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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r 08. 2021

가져온 것, 놓고 왔어야 할 것

미국 이민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

기대 속에 개봉한 <미나리>에 대한 외신의 평가 중 흥미로웠던 것은 대단히 미국적인 영화라는 평가였다. 대사의 대부분이 한국어로 채워져 있고 한국인이라면 기억할 만한 과거의 한국적인 소품들이 한국인 관객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만큼 이 영화가 미국적이라는 감상은 한국인에게는 새롭다. 특히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의 연기는 그간 독특한 역할을 맡아온 그라고는 밑기지 않을 만큼 모두의 추억 속 할머니를 소환한다(미국인들은 이걸 모를텐데 명연기라고 받아들이는 게 신기하다). 한국 관객에게는 대단히 한국적인 이 영화가 왜 미국인 관객에게는 대단히 미국적인 영화로 받아들여졌으며, 제작사가 미국 회사라는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논란이 일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클로이 자오 감독은 <미나리>에 대해 "올해 노미네이트된 모든 영화 가운데 가장 미국적인 영화"였다고 평하기도 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은 <미나리>에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미나리>는 <기생충>과는 달리 국제적 보편성이 아닌 미국이라는 공간의 국지적인 정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외려 정이삭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정서가 이민자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자아냈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미국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미국인의 절대 다수는 이민자 조상을 두고 있기에 이민이라는 정서는 그들의 정체성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이민자들은 모국에서 많은 것을 가져오지만 어떤 것들은 폐기하고, 어떤 것들은 현지화하며, 어떤 것들은 보존한다. <미나리>는 어떤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연인 모니카(한예리 분)와 제이콥(스티븐 연 분)은 이민 1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한국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이름은 폐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녀의 이름은 아마도 한국식과 영어식을 모두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딸인 앤(노엘 조 분)은 지속적으로 앤으로 불리지만 부부가 서로를 부를 때의 호칭은 지영엄마, 지영아빠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앤은 한국식 이름을 부여받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는 아들 데이빗(앨런 김 분)은 한국식 이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 가족이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자, 한국에서 났지만 미국에서 자란 자,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자로 이루어진 이 이민자 가족은 때로 갈등하지만 결국 화합한다. 그리고 이 가족에게 한국에서 나고 자라 늙은 자가 합류했을 때 보존의 대상이 하나 늘어난다. 미나리다.



