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Jun 21. 2021

구원의 주체에 대한 환상 혹은 망상

모든 세대를 구원하는 것은 다음 세대인가

금주 개봉한 작품 가운데에는 현재 10대에 해당하는 다음 세대를 주연으로 내세운 이야기가 많다. <그여름 가장 차가웠던>의 주인공들은 중학생이고 다큐멘터리 <그레타 툰베리>는 김나지움으로 진학하는 시기의 그레타 툰베리를 조명한다. 애니메이션 <루카> 또한 성인이 주인공이었던 픽사의 전작 <소울>과는 달리 다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와중에 전작의 설정을 이어가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가족을 중심으로 그려졌던 서사에서 한발 나아가 리(존 크래신스키 분)와 에블린(에밀리 블런트 분)의 아이들인 리건(밀리센트 시몬스 분)과 마커스(노아 주프 분)가 서사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이 서사들의 공통점은 그레타 툰베리가 말하듯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상을 다음 세대가 책임을 지고 원상복구한다는 데 있다. 리자허(등은희 분)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도 마땅한 형기를 받지도 않고, 심지어 그나마도 제대로 채우지 않고 출소한 유레이(이감 분)를 대신 죽이려 든다. 그레타 툰베리는 금요일 결석 시위를 이어가며 기후 위기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 분)와 알베르토(잭 딜런 그레이저 분)는 바다 괴물이 살지 못하게 된 지상에서 인간 여자아이와 함께 경기에 출전한다. 전편에서 외계인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아낸 리건은 모두의 만류에도 세상을 구하려 한다. 어째서 성인 세대는 구원의 주체를 이렇듯 어린 아이들로 상정하는 것일까.


전편에서 가장인 리를 잃은 애보트 가족은 리건이 사라지고 이웃이었던 에밋(킬리언 머피 분)을 가장의 자리에 대체할 것처럼 보이지만 에밋은 이 자리를 거부한다. 가족을 잃고 성인에서 퇴행한 것처럼 보이는 에밋은 애보트 가족이 망가진 세상을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을 구하겠다며 결국 길을 떠난 리건을 찾으러 나선 에밋은 일시적으로 리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에블린이 에밋에게 의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에블린은 다리를 다친 마커스를 치료할 구급약을 찾아 나서고 돌아와서도 나타난 외계인에게 화염 공격을 가한다. 애보트 가족의 생존 능력은 생존 캠프라도 운영했었나 싶을 만큼 뛰어난 수준이지만 홀로 남은 에밋과 상반되어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정상적인 생존이 가능했던 것으로 비춰진다. 특히 외계인 침공 전부터도 청각 장애를 지닌 리건으로 인해 전원 수화가 가능했던 애보트 가족은 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에서 생존에 최적화된 존재로 거듭난다. 애초에 애보트 가족을 구원하고 있었던 것은 리건이며 전편에서도 리건은 자신의 보청기가 발산하는 주파수를 이용해 외계인의 약점을 간파해냈다. 자신의 가족을 구원한 리건은 이제 세상을 구하고자 하며, 그 전에 희망을 잃은 에밋을 먼저 구원한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최약자로 여겨지는 청각 장애인 소녀라는 점은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다. 현 세상에서 약점으로 여겨지는 각종 장애나 질환을 지닌 이들의 유전자를 보존하며 다양한 인류가 공존하는 세상을 구축하는 이유는 현 시점에서 약점으로 보이는 유전자도 어느 시점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유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폐 유전자를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돌연변이로 보는 학자들이 있을 정도다(뛰어난 기억력 혹은 천재적인 수학적 능력 등 자폐인 가운데 10% 정도로 발현되는 서번트 신드롬을 진화인류학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심지어 흑백 색맹의 경우 어두운 밤에도 움직이는 적군을 식별할 수 있어 과거에는 야간 정찰병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실제 청각 장애인 배우인 밀리센트 시몬스가 연기한 리건은 가족에게 생존의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외계인을 물리칠 수 있는 희망의 근거로 성장한다. 많은 서사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존재를 이렇듯 나약한 존재로 설정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최약자에게 서사의 중심을 넘겨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이들이 받는 대우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약자가 살아가기 힘든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은 강자들인데 위기 상황에서 구원의 주체로 상정하는 것은 책임마저 떠넘기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언제나 주인공을 여자아이로 설정하는 이유에 대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여성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희한하게도 미야자키의 서사에서 조력자 남성 없이 홀로서는 여성 캐릭터는 극히 드물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하쿠 없이 여관에서 생존하지 못하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소피는 하울의 성에서 하필이면 집안일을 도우며 자신의 생존을 도모한다. 여아가 주체인 서사조차 여성이 자신의 힘으로 홀로서기보다는 남성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서, 그것도 대부분 로맨틱한 관계를 기반으로 구원의 주체가 된다는 점은 미야자키 서사의 한계점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리건은 강인하지만 성인 남성인 에밋의 도움 없이는 목적지인 섬의 방송국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리건의 장애는 애보트 가족에게 생존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지만 리건 자신에게는 여전히 약점으로 작용한다. 리건의 시점에서 보이는 장면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마커스의 약을 가지러 간 기차에서 리건은 뒤에서 다가오는 외계인의 존재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즉 리건의 장애는 외계인 침공 전이나 후 모두 리건의 약점으로 작용하지만 타인들에게는 구원의 기반이 된다. 리건은 자기 자신을 구하지 못하면서 타인은 구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가진 캐릭터인 셈이다.



