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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24. 2021

낚시질도 정도껏

역경도 좋지만 업적을 보여줘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의 기원이 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10대 시절을 추적하는 영화다. 제목에서 <비커밍 제인>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는데 영화의 구성도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한다.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의 삶을 다룬 영화지만 관객 대부분이 기억하는 건 앤 해서웨이와 제임스 맥어보이의 로맨스 뿐이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리즈시절을 담은 영화로도 유명할 만큼 영화를 보고 제인 오스틴이 어떤 계기로 고전이 된 소설들을 쓰게 됐는지 기억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기엔 영화에서 애초에 거의 다루질 않았다. 제인 오스틴과 톰 르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 분)의 연애가 제인 오스틴의 저작물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는 전무하며 실제로도 아주 짧은 기간 교제했을 뿐이다. 이후 톰 르프로이는 제인 오스틴과의 연애에 대해 젊은 시절 짧았던 사랑이라고 일축했을 뿐 영화에서 그려지듯 현실이 가로막은 세기의 사랑이라고 밝힌 적은 없다. 제작진은 제인 오스틴이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두고 소설이 집필되는 과정은 버리고 로맨스만 취해 뻔한 로맨스물로 완성시켰다. <비커밍 아스트리드>도 제작 국가가 다르고 감독이 여성임에도 비슷한 함정을 피해가지 못한다. 영화는 아이들로부터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읽는 노년의 아스트리드로부터 시작하지만 집필과정은 단 한차례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에 드러난 아스트리드(알바 아우구스트 분)의 삶은 시대적 배경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충격적이다. 10대의 나이에 이미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딸을 가진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한 아스트리드는 몰래 아이를 낳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향한다. 그리고 코펜하겐에서 비서 공부 후 취직해 일하는 와중에도 덴마크에 맡긴 아이를 보러 다닌다. 영화 초반 블롬버그(헨릭 라파엘센)와 아스트리드의 사랑은 영원할 것처럼 그려지지만 현실에 부딪힌 아스트리드는 블롬버그에게서 정을 떼기 시작한다. 블롬버그의 지난한 재판을 거치며 아스트리드는 아들 라세를 낳아 힘겹게 키워내지만 이 과정에서 무엇을 계기로 아스트리드가 작가가 되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아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아스트리드의 모습은 위대한 작가보다는 희생하는 모성상에 가깝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노년의 아스트리드가 받은 아이들로부터의 편지 나레이션을 제외한다면 아스트리드가 작가가 되었다는 증거를 영화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라세를 입양보내지 않고 스스로 키우며 끝내 블롬버그와의 결혼마저 거부하는 아스트리드는 놀라울 만큼 현대적인 여성상을 담보하지만 그 자체로 아스트리드가 가진 예술성을 입증해 주지는 못한다.



아스트리드가 블롬버그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나 블롬버그의 길어지는 이혼재판으로 고통받는 장면은 안타까울 만큼 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10대 소녀가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낳은 아이로 인해 삶을 박탈당하는 과정은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아스트리드가 글을 쓰는 장면은 블롬버그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드러나지 않으며 비서로 취업한 후에도 스투레 린드그렌의 일을 보조하는 정도에 그친다. 아스트리드가 타자기를 치는 장면은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인가 싶을 만큼 가슴뛰지만 신문의 부고나 기차역 개통식 등 마을의 소식을 전하는 소소한 기사들 정도가 타이핑될 뿐이다. 아스트리드가 신문사에서 일한 경험은 아동문학과는 하등 관련이 없어보이며, 이런 경험이 작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만 봐서는 아스트리드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작가가 되었는지, 혹은 본인이 겪은 역경이 작가가 되는 데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 영화 중간 한 아이는 아스트리드에게 편지로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느냐고 묻지만 영화는 대답해주지 못한다.


아스트리드는 엄마로서는 책임감이 강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지지만 신문사 인턴이나 비서로서는 그다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스트리드가 신문사에서 쓰는 기사들은 모두 블롬버그의 지시에 의한 것들이다. 비서라는 직종 자체가 상관을 서포트하는 업무이기에 업무에서의 주체성을 보장해주지 못하긴 하지만 위탁모에게서 데려온 라세가 아프자 아스트리드는 업무에서 바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스트리드는 회사에서 결국 스투레의 호의로서 살아남는다. 아스트리드와 스투레의 연애사는 거의 보여지지 않지만 스투레의 성이 린드그렌이기에 아스트리드의 남편이 될 것을 관객 모두가 알고 있다. 스투레가 아스트리드에게 호감이 없었고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면 아스트리드는 직장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아동문학상에 이름을 남긴 작가씩이나 되는 아스트리드의 젊은 시절을 이렇게나 남성 캐릭터에 의존해 그려야만 했는지 의문이다. 아스트리드의 결단력을 보여주는 부분조차 결국 모성애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여성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마저 보인다. 아스트리드가 어려서 임신하고 아이를 양육했기에 아동문학의 대가가 되었을까? 초산의 연령과 예술성의 관계에 대해 학계에 연구된 적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만일 그렇다면 남성들은 아동문학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야 하는데 우리에겐 로알드 달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이미 있지 않은가.



여성 작가들의 삶을 그린 영화 자체가 남성 작가들을 다룬 영화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삶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비커밍 제인>의 제인 오스틴은 연애소설을, 아스트리드는 아동문학을 집필했다는 사실에 삶의 궤적을 그리는 데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오스틴이 연애소설을 주로 썼다고 해서 그의 연애시절을 위주로 영화가 제작되는 변명이 될 수는 없듯이 아스트리드가 아동문학의 거장이었다고 해서 미혼모 시절만 극화되는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영화는 아스트리드가 라세와 교감하는 과정보다는 미혼모로서 고생하는 과정에 훨씬 초점을 두고 있다. 여성의 고난은 많은 경우 강간과 같은 성폭력, 출산과 양육 등으로 표현되며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나 개인의 다른 역경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여성의 삶은 남성의 삶과 마찬가지로 출산과 양육을 포함한 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성 예술가들 또한 가정 이외의 많은 곳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사실은 자주 간과된다.


스크린으로 지켜본 아스트리드의 삶은 생각보다 극적이고 흥미로웠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는 없었다. 나는 아스트리드를 포함한 여성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영감을 예술로 어떻게 승화했는지 보고 싶다. 그러니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도 아스트리드의 모습이 아들 라세와 숲에서 뛰노는 장면뿐이니 관객으로서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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