제이콥과 순자는 각자 농사를 짓지만 왜 제이콥의 작물은 잘 자라지도 못했으며 끝내는 소멸했는지와 순자의 미나리는 별 노력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잘 자랐는지는 꽤 의미심장하다. 한국 작물로 대표되는 제이콥과 모니카는 좋은 토양을 찾아 아칸소로 이사했고 한국식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폴(윌 패튼 분)의 도움을 탐탁지 않아하던 제이콥은 결국 일손을 받아들인다. 작물을 짓기 위해 물이 필요했던 제이콥은 "한국인은 머리를 쓴다"며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물을 찾아 땅을 판다. 공짜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인데 제이콥은 결국 이 일로 인해 농사에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 땅에서 한국식 농사 방법을 고집하던 제이콥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착을 위해 가져온 것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이콥은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이 낯선 땅에 정착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했지만 정착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한편 이런 제이콥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생존이 1차 목적인 모니카는 제이콥과 부딪힌다. 모니카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 나간 교회에서조차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하지만 미국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제이콥에게 캘리포니아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지만 제이콥은 무언가를 이루어 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니카의 제안을 거절한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정착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지만 현지화에 필요한 조건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반면 순자는 애초에 정착을 목적으로 미국에 온 것이 아니다. 손주들을 봐주기 위해 온 순자는 이들이 먹을 생존 식량으로 미나리 씨앗을 가져온다. 그리고 농사를 목적으로 땅을 살펴 이사온 제이콥과는 달리 순자는 이사온 땅에서 미나리가 뿌리내릴 만한 곳을 찾는다. 햇빛이 잘 드는 물가를 찾아낸 순자는 그 곳에 데이빗과 함께 미나리 씨앗을 심는다. 뱀의 출몰로 제이콥과 모니카는 근처에도 가지 않던 곳에서 순자는 아무렇지 않게 데이빗과 드나들며 정착의 기반을 마련한다. 그리고 뱀이 나타나자 순자는 돌을 던지는 데이빗을 만류하며 "보이는 것이 낫고,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해준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레슬링 경기를 하루종일 보며 즐거워하고, 손자를 위해서는 탕약을 가져오지만 정작 본인은 마운틴듀를 들이키는 순자는 의외로 가장 현지화에 성공한 한인처럼 보인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제이콥은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모니카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아칸소로 이주했지만 순자는 순전히 모니카가 있기에 아칸소로 온다. 그리고 자신들의 선택에 매사 갈등하며 부딪히는 부부와는 달리 순자는 현실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한다. 영화 후반부 창고에 불이 옮겨붙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한데 제이콥이 척박한 땅에서 생존했다는 증거인 농작물이 결국 순자에 의해 소멸되기 때문이다. 순자는 죄책감을 느끼고 떠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금 순자를 붙잡는 것은 미국인으로 자라고 있는 앤과 데이빗이다.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처럼 보이던 순자는 어느 날 뇌졸중을 겪는다. 노화인지 스트레스가 원인인지 영화에서 정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모니카는 자신이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자기 자신에게로 원인을 돌린다(모니카가 뇌졸중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던데..). 사실 이 장면은 아랫세대가 정착할 수 있도록 윗세대는 희생을 감내해야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앤과 데이빗이 미국의 토양을 기반으로 자랄 수 있도록 제이콥과 모니카도 고생해야 했지만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건 순자도 마찬가지다. 쿠키도 구울 줄 모르고 할머니 노릇을 하지 못하고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손자에게 무시당하면서도 순자는 끊임없이 사랑을 베푼다. 이 가족의 이민이 더욱 고달픈 건 한인이 많지도 않은 아칸소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인이 많았을 타 지역이었다면 이민의 과정이 덜 고달프거나 정착 자체의 어려움보다는 한인 사회에서 겪는 갈등이 중심 서사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에 배경이 아칸소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소규모의 한인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 이 곳은 초기 이민자들의 자화상이 된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미나리>는 감독조차 어리둥절하게도 가장 미국적인 영화로 평가받은 동시에 한국 관객에게는 대단히 한국적인 요소가 가득한 양면적인 영화로 탄생했을 것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트레일러 하우스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주거 형태지만 내부는 한국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헐리웃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트레일러 하우스는 통조림으로 가득 차 있고 신발을 신은 채 들어서지만 <미나리> 속 트레일러 하우스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한국 음식들로 가득하다. 거실을 제외하면 내부만 봐서는 할머니 집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장롱, 꽃무늬 이불, 아동용 플라스틱 컵 등이 하우스 내부를 장식한다. 이 트레일러 하우스는 결국 제이콥과 모니카의 의식구조다. 미국에 정착하여 살아가고자 외부는 미국을 흉내낸 트레일러 하우스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내면은 결국 한국인이다. 미국 애들은 할머니랑 자기 싫어한다던데 데이빗이 괜찮겠냐는 순자의 물음에 모니카는 저 애는 한국 애니까 괜찮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데이빗과 앤은 영화 내내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쓰고, 순자가 할머니같지 않다는 이유 1순위로 (옥수수가 아니라)쿠키를 구울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제이콥이 미국 땅에서 한국식으로 농사를 지어 키운 한국 작물은 결국 창고에서 장렬하게 사멸하는데 어쩌면 제이콥이 내면까지 바꾸지 않으면 생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경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제이콥이 가장 먼저 사기당하는 상대는 미국인이 아니라 대도시의 한국인이다.



심장병으로 달리기조차 하지 못하던 데이빗은 놀랍게도 순자가 도착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탕약을 마시고 미나리를 키우며 순자와 시간을 보낸 후 심장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다. 의사는 무엇을 하든 지금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모니카는 생각이 많다. 그리고 데이빗을 낫게 해준 순자가 떠나려 하자 데이빗은 처음으로 힘껏 달려 순자 앞을 가로막는다. 가장 한국에서 오래 살았던 순자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데이빗에 의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결국 가족은 순자가 키운 미나리를 캐러 간다. 이들에게 있어 한국은 적당히 현지화해야 할 정체성이지만 가족을 하나로 모아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씨 가족은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현지화할 것은 현지화하고, 어떤 것은 지키며 미국 땅에서 미나리처럼 뿌리내린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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