리건이 이런 아이러니를 알았다면 세상을 구하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리건은 성인 여성이 아닌 10대 여자아이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리건과 짝을 이루며 이번 편을 누비는 에밋과 대비된다. 에밋이 리건의 계획을 듣고도 세상을 구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가족을 잃은 데다 외계인의 습격을 받고 구원받을 가치가 없을 만큼 변해버린 인간군상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리건은 에밋을 구원하기 이전에 에밋의 희망을 먼저 구원한다. 에밋은 리건을 통해 애보트 가족과 같은, 구원할 가치가 있는 이들이 아직 세상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리건의 소수자성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동시에 다수자의 희망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이중성을 표방한다. 위기상황에서 약자를 먼저 구하는 것이 전체 생존율을 높인다는 이론은 애보트 가족에게 적용되다가 후속작에 이르러 전체 인류에 적용된다. 에밋이 리건의 계획에 동참하는 계기는 리건이 자신의 불리한 조건을 알고도 마커스와 인류를 구하기 위해 홀로 길을 떠났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리건은 위험을 무릅쓰고 기차 안에서 구급약을 꺼내오고 이어서 에밋에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보트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리건이 에밋에게 보여준 희망은 애보트 가족이 떠나길 원했던 에밋이 리건을 구하려 할 만큼 강력하다. 보트를 찾아나선 부두에서 미쳐버린 인간군상을 발견한 에밋과 리건은 리건 또래의 여자아이조차 타락한 것을 보고도 인류를 구원하려 한다. 리가 죽고 살아남은 애보트 가족을 모두 만난 에밋은 마커스나 에블린, 심지어 애보트 가족의 갓난아이를 보고도 희망을 얻지 못했지만 리건의 행동을 보고서는 마음을 바꾼다. 에밋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반드시 리건이어야 했을까? 오히려 외계인 침공 전 타락한 세상을 어느 정도 목격하고도 아직 세상이 구원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에블린은 에밋을 설득하지 못한다. 에블린이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리건이 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뿐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구원의 역할을 대부분 리건에게 몰아주면서 책임까지 함께 떠넘긴다. 리건의 보청기는 외계인을 향한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성인들은 리건을 보호하기보다는 리건을 방송국까지 데려다 주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남은 보청기는 리건의 것 하나뿐인가? 방송국에 가야만 하는 것은 리건이었어야만 하는가? 성인으로 가는 성장의 길목에 들어선 마커스와 리건이 인류를 구원하는 주체로 성장한다는 점에서는 성장 서사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구원의 주체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무책임해 보인다.



감독 존 크래신스키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를 통해 자신의 아이들이 자라 주었으면 하는 방향으로 서사를 전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들은 언젠가는 타락한 세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특히나 사회의 약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청각 장애인 리건에게 구원의 역할을 부여하기엔 이 사회가 차별한 역사가 너무나 깊다. 백인 남성이 구원의 주체로 등장하는 오랜 전통을 깼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러기엔 리건의 어깨는 너무나 무겁다. 전편에서는 가족이 팀을 이루어 외계인을 물리쳤기에 리건은 보호받으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었지만, 후속작에서는 자신을 구하려 하지 않았던 이마저 구원하게 되는 책임을 떠안는다. 성인이 되기 전 아이들은 아직 보호받는 존재라는 것, 이들이 구원의 키는 쥐고 있을지 몰라도 주체가 되기엔 성인들이 세상을 너무 망쳐놓았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라는 치트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