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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12. 2021

영화와 게임 사이

액션만이 답은 아니다

영화와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참여성이다. 넷플릭스에서 시청자의 선택으로 서사가 달라지는 드라마를 내놓은 적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사를 가진 영상 매체 대부분은 시청자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특히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 관객이 스스로 극장 문을 나서기 전까지 관객에게는 수면 이외의 선택권이 없다.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부딪히는 가장 큰 딜레마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결국 영화는 게임의 세계관만 차용하고 메인인 액션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개봉한 <몬스터 헌터>는 과감하게 서사를 제거하고 <레지던트 이블>로 게임원작 영화액션에 특화된 밀라 요보비치를 기용해 액션뿐인 영화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배틀쉽> 등 하스브로 사의 게임원작 영화들은 대부분 이 노선을 택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반대로 게임에 서사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된 <위쳐>는 아예 소설 > 게임 > 드라마 순으로 제작됐다. <모탈 컴뱃>은 이 사이 어딘가를 방황하다가 나름의 위치를 잡은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게임 원작 영화의 한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영화마다 평은 갈리지만 나름의 서사를 생각보다 잘 구축한 케이스였다.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앨리스(밀라 요보비치 분)는 기억도 없이 세상을 떠돌며 엄브렐러 사를 상대로 마지막까지 결전을 벌이고 최후에는 출생의 비밀마저 알아낸다. <레지던트 이블: 최후의 심판>은 밀라 요보비치의 화려한 액션과 앨리스의 과거 그리고 나름 감동적인 결말까지 꽤 괜찮은 서사를 구축했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범람하는 게임 원작 영화들 사이에서 영화의 장점인 서사와 액션 연출을 살려 영화로서 자리매김한 셈이다. 기존 게임 유저들에게는 큰 화면으로 액션을 즐길 수 있는 선물같은 기회일지 모르지만 영화팬들에게는 게임도 영화도 아닌 어정쩡한, 그러면서도 식상한 서사가 탑재된 끔찍한 혼종이 게임 원작 영화들이다. <모탈 컴뱃>의 경우 오리지널 캐릭터 콜 영(루이스 탄 분)을 내세워 세계관 설명에도 지분을 꽤 할애했고 주조연 캐릭터들에게 서사를 구축할 시간까지 내주었지만 식상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게임 모탈 컴뱃을 해본 적이 없기에 원작에서 차용한 세계관에 대해 논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전반에 구축된 세계가 동양의 무술 고수에서 시작한다는 점은 식상하기도 하지만 인종차별적으로도 느껴진다. 특히나 일본의 닌자는 선인으로, 중국계 파이터들은 악의 축으로 묘사되는 점은 너털웃음이 나온다(일본의 지대한 이미지메이킹 능력에는 감탄하는 바이지만 역사 속 실제 닌자는 이렇게 미화될 존재가 아니다). 어스렐름 편에 있는 몇몇 파이터들이 중국계로 추정되긴 하지만 영화 초반 명확하게 하사시 한조(사나다 히로유키 분)를 죽이러 오는 건 중국어를 사용하는 빌런 서브제로다. 동양에 일본 중국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동양계 캐릭터들이 죄다 무술고수로 그려지는 것도 코미디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대부분이 파이터이긴 하지만 막상 눈에 띄는 유일한 여성 파이터인 소냐 블레이드(제시카 맥나미 분)는 금발의 서양인이라는 점도 아쉽다. 원작 설정이 그래서라고 한다면 새로운 매체인 영화에서 차용하면서 수정할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것도 문제다. 원작 그대로 연출할 거라면 굳이 영화로 제작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캐릭터의 전형성에 대해 논하는 것이 이제는 지칠 정도로 근래의 영화들은 틀에 박힌 캐릭터를 소환하는 데 너무나 익숙하다. 평생 수련만 했나 싶을 정도로 유머감각이 없이 진지하기만 한 동양인 무술 고수 칸 리우나 악인 캐릭터를 이렇게도 연구를 안할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개차반으로 등장하는 케이노가 지겹다는 걸 또 써야 하는 걸까. 상대적으로 캐릭터의 전사나 특성을 구구절절 읊어줄 시간이 부족한 게임매체의 특성 때문이라고 하기엔 말했다시피 그럴거라면 영화 매체로 옮겨오는 의미가 없다. 게임이 출시되던 시기와 영화로 제작되는 시기가 다르다면 시대의 흐름에도 발맞춰야 한다. 주조연 캐릭터에게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하고 전형성을 탈피해야 영화 매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혹평을 받고 후속작 작업이 지지부진해진 선례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모탈 컴뱃>도 같은 신세가 이미 되었다될 것이다.



