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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Dec 24. 2020

거친 길을 마다하지 않은 그대에게

슈퍼걸 이대로 보낼 순 없다

개인적으로 애로우버스에서 가장 안쓰러운 히어로는 슈퍼걸이 아닐까 합니다. 캐릭터 자체의 전사를 보면 가장 비극적인 건 배트우먼/케이트 케인이지만 제작과정 등을 볼 때 슈퍼걸이 힘겹게 여성 솔로 히어로로서의 앞길을 다져 놓았기에 결국 배트우먼도 애로우버스에 합류한 것이니까요. 배트우먼도 그랬지만 슈퍼걸은 시작부터 여성 히어로라는 점 때문에 내셔널 시에서 수많은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거기다 다른 여성 히어로들은 편한 바지 차림으로 활동하는 데 반해 슈퍼걸은 이번 시즌에 와서야 바지로 갈아입을 수 있었죠. 그 바지를 입혀준 것조차 또 다른 여성인 레나 루터입니다. 슈퍼걸은 새로운 바지 수트를 입고 "바지다!"라며 좋아하죠. 그간 짧은 치마를 입고 내셔널 시를 날아다니느라 얼마나 불편했을지 눈에 선합니다. 슈퍼걸이 처음 등장할 때 어떤 시청자들은 검은 스타킹을 신겨 놨다며 좋아했다는(다음 변태 어서오고) 반응을 보면 강력한 힘을 가진 크립톤 출신 외계인조차 슈퍼히어로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서만 받아들여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뭐 이렇게 슈퍼히어로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려는 사람들을 보니 숏컷의 동성애자 히어로 배트우먼이 등장했을 때 반발이 심했던 게 이해가 가기도 하는군요. 저로서는 굳이 여성이라는 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서사상의 이유로 벗겨지기 쉬운 가발을 착용하고 현장을 뛰어야 했던 배트우먼이 안타깝기만 했는데요.


이전에 밝힌 바와 같이 <슈퍼걸> 시리즈는 다음 시즌인 시즌 6를 끝으로 애로우버스에서 하차하고 그 자리를 <슈퍼맨과 로이스 레인>이 채우게 됩니다. 슈퍼맨과 슈퍼걸은 서부 개척정신을 기반으로,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인 미국이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히어로들입니다. 미국 사회의 미디어에서 이민자는 외계인의 형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예시가 닐 블룸캠프 감독의 영화 <디스트릭트 9>이죠. 지구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물리적인 힘을 보유한 크립톤인들은 우월한 피지컬을 가진 백인으로 형상화되어 미국인이 선망하는 대상인 동시에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창조주들은 언제든 폭주할 가능성을 가진 크립톤인들에게 최악의 약점인 크립토나이트를 선사합니다. 어쩌면 이민자를 대변하는 크립톤인들에게 미국 사회는 무언의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너희가 아무리 미국화되고 심지어 백인 형상을 갖춘 채 미국인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더라도 우리는 너희를 막을 최후의 수단을 보유할 것이라는 강경한 선을 긋는 메세지 말입니다. 사실 이 메세지는 크로스오버에서 스쳐 지나가듯 등장했습니다. 평행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클라크 켄트 중 로이스 레인과 결혼하여 시골에 정착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클라크 켄트는 크립토나이트 앞에서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물리적인 힘을 포기했기 때문이죠. 이런 이민자 비유는 요즘에는 다소 희석되기도 했고, 주인공이 외계인이라는 설정과 원색계열 빨강파랑의 촌스러운 슈트 때문에 사실 슈퍼맨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기는 어려운 히어로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최근의 슈퍼히어로 유행은 인간적인 한계와 고뇌로 괴로워하는 모습인데 물리적인 힘에서 별다른 제한이 없는 크립톤인들은 유행을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영화판에서 주먹만 자랑하다가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 <맨 오브 스틸>의 실패는 이런 점에서 기인합니다.



