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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un 28. 2021

모계 사회로의 귀환

웃자고 한 얘기,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제 얘기를 하려면 방법이 없었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의 대표 캐릭터는 데드풀이다. 희한하게도 <데드풀> 시리즈와 <킬러의 보디가드> 시리즈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데도 묘한 기시감을 준다. 심지어 <데드풀> 시리즈에서 말이 많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건 라이언 레이놀즈가 연기한 데드풀인데 반해 <킬러의 보디가드> 시리즈에서 라이언 레이놀즈가 연기한 마이클 브라이스는 주로 욕을 듣는 신세다. 라이언 레이놀즈 이외에도 사뮤엘 잭슨이 공통으로 세계관 내 존재하기는 하지만 여지껏 닉 퓨리(사뮤엘 잭슨 분)가 <데드풀>의 세계관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주연 배우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데드풀>의 후속작 <데드풀 2>와 <킬러의 보디가드>의 후속작 <킬러의 보디가드 2>가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가족이라는 키워드다. 사랑하는 바네사(모레나 바카링 분)와 아이를 갖고 가족을 꾸리려던 데드풀 웨이드 윌슨은 영화 초반 바네사를 잃고 자신을 가족으로 끌어들이려는(?) 자비에 영재학교의 콜로서스를 거부했다가 이들을 결국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킬러의 보디가드 2>에 이르러 마이클은 전사를 공개하고 가족의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미국이 기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국가인 만큼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 대한 집착이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언뜻언뜻 보이긴 하지만 이민자로 이루어진 국가라서인지 놀라울 만큼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다. 특히 영어에서의 가족에 해당하는 family는 사실상 절친한 친구를 포함하는 개념인 것처럼 보인다. 어벤져스의 멤버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고 블랙 위도우 나타샤(스칼렛 요한슨 분)에게 가족이 있었냐는 질문에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우리였다고 스스럼없이 대답한다. 희한하게도 기독교의 영향으로 입양에도 거리낌이 없는 미국 사회는 특히 오바마 정부에 이르러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며 더더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게 됐다. 가족이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 생물학적 DNA를 공유하며 모인 집단을 기반으로 하지만 미국 문화에서는 자신이 선택했지만 DNA는 공유하지 않는 이들도 가족에 포함된다.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킬러의 보디가드 2>는 가족에 대해 한층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마이클의 가족사는 우선 친가족으로 시작한다. 친아버지는 영화상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친어머니는 어린 시절 마이클이 보는 앞에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난다. DNA 검사로 친아버지를 찾는 것이 불가능한 자연에서는 출산으로 인해 친족관계가 확실한 모계를 중심으로 사회가 구성된다.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라고 하면 어머니가 문란한 여성으로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인 데 반해 <킬러들의 보디가드 2>에서는 전혀 그런 양상이 없다. 영화를 끝까지 봤을 때 마이클의 가족은 결국 모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즉 가족을 구성할 선택권은 주로 여성에게 있으며, 여성의 선택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못한다. 일례로 마이클의 어머니를 모욕한 마이클의 양아버지 마이클 브라이스 시니어(모건 프리먼 분)의 최후는 곱지 못하며 소니아(셀마 헤이엑 분)의 신체 나이를 조롱한 이들은 단시간 내에 사망한다. 소니아와 다리우스(사뮤엘 잭슨 분)가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소니아가 원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리우스는 소니아의 옛 연인이 소니아에게 가족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소니아를 포기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마이클의 가족사는 흥미로운 면이 많다. 젤라또를 천천히 고르는 바람에(?)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마이클은 흑인인 탑클래스 보디가드 시니어에게 입양된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트라우마를 직업적으로 승화시키는 동시에 시니어의 교육이 합쳐져 보디가드가 된 것으로 보이는 마이클은 시니어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아버지와 사이가 나빠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전편에서 보디가드 면허를 잃은 마이클은 시니어에게 연락하지 못한다. 온갖 보디가드 상패로 도배된 시니어의 집은 마이클이 잃어버린 남성성 그 자체이자 열등감의 근원으로 변한다. 마이클의 얼굴에 시종일관 묻어 있는 피는 시니어의 집을 나오고도 그 자리를 유지하는데(세수 정도는 할 법도 한데..) 자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은 그 곳이 마이클이 재탄생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을 의미한다. 마이클의 핏자국이 지워지는 순간은 시니어의 정체를 깨닫고 아버지로서의 그를 거부하며 (일반적으로 탄생을 의미하는)물에 빠졌다가 나오는 순간이다.



