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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17. 2021

현실에 발딛은 환상, 영화

그대의 삶은 영화보다 아름답다

팀 버튼의 작품 가운데 가장 따듯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빅 피쉬>는 그간 버튼 감독이 만들어온 영화와 비교해서 가장 튀는 작품처럼 보인다. 최근작인 <덤보>에서 비슷한 느낌이 나긴 하지만 <빅 피쉬>를 발표하던 당시 팀 버튼의 이미지는 우울하고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잔혹동화를 만들던 감독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당황하던 팬들 앞에 버튼 감독은 직후 <스위니 토드>를 내놓아 안심(?)시키긴 했지만 여전히 <빅 피쉬>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따듯하고 희한한 동화로 꼽히는 동시에 평론가들로부터는 팀 버튼의 최고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아이러니한 작품이기도 하다. <빅 피쉬>를 만들던 당시 팀 버튼은 부친을 잃는 동시에 아이를 얻어 가족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돌아보면 팀 버튼의 부모님은 버튼을 잘 이해해주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데 팀 버튼 감독전을 가본 나로서는 이런 기괴한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나 안 데려간 게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버튼의 우울하고 기괴하면서도 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미쟝센에 열광해왔기에 <빅 피쉬>는 어딘가 아쉬운 작품이기도 하지만 팀 버튼이라는 딱지를 떼고 본다면 가족의 화해에 관한 상당히 아름다운 동화인 것은 사실이다.


<빅 피쉬>를 이렇듯 가족에 관해 읽는 텍스트는 차고 넘치지만 어쨌거나 팀 버튼이 만든 영화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읽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버튼의 영화들은 언제나 비극적인 현실을 아름답고 독특한 미쟝센으로 포장해왔고 플롯이나 결말과는 별개의 감동을 선사해왔다. <빅 피쉬>에서 닥터 베넷(로버트 귈럼 분)은 윌(빌리 크루덥 분)에게 윌이 태어나던 당시의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시한 이야기와 환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고르겠다고 말한다. 언뜻 들어서는 <빅 피쉬>의 주제만을 관통하는 대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버튼의 영화 세계 전체를 꿰뚫는 대사이기도 하다. <가위손>의 킴(위노나 라이더 분)은 시간이 지나 마을이 에드워드(조니 뎁 분)를 잊을 때까지도 가위손의 성에 올라가지 않는다. 에드워드의 기억 속에 젊고 아름다웠던 자신의 모습만을 남겨 현실과 환상 중에 환상을 택한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예 앨리스(미아 바시코브스카 분)가 현실을 떠나 토끼굴로 점프해 이상한 나라로 떠나는 이야기다. <빅 피쉬> 자체도 어쩌면 끝내 화해하지 못했던 부친과의 아픈 기억 대신 환상을 택한 버튼의 개인사일지도 모른다.



에드워드가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영화는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정말 에드워드가 들려준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이야기 속 에드워드의 삶은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삶을 환상 속에 감추면서 자신의 결함도 같이 감춘 것처럼 보인다. 윌은 에드워드가 바람을 피웠을 거라 확신하지만 물증을 찾지 못하며, 아버지를 의심하는 윌에게 제니(헬레나 본햄 카터 분)는 에드워드의 거짓말에 동조하며 에드워드에게 여자는 어머니밖에 없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제니가 들려준 제니의 이야기가 결국 말도 안되는 마녀의 사이클을 타면서 결국 제니가 들려준 이야기도 신빙성을 잃는다. 유령 마을을 살려준 에드워드의 마음은 감동적이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는 부자도 아니었다던 에드워드가 일해서 번 돈을 가족들은 가본 적도 없는 마을에 쏟아부은 막장 드라마가 된다. 에드워드가 이야기를 포장해 자신의 단점을 감추려 했다는 것은 윌이 태어나던 당시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다. 에드워드는 윌이 태어나던 날 결혼 반지를 삼킨 큰 물고기를 잡았다고 떠벌리지만 실제로는 일하느라 아내의 출산에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베넷 의사는 아들을 위해 물고기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지어낸 에드워드의 마음씨에 감동하지만 윌에게는 가족보다 일이 우선이었던 아버지가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을 뿐이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에드워드는 이야기를 지어낼 기력을 잃고 아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지어낼 것을 부탁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거창한 화해로 보이는 이 장면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 대신 거짓을 요청하는 이기적인 아버지의 이야기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한다. 윌은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의 과거를 훑으며 황당무계했던 이야기가 온전히 거짓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평생 일하느라 집에는 잘 있지 않았던 아버지가 집에서 자신과 놀아주던 아버지가 되지는 못한다. 팀 버튼 감독은 이야기 속에서 에드워드와 윌 모두처럼 보이는데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 아버지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윌에게, 현실 대신 환상을 택했다는 점에서는 에드워드에게 투사되어 나타난다. <빅 피쉬>가 윌과 에드워드의 시점을 오가며 둘 모두의 입장이 설득력있게 그려진 이유는 버튼 감독이 둘 모두에게 동화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버튼 감독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끝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으며 자신을 이해해주려 하지 않았던 아버지마저 환상으로 그림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대체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환상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버튼 감독이 에드워드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부자는 현실이기에 윌에서도 버튼의 모습이 얼마간 비쳐보인다.