<슈퍼걸> 시즌 1, 2는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 참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미드는 초반 시즌은 안정적으로 흘러가다가 시즌이 연장될수록 막장으로 흘러가는데 <슈퍼걸>은 그 반대였습니다. 슈퍼히어로라기엔 어설픈 모습을 초반에 지나치게 많이 노출했던 슈퍼걸은 시즌 3쯤에 이르러 안정된 서사를 보여줍니다. 서사의 안정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의외로 슈퍼맨의 숙적인 렉스 루터의 이복 남매 레나 루터입니다. 시즌 1, 2에서는 주로 DEO의 남성 조력자들과 일하던 슈퍼걸은 뛰어난 기업인이자 과학자인 레나 루터를 만나 비로소 성장합니다. 카라의 첫 상사였던 캣 그랜트는 기자로서 카라의 능력을 알아봐준 인물이자 슈퍼걸에 우호적인 기사를 실어 여성 히어로를 반겨주었던 언론사 캣코의 뛰어난 수장이었습니다. 구시대적인 발상에 갇혀 있고 전형적인 여성 상사의 모습을 구현해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나름의 매력 또한 만만치 않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카라가 기자로서 성장하는 데 캣의 도움이 지대했던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시즌 2부터는 보이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 빈자리를 채운 것이 레나 루터입니다. 레나는 슈퍼걸/카라와 협업하는 동시에 더 넓은 시야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크립토나이트를 사이에 둔 슈퍼걸과 레나의 논쟁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카라가 슈퍼걸과 카라라는 두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계기이자 자신의 힘이 가진 무서움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선 논쟁이 있었기에 슈퍼걸은 지구에 남은 크립토나이트를 배트우먼에게 맡기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레나는 시즌 전반에 걸쳐 가장 입체적인 인물에 해당합니다.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L corporation을 운영하며 카라가 일하던 신문사가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아무렇지 않게 사들이는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일이 힘에 부치자 어떠한 연줄도 없는 여성을 열정과 능력만을 보고 맡기기도 하죠. 또한 빌런의 흉계로 L corp의 기술이 사람들을 해치는 의도로 악용되었을 때도 모든 책임을 지고 기업을 접는 결정을 내릴 만큼 도덕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레나와의 우정은 카라에게 큰 의미가 있었고 카라 또한 자신의 정체를 밝힐 것인가에 관해 고뇌에 빠집니다. 카라와 레나의 우정과 전쟁은 이번 시즌 서사의 중심축으로 기능합니다. 빌런과 히어로 사이의 선을 오가는 레나는 분명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수단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합니다. 레나와 카라의 싸움은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관한 철학적 논쟁입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유의지라면 기술로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레나의 논지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기술조차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완벽하지 않다는 벽에 부딪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나는 타인을 위하려던 이 궁극의 기술조차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친오빠 렉스 루터로부터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레나는 렉스에게서 등을 돌려 카라에게 돌아갑니다. 렉스가 절대악으로 묘사되어 빌런치곤 단순한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만 레나와 대비되어 과거 평면적으로만 그려지던 여성 캐릭터의 복잡성을 한층 강화시켜주는 부수 효과가 있기도 했습니다.



