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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an 11. 2021

착한 이야기의 함정

고지식한 캐릭터가 갖는 한계

MCU의 시발점이 된 <아이언맨>이 개봉한 시점부터 내리막길을 걷던 DCEU(DC Extended Universe)의 구원투수가 되어주었던 건 배트맨도 슈퍼맨도 아닌 원더우먼이었다. MCU의 팬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블랙 위도우의 솔로 무비보다도, 그리고 캡틴 마블의 솔로 무비보다도 먼저 나온 <원더 우먼>은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넘기며 DCEU의 부활을 알렸다. <원더 우먼> 이전에 솔로 여성 히어로 무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예를 들어 망작 <일렉트라>) DCEU의 구원투수가 여성 히어로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크게 한건 터트릴거라 생각했던 <배트맨 대 슈퍼맨>은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서 처참한 실패를 기록하고 그 해 골든라즈베리 어워드를 휩쓰는 진기록을 남겼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패인은 여러가지로 꼽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배트맨과 슈퍼맨이 아이언맨에 익숙해진 현대 관객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지나치게 진중한 히어로들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성별과 인종, 계급, 나잇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히어로가 공존하며 이들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철학적인 논쟁과 유머를 선사하는 마블과는 달리 DCEU의 히어로들은 인종이나 성별 등 보이는 부분을 제외하고라도 성격적으로 지나치게 유사하다. 따라서 솔로 무비에서는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사가처럼 빌런과 서사를 그럭저럭 잘 잡아주면 꽤 괜찮은 결과물을 뽑아내기도 하지만 팀업하는 순간 캐릭터들의 매력을 잃는다. 솔로 무비로서 원더우먼의 탄생기를 그렸던 <원더 우먼>은 원더우먼의 순수한 모습과 적당한 플롯, 여기에 잘 양념된 로맨스가 적절히 녹아들어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원더 우먼 1984>는 전작의 매력에 지나치게 기댄 모습을 보인다.


배트맨, 슈퍼맨과 마찬가지로 원더 우먼 또한 대단히 FM적인 캐릭터다. DC의 캐릭터들은 신기할 만큼 절대적인 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강한데 MCU에서 이런 특징을 보이는 캐릭터는 은퇴한 캡틴 아메리카 하나뿐이다. 캡틴 아메리카 또한 이런 무매력적인 특징 때문에 첫 솔로 무비였던 <퍼스트 어벤져>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이후에 이어진 시리즈에서는 MCU에 포진해 있는 타 캐릭터들을 대량 투입해 서사를 보강함으로써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원더 우먼의 경우 모두가 알다시피 <저스티스 리그>는 망했고 심지어 <원더 우먼 1984>는 제목에서 보듯 1984년을 배경으로 하기에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을 기용할 여지가 없다. 원더 우먼의 솔로 서사를 이어가기에 나쁜 배경은 아니지만 현대 관객에게 소구하기 힘든 고지식한 캐릭터를 가지고 두 번째 서사를 이어가기엔 불리한 환경인 것은 사실이다(스티브 로저스는 그래서 버키 반즈를 깨웠지..). 거기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들 사이에서 반인반신으로 장수하다 보니 전작에서 데려올 수 있는 캐릭터도 거의 없다. 아마도 <원더 우먼 1984> 초반의 데미스키라 신은 이런 연유로 등장했을 것이다. 전작과의 연관성을 어떻게든 보여주는 동시에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서사 전반에 흐르는 주제의식을 암시하려는 의도. 어린 다이애나의 액션도 그렇지만 오로지 여성으로만 구성된 데미스키라의 올림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서사 상에서 사실 그다지 필요한 부분은 아니다. 거기다 이 장면에서 암시된 주제의식은 미안할 만큼 고루해서("Nothing good is born from lies, and greatness is not what you think.") 이걸 설명하겠다고 굳이 그 긴 올림픽이 필요했을 것 같지는 않다.



