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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r 01. 2021

촌스럽더라도 강력하게

여전히 의문은 남지만

몇 번이고 돌려봤던 영화 <미스 슬로운>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이 에스메이와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서 의견을 나누는 장면이다. 엘리자베스는 총기 규제 완화 법안 로비를 반대하며 회사까지 이직해서는 에스메이에게 고백하듯이 말한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이 일을 하려는 데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영화에서는 끝내 엘리자베스의 동기에 관해 그저 없음으로만 일관하고 엘리자베스의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별에 관계없이 등장인물의 어떤 행동에 이유를 부여하기 위해 가끔은 어거지로 사연을 부여하곤 하는데 <미스 슬로운>은 경탄스럽게도 그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엘리자베스 슬로운의 캐릭터를 깊이 파고들어가 이런 인물이라면 얼마든지 신념만으로도 무시무시한 로비가 가능할 것을 납득시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세련됐다고 생각한 건 제시카 차스테인이 입고 나왔던 수많은 명품 정장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냉정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진심을 다하는 엘리자베스는 희대의 여성 캐릭터였고 대사 하나하나마저 세련의 극치였다. <미스 슬로운>을 보며 인물에게 촌스럽게 기구한 사연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강력한 서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프라미싱 영 우먼>의 포스터를 대문짝만하게 걸어 놓고 한 문단을 <미스 슬로운>으로 낭비했는데 <프라미싱 영 우먼>의 캐시(캐리 멀리건 분)는 오로지 동기만으로 움직이는 인물이기에 문단 낭비가 좀 필요했다. 가끔은 빠질 수는 없는 걸까 의문이 들 정도로 여성 복수극에서 강간 모티프는 높은 확률로 등장한다. 강간이라는 범죄에 사회가 부여한 시선도 한몫하겠지만 때로는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주로 여성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강간은 서사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양념처럼 보인다. 그리고 불행 포르노라 지적받는 몇몇 영화들은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강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관객에게 불쾌감마저 안기곤 한다. <프라미싱 영 우먼>이 사실 흔한 여성 복수극의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름 세련되어 보이는 건 강렬한 영화미술과 캐리 멀리건의 연기 덕분도 있지만 불필요한 장면을 꽤 덜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캐시의 복수극에 대한 동기가 된 친구 니나의 강간장면은 대사로만 묘사될 뿐 시각적으로는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극 중간 등장하는 비디오도 목소리만 들려줄 뿐이고 그마저도 피해자의 겁에 질린 목소리 대신 강간범들의 목소리만 녹음되어 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남성의 시각에서 제작되던 여성 복수극을 여성의 시각으로 돌려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은 전부 삭제하고 빈 자리를 강렬한 영화미술로 채워 독특한 위치에 올라섰다.


확실히 피해자인 니나와 캐시의 관계 설정은 심하다 싶을 만큼 촌스럽다. 둘도 없는 친구였고 대학마저 같이 진학했지만 유수의 인재였던 니나를 우러러보던 캐시는 니나가 죽고 의대를 자퇴한 후 남성 전체에 대한 복수를 기획한다. 그 복수라는 것이 조금 맥빠져 보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성범죄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남성들에게 조금이나마 그 기분을 느껴보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정곡을 찌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매주 클럽을 돌며 캐시는 취한 척을 하고, 집에 데려가 어떻게 한번 해보려는 남자들에게 범죄 직전 매섭게 경고하고 집을 나선다. 저러다가 정말 강간당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저렇게 한다고 해서 남성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줄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클럽에서 만난 남성에게 나같은 여성들이 더 있고, 개중엔 가위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경고하는 장면은 꽤 통쾌하다(하지만 따라하지는 마세요..). 다만 그 방식이 굳이 짙은 화장에 때로는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남성을 꾀어내는 것이어야 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2012년에 제작됐던 <셜록> 시즌 2에서 아이린 아들러가 셜록을 상대하겠다며 나체로 나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을 만큼 사회적인 여성성을 강조한 복수 서사는 2021년에는 촌스럽게 느껴진다. 어차피 겁줄 거 정말 그냥 가위를 들고 다니는 게 낫지 않았나 싶을 만큼.