전편과는 달리 마이클은 이번 편에서 유독 유사 죽음의 과정을 여러번 거친다. 인터폴 요원으로부터 돈가방을 받아 킨케이드 부부와 임무를 맡은 직후 다리우스를 치려던 소니아는 마이클을 차로 치어버린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킨케이드 부부가 예약한 카르멘을 관람한 다음날까지도 깨어나지 못하는데 우연히도 마이클이 들어(?) 있던 공간은 자궁을 연상시키는 차 트렁크다. 영화의 결말에 대한 암시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장면은 두 가지 포인트를 갖고 있다. 하나는 마이클이 태아의 형상으로 누워 있었다는 것, 그리고 트렁크에 마이클을 넣고 꺼내준 것이 다리우스가 아닌 소니아라는 점이다. 마이클은 친어머니를 잃고 양아버지를 얻었지만 결국 다시 어머니를 얻게 되며, 일련의 과정은 주로 여성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마지막까지 가족을 선택하는 건 소니아이지 마이클이나 다리우스가 아니다). 이후 총에 맞아 죽은 것처럼 보이던 마이클은 역시나 물에 빠지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삶의 영역으로 돌아온다. 이 때 장례식(?)을 치러주던 것도 소니아이며 이후 물에 빠진 마이클을 다리우스가 건져오는 에피소드가 있긴 하지만 유사 죽음으로 보기엔 애매한 구석이 많다. 마지막으로 킨케이드 부부와 마이클이 함께 마취총을 맞고 잠드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소니아는 자신이 선택할 가족에 대해 마음을 굳히고 마이클 또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이를 버리게 된다. 마이클의 유사 죽음은 매번 새로운 가족의 탄생에 대한 촉매제로 작용해온 셈이다.


한편 소니아와 잠시 떨어져 마이클과 다리우스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도 곱씹어볼 부분이 있다. 전편에서 다리우스는 마이클의 작전에 훼방을 놓아 가족이 될 수도 있었던 루셀(엘로디 영 분)이 마이클과 헤어지는 계기를 제공한다. 마이클의 양아버지가 자신과 같은 인종이라는 데 경악을 표했던 다리우스는 이후 마이클에게 유사 아버지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부둣가에서 마이클을 끌어올린 다리우스는 마이클의 뺨을 때려가며 인생 조언(?)을 복창시키고 양아버지는 인정해주지 않았던 보디가드로서의 마이클을 인정한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마이클 또한 다리우스로부터 가족을 빼앗았다는 점이다. 마이클이 쏜 총으로 인해 다리우스는 치명타를 입어 난임병원 신세가 된다. 다리우스는 시니어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 마이클은 다리우스에게 치명상을 입힘으로써 서로에게서 가족을 빼앗는 동시에 결국엔 그 자리를 스스로 대체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마이클은 이 세상에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선택권을 받지 못하고 가족을 얻는다. 비록 소니아에게 모성애라는 전형적인 가족의 틀을 씌워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쉽기는 하지만 동시에 모든 선택권을 소니아에게 준다는 점에서 <킬러의 보디가드 2>는 모계 사회로의 귀환을 암시한다. 해변가에서 마이클을 소환하며 시작했던 영화는 마지막까지 킨케이드 가족(..)을 하필이면 수상으로 보낸다. 그리고 마이클은 스스로 물 속으로 뛰어들지만 관객은 곧 소니아가 다시 마이클을 끌어올릴 것을 알고 있다. 소니아의 말대로 남편처럼 소니아도 죽일 수가 없으며(unkillable), 킨케이드 가의 일원이 된 마이클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들은 죽일 수가 없기에 가족이 된 건 아닐까.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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