원더 우먼이 고지식한 캐릭터라는 점이 반드시 단점으로만 기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편 <원더 우먼>이 좋은 작품이었던 이유는 그런 다이애나(갤 가돗 분)가 이렇게 타락한 인간 세상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를 상당히 탁월하게 묘사했다. 저스티스 리그의 다른 멤버들과 부딪힐 때 성격들이 비슷해서 다같이 무매력이 된다는 단점을 솔로 무비에서는 상쇄할 수 있기 때문에 서사만 그럴듯하게 짜 준다면 오히려 FM적인 캐릭터는 활용할 여지가 더 많다. 다만 메인 프로타고니스트가 뻣뻣할 경우 안타고니스트나 배경이 역동적이어야 한다. 전편 <원더 우먼>에서는 다이애나가 인간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 자체가 신선했고 안타고니스트였던 아레스가 서사 상에서 상당히 기능적으로 그려졌다. 다이애나를 답답해 하면서도 그 능력에 감탄하는 동시에 적당한 시점에서 조력자 역할을 해주는 동시에 로맨스 서사까지 담당했던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 분) 또한 여러가지 면에서 진보적인 캐릭터였다. 헌데 80년의 세월이 흐르고 원더 우먼의 빌런들은 더 단순해졌다. 원더 우먼의 주요 숙적인 치타/바바라 미네르바(크리스틴 위그 분)는 다채롭게 그려질 여지가 많은 빌런인데 흑화 과정이 지나치게 단순하다. 맥스 로드(페드로 파스칼 분)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렉스 루터 2탄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거기다 후반부 로드의 참회는 1984년에 제작된 영화들도 이렇게는 안했을 것 같을 정도로 상투적이다. 맥스 로드보다는 치타 쪽이 매력도 있고 활용 여지도 많아 치타가 메인 빌런이었다면 보다 복잡한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맥스 로드를 최종보스로 지정하면서 서사가 같이 단순해졌다.