촌스러운 서사를 대신하는 건 붉은 색을 강조한 압도적인 미술이다. 종종 등장하는 클럽 신의 눈부신 조명, 캐시가 종종 바르는 립스틱, 그리고 마지막 남은 캐시의 한 조각인 알록달록한 손톱. 캐시와 니나가 반씩 나눠가진 하트 반쪽 목걸이조차 구시대의 우정 목걸이로 보이지만 레트로를 기반으로 한 캐시의 주된 복수극 무대는 적당히 조절되어 현대적으로 변신한다. 반면 캐시가 복수를 벗어나 일상의 업무를 하는 공간인 카페는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가득하다. 민트색, 분홍색을 기반으로 한 이 곳에서 캐시의 의상은 강렬한 원색 대신 파스텔톤의 가벼운 옷들로 자리잡는다. 캐시를 찾아온 동창 라이언(보 번햄 분)과 데이트를 하러 가거나 장을 봐올 때도 캐시는 파스텔 톤의 원피스를 주로 입는다. 복수를 하러 돌아다니던 캐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서를 하게 된 순간에도 캐시는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푸른색 머리끈으로 반묶음을 하고 있다. 이렇게 부드러운 색상에 익숙해져 갈 때쯤 캐시의 복수심도 흐릿해지지만 마지막으로 불타오른, 복수의 증거를 마주한 직후 캐시는 다시 강렬한 컬러의 세계로 돌아간다. 마지막 복수극을 실행하기 직전 캐시는 네일 색과 마찬가지로 알록달록한 단발의 가발을 뒤집어쓴다. 캐시가 입은 간호사 복장은 흰색이지만 총각파티 현장의 요란한 배경과 어우러져 강렬한 효과를 낸다.


선인을 자처하던 라이언의 복장도 흥미롭다. 영화 전반적으로는 의사 가운이나 수술복, 혹은 무채색의 평상복을 즐겨입던 라이언은 알의 결혼식에서 혼자만 신랑 들러리들과 다른 옷을 입고 있다. 신랑과 신랑 들러리들은 베이지색의 정장을 맞춰 입었지만 라이언은 회색의 정장을 입고 어색하게 그들과 어울린다. 라이언은 처음 캐시를 만날 때도 아직까지 의대 동기 무리들과 종종 만난다고 이야기하고, 알에 대해서도 친하지는 않지만 무리 중 하나라고 얼버무린다. 라이언은 알을 위시한 범죄자 패거리와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캐시의 시야를 가리지만 캐시가 마지막으로 입수한 비디오에서 라이언이 강간 현장을 즐겼던 방관자였음이 드러나자 캐시에게 너는 뭐 깨끗하냐며 화를 낸다(저기요?). 결혼식장에서도 라이언은 혼자만 그들과 다른 척 하고 있지만 여전히 결혼식용 정장을 차려입고 결혼식에 참석한 그들의 동료다. 이들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에서 면죄부를 받았고 겉으로는 깔끔한 옷을 차려입고 정상인인 척 살아가지만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직장을 잃거나 철창에 갇힐 신세다. 참고로, 이런 인간들이 주변에 있으면 손절을 해야 정상인이지 동기라고 어울리는 건 정상인의 사고가 아닙니다.


결말까지도 어쩌면 통쾌하지만 어쩌면 진부하고 또 잔혹하기까지 한 캐시의 운명은 여전히 촌스럽다. 니나의 어머니 말대로 캐시는 그냥 자신의 인생을 살 수는 없었던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캐시는 니나가 강간당해 죽지 않았더라도 니나에게 감정적으로 매달린 인생을 살았을 것 같다. 니나와 캐시 사이의 특별한 관계는 아마 복수극 서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지름길이었겠지만 그 설정으로 인해 결말까지 세트로 진부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미싱 영 우먼>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흡입력을 자랑한다. <드라이브>에서 라이언 고슬링의 비호를 받았던 젊은 부인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상반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캐리 멀리건의 연기와 챕터가 넘어가며 씁쓸함도 좀 남기지만 통쾌하기는 한 복수 이야기, 그리고 눈을 사로잡는 영화미술. <프라미싱 영 우먼>은 아쉽기는 하지만 아쉬운 만큼 장점도 많은 영화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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