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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an 25. 2021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요?

삶의 의지를 주는 것들에 관하여

픽사의 작품에는 언제나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실제로 픽사의 신작이 발표되어 영화관에서 자막판을 예매해 극장에 가보면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성인 관객을 목격할 수 있다(자막판이어야 한다). 한국이 연간 인당 영화관람 횟수가 유독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통상 연 1회, 한국은 연평균 4회) <겨울왕국> 이후 애니메이션이 아동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깨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픽사의 작품들이 성인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작품이 가진 깊이에 있다. 전작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사춘기가 되어가는 소녀의 감정들이 주인공이었다면 <소울>에서는 대놓고 꿈을 찾아가는 성인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분)를 주연으로 내세워 성인관객을 공략했다. 물론 저연령층이 보기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영화이지만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조의 모습이나 삶의 의미를 놓고 고민하는 22(티나 페이 분)의 모습은 다분히 철학적인 논쟁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며 이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같은 고민을 해본 성인이어야 할 것이다. <소울>이 <인사이드 아웃>보다도 발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건 단순히 주인공의 나잇대가 상승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듯 깊이있는 철학적인 고민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소울>은 삶의 목표에 관한 고민을 넘어 목표를 이룬 후 삶의 의미를 주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김연아 선수가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무리한 후 선수 은퇴 선언을 했을 때 김연아 선수의 이후 행보가 궁금했던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역사상 최고의 여성 피겨 스케이터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고 화려하게 은퇴한 김연아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본인이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뭘까. 어떤 삶을 살건 어떤 선택을 하건 대중이 평가를 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문득 궁금해졌다. 목표를 이룬 후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야 차기작이라는 다음 목표가 있을 테지만 수명이 정해진 운동선수들은 그 수명이 끝나면 다음 목표라는 게 있기는 할까? 실제로 성공 후 허망감에 시달리는 인물들도 수두룩하며 이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의외로 꽤 된다. 영화매체를 포함한 미디어에서는 성공한 인물들의 성공 스토리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만 이후의 삶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다큐멘터리에서나 조용히 조명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성공을 이룩해내지 못한 평범한 인물들이 크게 주목받는 경우는 별로 없다. <소울>의 서사가 놀랍고도 신선했던 건 꿈을 이룬 후의 삶과, 소위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한 인물들에게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조명했기 때문이다.



픽사의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픽사는 언제나 인간의 내면에 주목하고 소소한 삶의 기쁨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들을 해왔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장난감들의 목표는 앤디를 구해내는 것이 아니라 앤디의 곁을 지키는 것이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와 마이크의 최종 목적은 어린이들의 수면시간을 보다 즐겁게 보내도록 해주는 것이다. <니모를 찾아서>, <도리를 찾아서> 모두 니모와 도리의 험난한 여정을 그리지만 결국 가족과의 단란한 일상으로의 귀환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인크레더블> 같은 예외작들이 있기는 하지만 픽사의 작품들이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일종의 안정감을 제공하는 데는 이렇듯 일상의 소중함을 조명하는 솜씨에 있다. <소울>에 이르러 픽사는 꿈과 현실이라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가치에 집중하며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위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 있다고 말한다. 유명 재즈 연주자가 되면 인생이 행복할 것만 같았던 조는 정작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도로테아 윌리엄스(안젤라 바셋 분)와의 공연을 따낸 데 흥분한 나머지 이를 자랑하는 전화통화를 하며 위험천만하게 뉴욕의 거리를 지나다니는 장면이다. 성공에 심취한 조는 행인, 공사장, 차에 전혀 신경쓰지 못하고 지나다니다가 결국 맨홀로 떨어지고 만다. 행인과 공사장, 거리의 차들은 조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삶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무시하는 순간 삶을 위협하는 것들이다.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영혼 22는 얼핏 조와 정반대의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조와 22는 본질적으로 일상에 대한 무심함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모든 것의 전당에 존재하는 것들은 대부분 무채색으로 표현되며 신체로 느낄 수 있는 자극들이 배제된 것들이다. 태어나기 위해 마지막으로 갖추어야 할 불꽃은 마치 모든 것의 전당에 있는 무언가에서 영감을 받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의 전당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피자의 맛, 피아노의 소리, 손 끝에 스며드는 감각은 태어나 신체를 보유해야만 느낄 수 있다. 태어나기 위해 영혼들은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찾았을 때가 아닌 영혼 상태에서 부족한 것을 찾아야 한다. 이 부족한 것을 채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에야 영혼은 탄생할 준비가 되며 불꽃이 나타나 지구로의 통행권이 발급된다. 22는 오랜 시간 태어나기 전 세상에 머물렀지만 자신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기에 탄생을 거부한다. 22의 멘토였던 수많은 위인들은 22에게 결여된 것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22를 구원하려고만 했기에 역효과를 냈다. 반면 조는 의도치 않게 22에게 신체를 빌려줌으로써 부족했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결여되었던 것을 느끼는 22를 통해 조 또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특히 밝은 뉴욕의 거리와 대비되는 어둡고 지저분한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22의 모험을 통해 다채로운 감각의 향연으로 되살아난다. 22는 지하철 역사 음악가의 소리에 감탄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는 감각을 그리워하며 의자 밑의 (아마도 누군가가 놓고 간) 음료를 들이키며 반이나 남았다고 좋아한다.