평생 현실을 환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온 팀 버튼 감독에게 <빅 피쉬>는 현실이 이렇게 환상으로 바뀐다고 말해주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 자체다. 최근에야 영화의 비하인드 신이나 작업 과정이 공개되는 일이 잦지만 과거에는 관객은 영화를 영화 자체로만 즐겨야 했다. 카메라 눈속임이나 CG 등을 통해 구현된 스크린의 세계는 관객에게 마법이었다. 에드워드가 자신의 삶을 포장해 한 마리 물고기로 돌아간 것처럼 팀 버튼 감독은 나는 이렇게 현실을 포장해서 관객에게 선보여왔고, 감독으로서의 삶을 마감할 때는 한 마리 물고기로 돌아가는 삶을 택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윌조차 에드워드의 최후에는 환상에 일조한 것처럼 팀 버튼 감독은 자신이 포장한 현실에 대해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다른 모든 감독과 마찬가지로 버튼 감독도 자신의 삶을 영화에 녹여냈을 테고, 그 삶이 영화처럼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았겠지만 관객이 스크린으로 지켜보는 두 시간의 이야기는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 <빅 피쉬>에 녹아 있는지도 모른다. 관객은 윌처럼 황당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서 스크린으로 가린 현실이 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에는 윌이 그랬듯 스크린의 마법에 동조한다.


하지만 <빅 피쉬>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 해서 영화만큼 삶이 아름답지 않다고 하지는 않는다. 에드워드는 아들이 만들어준 환상 속에 삶을 마무리하지만 그건 결국 아들이라는 현실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는 에드워드의 환상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대신 에드워드의 장례식 현장으로 간다. 여전히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윌은 그 곳에서 아버지가 만들어낸 환상의 기반을 목격한다. 사실 윌은 평생 아버지가 창조한 환상의 기초를 보고 있었지만 믿지 않았다. 바로 윌의 어머니이자 에드워드의 아내인 산드라다. 산드라의 말대로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윌이 목격하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그 어떤 환상 신보다도 감동적이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게 언제나 진실하게 대했으며, 그 마음을 알았던 이들은 모두 에드워드의 마지막을 함께 장식한다. 윌이 만들어낸 에드워드의 최후는 놀랄 만큼 현실과 닮아 있었고 바로 그 순간에야 윌은 에드워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버튼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낸 그 어떤 환상보다도 나의 삶은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른다.



한때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이동진 평론가가 진행했던 <영화는 수다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았는지 오래가지 못하고 폐지되었는데(새벽시간에 편성해놓고..) 그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가 바로 <빅 피쉬>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프로그램은 <빅 피쉬> 중에서도 에드워드를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가 다섯 개 주에서 공수했다는 황수선화가 잔뜩 깔린 대학 교정에 서 있는 장면으로 영화 소개를 마쳤다.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왜 하고 많은 영화 중에 <빅 피쉬>가 마지막 영화였을까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재개봉 후 극장에서 관람한 <빅 피쉬>는 그 답을 보여주었다. 비록 인생에 있는 수 많은 챕터 가운데 한 챕터가 지금 닫히지만 다른 챕터는 다시 열릴 것이며, 그 챕터는 산드라가 창문을 열었을 때 보았던 황수선화 밭처럼 아름답기를 바랐던 이동진 평론가의 바람이 담겼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토요일 새벽 영화라는 환상의 공간을 소개하는 시간은 마무리되지만 시청자들의 현실은 환상보다 아름답다고 이동진 평론가는 은연중에 말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빅 피쉬>는 관객 모두가 세상이라는 환상을 살다 가는 한 마리 물고기라고 말해주고 훌쩍 떠나는 것만 같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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