슈퍼걸은 어떻게 보면 플래시만큼이나 절대적인 선에 집착하는 인물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선에 집착하는 강도가 더 강한 만큼 더 고집이 셉니다. MCU에서는 캡틴 마블보다도 캡틴 아메리카에 더 가깝습니다. 슈퍼걸의 여린 마음씨는 타인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죠. 이로 인해 카라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 저버리게 된 레나와의 우정에 슬퍼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탓합니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슈퍼히어로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레나의 경우 슈퍼걸의 정체를 몰라 자신의 친오빠를 해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는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의 의도를 무시한 채 배신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죠. 레나의 행동보다도 카라의 죄책감을 이해하는 것이 시청자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는데, 카라는 과거로 돌아가 수십번 리플레이를 해본 후 죄책감을 씻어냅니다. 서사의 전체 흐름에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이 에피소드는 카라의 내면적 성장에는 필수적인 에피소드이기도 했습니다. 카라는 이제 슈퍼걸로서의 자신과 카라 댄버스로서의 자신을 분리하고 자신이 내린 결정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본래 행하려던 궁극적인 선을 위해서는 한때 친구였던 레나 루터조차도 막겠다고 결심하죠. 슈퍼걸과 레나의 전쟁은 흡사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와 아이언맨/토니 스타크가 각각의 신념으로 한때 친구였던 이와 등을 돌리고 전쟁을 벌였던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연상시킵니다 . 카라와 레나 또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친구조차 저버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되죠. 카라가 레나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장면은 두 캐릭터가 신념을 위해 얼마나 고뇌하고 이를 통해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슈퍼걸>은 또한 <애로우>가 받아들인 다양성을 한층 더 확대해왔습니다. 애로우의 사이드킥 중 하나였던 미스터 테리픽은 흑인 동성애자였습니다. 뛰어난 능력치로 인해 해킹과 물리적인 전술 모두에 능했지만 사이드킥 캐릭터로서는 비중에 한계가 있었죠. 반면 카라의 언니인 알렉스는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성 지향성을 깨달은 백인 동성애자로 드라마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슈퍼걸의 친언니이기도 하지만 존 존스가 물러난 DEO에서 국장으로 활약하는 능력자이기도 하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알렉스의 연애사는 단순히 로맨틱한 관계를 넘어서서 여성으로서 고민하는 지점들에 대한 현실 반영이기도 합니다. 여자친구와 아이를 모두 원했던 알렉스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만다와 결국 헤어지죠. 그리고 양육과 현장업무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기도 합니다. <애로우>를 지나 <슈퍼걸>과 <DC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에서 성 소수자를 거리낌없이 묘사하고 받아들였기에 동성애자 슈퍼히어로인 배트우먼이 데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DC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의 레전드들은 설정상 한량(?)에 가까워 현실성은 떨어졌는데 <슈퍼걸> 속 인물들은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인물들이기에 소수자로서 겪어야 하는 고민의 무게가 더 가깝게 다가왔죠. 어찌 보면 가장 비현실적인 배경을 지닌 <슈퍼걸>이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슈퍼맨의 조력자이자 한때 카라와 레나의 연인이기도 했던 제임스 올슨은 자신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히어로로서의 정체를 드러내길 꺼려하죠. 화성인인 존 존스가 흑인의 외양을 굳이 유지하는 이유도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애로우버스를 넘어서서 DC 실사판의 전반에서 인기를 잃어가던 크립톤인의 서사는 <슈퍼걸>의 인공호흡으로 기사회생했고 이제 <슈퍼맨과 로이스 레인>이 대기줄을 타고 있습니다. DCEU에서 퇴출 위기였던 헨리 카빌의 슈퍼맨도 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다고 하고요. 다음 시즌에서 슈퍼걸이 어떤 식으로 퇴장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만 그간의 공로를 생각하면 좀더 긴 시즌으로 예우해줬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번 시즌 이전에만 해도 슈퍼걸 혼자 다른 히어로들과는 다른 평행지구에 살고 있어 크로스오버도 쉽지 않았었죠. 슈퍼걸이 쉽게 사망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최소한 슈퍼걸이 자신의 물리적인 힘을 포기하고 평범한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결말만은 아니길 바랍니다. 카라 댄버스에게 슈퍼걸은 그만큼 중요한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카라 댄버스뿐 아니라 여러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슈퍼걸이 갖는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겠죠.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직업적 소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아, 그리고 주변 여성들과의 남부럽지 않은 우정도 포함되겠네요. 슈퍼걸을 생각하면 애로우버스의 다음 시즌이 기대가 되면서도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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