라고 되어 있었을까, 아니면 감독의 연출에 불과한 것일까. 감독은 시나리오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이들일 뿐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배우는 각본과 감독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말하는 인형이라 지칭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스크린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건 작가들이다. 언제나 오리지널 각본의 부족으로 허덕인다는 헐리웃조차도 아직까지 작가의 역할을 크게 인정해주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맹크>는 시사점을 갖는다. 2007년 작가조합의 파업으로 수많은 헐리웃 영화들이 제작위기를 맞았고 많은 드라마가 에피소드 수를 줄여야만 했는데 이 사건을 기점으로 작가의 권리가 어느 정도 인정되긴 했지만 아직도 작가는 감독이나 배우만큼의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여담으로 2007~2008년 방영되었던 미드들을 보면 시즌별 에피소드의 수가 적은데 그 이유가 바로 이 작가조합 파업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 크레딧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려달라는 맹크의 싸움은 그래서 현대에도 의의를 갖는다.


고전 영화의 제작 과정이나 헐리웃의 성장 과정을 그린 이야기들은 많다. <헤일, 시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경우 이 시기에 대한 감독들의 향수가 반영된 경우다. 하지만 이 영화들에서도 배우와 감독이 영화의 주를 이루며 제작과 투자까지 다룰지언정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마저도 배우와 감독은 가십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고, 제작사는 예술적인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돈만 밝히는 상업 물귀신처럼 그려진다. 어쩌면 이런 묘사방식은 모두에게 부정적인지 모른다.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는 <마릴린과 함께한 일주일>에서 배우적 역량은 인정받지 못하지만 실제 해당 시기의 먼로는 연기로 물이 올랐을 시기였다. 하비 와인스타인처럼 상업적인 성공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여기며 그 뒤로 여성 인력을 성착취해온 케이스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자금을 끌어오는 이들이 제작자다. 디즈니의 수장 밥 아이거는 상업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백인 남성 히어로가 아니면 관객들이 보지 않을 것이라는 업계의 편견을 깨고 <블랙 팬서>와 <캡틴 마블>을 제작해 성공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픽사 내부에서 추문이 끊이지 않았던 존 라세터를 과감히 내보내고 피트 닥터를 수장으로 앉히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스크린 뒤에서 그 불을 들고 서 있는 이들을 밝히려는 시도는 이어져야만 하며 특히 지금까지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한 작가들의 이야기는 언제고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 자신도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가 작가인 맹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감독이기에 각본의 힘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기념비적인 작품인 <시민 케인>의 제작 과정을 돌아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복잡한 맹크를 고스란히 재현한 게리 올드먼에게도, 그리고 맹크를 복잡한 인물로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준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릴리 콜린스에게도 공로의 일부가 돌아가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민 케인>이 만들어지던 시기를 철저하게 고증하고 상황에 맞추어 플롯을 재구성한 후 환상적인 각본을 제작진에게 선사한 각본가 잭 핀처를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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