22를 일깨운 것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무의 씨앗이었지만 조에게 영감을 준 것은 22를 통해 다시 보게 된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에 취해 주변인을 보지 못하고 맨홀로 떨어진 조는 자신의 신체를 차지한 22를 통해 코니, 데즈, 엄마를 다시 만난다. 재즈 연주만이 삶의 목표라고 믿어왔던 조는 사실 음악을 통해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 얼마나 보람찼는지를 음악을 그만두겠다며 찾아온 코니를 통해 깨닫는다. 매주 찾아오는 코니는 일상의 일부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조의 삶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머리를 다듬어 주던 데즈는 사실 조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던 좋은 친구였으며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누구보다도 아들을 사랑한 부모였다. 꿈에도 그리던 도로테아 윌리엄스와의 연주를 마치고 혼자가 된 조는 자신의 삶을 유지시켜준 것은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자신을 응원해 준 주변인이었음을 깨닫는다. 조는 도로테아 윌리엄스라는 위대한 음악가에게만 집착했지만 그와 자신을 연결해준 것은 자신의 한때 자신이 삶을 공유해 주었던 제자 컬리였다. 알고 지내던 인물 뿐만 아니라 조는 이제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주기 시작한다. 지하철 역사의 음악가, 거리 광고판을 돌리는 광고맨 등으로 조의 삶은 조금씩 옮겨가기 시작한다. 변화한 조의 모습은 무심한 뉴요커들과 대비되는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픽사의 의지가 반영된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주 만물의 질서를 상징하는 제리가 조에게 기회를 준 이유는 무엇일까. 조가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최초의 이유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2를 만나 변화한 조는 자신의 삶에 꿈보다 큰 것들이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영혼이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불꽃은 삶에 대한 호기심일지도 모른다. 지구를 구경하며 모든 것의 전당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성격이 만들어지면 태어나는 영혼들은 거리낌없이 지구로 점프한다. 아마도 간접적으로만 해볼 수 있었던 것들을 지구에 가면 실제로 해볼 수 있으리라고 믿어서가 아닐까. 조는 꿈을 이루고서 공허감을 맛보지만 동시에 22를 통해 여전히 삶이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호기심을 알아본 제리는 조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고자 한다. 파울로 코엘료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가 그것을 도와주고자 한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우주는 인간이 스스로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제리는 조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 이상을 보았고 이것이 태어날 준비가 된 영혼들이 가진 불꽃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조와 탄생을 두려워하던 22는 각자의 세계에서 교차선을 그으며 각자의 두려움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깨달았기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우주의 계시(?)를 받은 것이다.



몽글몽글하고 아름다운 비주얼을 배경으로 두 성인 연기자의 목소리는 픽사가 <소울>을 통해 성장했음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어린아이나 인형과도 같은 비주얼을 지닌 22와 조 가드너의 영혼은 성인의 목소리로 대변된다. 이는 마치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처럼 포장하지만 사실은 성인들을 위한 동화를 언제까지고 픽사가 만들 것임을 천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가끔은 테리처럼 따끔하게 교훈을 주기도 하겠지만 언제나 제리처럼 따스하게 관객을 안아줄 것을 보여준다. 이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과연 픽사가 만들 수 있을까 의심이 될 만큼 <소울>은 아름답고 따듯한 작품이지만, <인사이드 아웃> 또한 같은 의심을 품게 한 작품이었다. 코로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한자리 건너 가득 찬 극장에서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며 감상한 <소울>은 픽사가 영화의 세계에 담아내는 저력이 결코 녹슬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었다.


*모든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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