뻣뻣한 캐릭터들의 비극적인 특징 중 하나는 해피엔딩을 도통 맞이하질 못한다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 사가에서 브루스는 조실부모로도 모자라 연인인 레이첼마저 잃는다. 이는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 캐릭터의 성장 서사로 희생된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헐리우드 영화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MCU는 캡틴 아메리카를 은퇴시키며 나름의 해피 엔딩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동시에 아이언맨을 희생시켰다는 팬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혼자서 무한에 가까운 생명을 이어가는 원더 우먼에게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비극은 필연적이지만 전편에서 스티브는 다이애나와 안타까울 만큼 짧은 인연밖에 이어가지 못했다. 여성 캐릭터의 성장에 희생된 남성 캐릭터라는 점에서 기존의 서사를 뒤집은 신선한 시도로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 히어로는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실 배트맨을 제외한 남성 히어로 대부분은 연인에 이어 가족을 만들 기회를 갖는 경우가 많다(심지어 브루스도 레이첼 이후에 다른 여자 만난다..). 토니 스타크는 페퍼와 결혼해 딸 모건을 두었고 호크아이도 자녀가 셋이나 된다. 슈퍼맨도 결국 로이스 레인과 결혼하고 드라마 애로우버스에서는 아이도 낳은 것으로 묘사된다. 다이애나가 원더 우먼이 아니라 원더 맨이었다면 스티브는 금방 돌아가셨다가 다이애나에게 새 연인을 안겨주거나 다이애나의 영생을 어떻게든 나눠 가졌을 것이다. <원더 우먼 1984> 속 스티브는 부활하지만 재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다이애나가 행복하길 바랐기 때문인지 스티브를 되찾기 위해서는 다이애나가 자신의 능력을 희생해야 하는 서사가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이애나는 결국 자신의 행복을 희생해 인류를 구원하는데 결국 여성에게만 만인을 위한 희생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걸 갖지 못하는 여성은 다이애나뿐이 아니다. 소원의 돌을 이용해 천하무적이 된 바바라 또한 평생 갖지 못했던 것을 얻기 위해 인간성을 희생한다. 다이애나는 바바라에게 너를 인간적으로 만들어 주었던 모든 걸 잃었다고 하며 바바라를 설득하려 들지만 설득력이 참 떨어지게도 바바라의 매력을 알아줬던 건 다이애나 뿐이다. 빌런으로 흑화해서 그렇지 악인으로 변하지만 않는다면 바바라 입장에서 인간성 정도는 희생시킬 만할지도 모른다(소위 말하는 친사회적 소시오패스란 이런 게 아닐까). 남들은 알아주지도 않고 나도 잘 모르는 인간성만 희생하면 인기도 많아지고 직장에서도 잘 나가고 따라서 돈도 쌓이는데 누구라도 이 정도 희생은 감내하지 않을까. 원더 우먼의 고지식함은 여기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다이애나가 어떤 논리로 바바라를 설득하려 들어도 바바라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은 다이애나의 설득은 가진 자의 하소연일 뿐이다. 이는 반인반신으로 태어난 다이애나의 히어로로서의 한계이기도 하다. 토니 스타크는 부자였기에 함부로 자신보다 적은 재력을 지닌 이들에게 너의 삶에 만족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토니 스타크는 스타크 재단을 세우고 스파이더맨의 멘토로 활동하며 선순환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다이애나는 토니 스타크보다도 오래 인간계에 머물고도 아직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원더 우먼 1984>가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좋지 않은 영화로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원더 우먼의 시원시원한 액션신은 여전히 볼거리를 안겨주고 고지식한 와중에도 다이애나의 순수한 마음은 다른 어떤 히어로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귀한 장점이다. 배트맨은 고지식하지만 조커 이후로 인류애를 상실한 것처럼 보여 폭력 사용을 서슴지 않는다. 다이애나는 그렇게 당하고도(..) 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데 이는 MCU의 어떤 히어로도 갖지 못한 특징이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 불멸에 가까운 삶을 사는 데다 지력에 재력까지 갖췄으니 인류의 망신살 정도는 애교로 봐주는 건지 몰라도 쇼핑몰의 좀도둑 정도는 안 다치게 포장까지 해서 경찰에게 선사한다(배트맨이었으면 타박상이 기본일듯). 빌런으로서의 활용이 아쉽기는 하지만 치타 또한 철학적 논쟁거리를 안겨줄 만한 캐릭터다(맥스 로드는 아니다). 정당방위를 위한 폭력은 어디까지인가에서 시작해서 결국 치타를 만든 건 소원의 돌이 아닌 고고학 박사를 개무시한 사회가 아닐까 하는 논쟁까지. 타인을 해치지만 않았다면 바바라의 선택이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하는 논란도 있을 수 있다. 인간들이 소원의 돌을 악용해서 그렇지 본래 소원의 돌은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인 물건이었는지 모른다. 다이애나가 정녕 원한다면 치유력과 힘을 포기하고 스티브와 오손도손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스티브는 아직 이 세상에 원더 우먼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이애나에게 희생을 설득하지만 그건 연인을 잃는 게 니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개봉해 전편보다는 못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기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원더 우먼> 3편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배경도 현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들을 (잘) 활용할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원더 우먼을 탄생시킨 윌리엄 몰튼 마스턴은 무려 세계 2차대전 시기에 시대를 앞서갔다. 시대를 넘나들며 세상을 구원하고 여성을 해방시킨 다이애나가 다음 편에서는 보다 세련된 서사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솔로 캐릭터의 매력이 좀 덜하더라도 기존 히어로들에 기대어 갈 여지가 많은 MCU와는 달리 솔로무비 대부분이 망작의 길을 걷고 있는 DCEU이기에 원더 우먼이 홀로 하드캐리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어쩌면 원더 우먼은 혼자 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이 탄탄했더라면 원더 우먼의 서사가 좀 더 복잡해지고 폭넓어질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았을지 모르지만, 이런 불모지에서 여성 히어로가 이만큼의 성적을 낸 것만도 굉장한 게 아닐까. <원더 우먼> 3편에 유일하게 바라는 게 있다면 다이애나의 해피엔딩이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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