액션 위주로 영화를 구성해 게임팬들을 타겟으로 노렸다고 하기엔 근래 액션 위주의 영화는 게임 원작이 아니라도 많다. <모탈 컴뱃>에서만 볼 수 있는 화면이나 액션이 아니라면 굳이 관객이 보러 갈 이유가 없다. 특히 인간의 형상을 하지 않은 파이터가 등장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인 CG로 인해 캐릭터가 화면에서 튀어버린다. 팔 넷 달린 괴물과 콜 영이 대결하는 장면은 액션 자체로 크게 쾌감을 주지 못하고 기괴한 스플래터 장르로 변해버렸다. 거기다 어스렐름의 파이터로 선택되었다는 표식을 가진 자들에게 내재된 재능인 아르카나의 CG는 신선한 볼거리이기보다는 어울리지 않는 CG에 가깝다. 케이노의 아르카나는 터미네이터의 재현처럼 보이고 칸 리우의 아르카나는 엑스맨에서 카피해온 느낌이 든다. 콜 영이나 잭스의 아르카나는 기괴해 보이고 소냐의 아르카나는 급조한 느낌이 난다. 이는 아르카나라는 특이한 설정이 활용되지 못했기 때문인데, 무협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긴 시간을 들여 발견해야 하는 재능치고는 영화 안에서 끌어내야 하는 시간이 급박했던 탓이다.


게임에서 표현할 수 있는 잔혹한 수위를 영화 화면에서 보여주기 위해 과감하게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채택한 것치고는 잔혹성을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했다. 수익률 때문에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굳이 피해가려는 제작사가 많지만 슈퍼히어로물 중에서 정면 돌파해 성공했던 선례가 <데드풀>이다. <데드풀>의 잔혹성이 불필요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주인공 데드풀의 시니컬하면서도 코믹한 캐릭터와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냈다. <모탈 컴뱃>의 액션은 잔혹성을 담보하지만 액션에 추가 효과를 주거나 볼거지를 양산해내지는 못한다. 초반 하사시 한조의 액션 장면을 제외하면 굳이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감내해야 했을 만큼 멋드러지는 액션장면은 거의 없다. 할 거면 제대로, 안할 거라면 차라리 수위를 낮춰 15세 관람가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수익률 측면에서도 나았을 것이다. 애초에 동양의 무술 고수씩이나 데려오면서 굳이 무술에 CG효과를 곁들이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몇몇 장면들은 캐릭터들이 아르카나를 사용하는 걸 보고 있으면 저렇게 싸우지 말고 처음부터 아르카나를 사용했으면 됐을 일이 아닌가 싶을 만큼 액션이 불필요하다.



서사가 메인인 장르인 소설이나 웹툰, 코믹스 등을 영화로 옮기는 것보다 게임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편이 더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사와 캐릭터 생산에서 느껴지는 게으름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특히 흑인과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 이슈가 거세지고 여성 캐릭터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는 현재 철지난 게임 서사를 그대로 스크린에 갖다 붙이는 건 변명 서사로서도 빵점이다. 영화 매체의 주된 관객은 영화팬이지 게임팬이 아니며, 영화팬이든 게임팬이든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출처는 전부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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