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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un 14. 2021

사랑이라는 치트키

#LoveWins

제임스 완 감독이 제작한 컨저링 유니버스는 워렌 부부의 사건파일을 기반으로 한다. 영화만 봐서는 워렌 부부가 매 사건 엄청난 활약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화적으로 각색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엑소시즘 자체가 기독교의 신과 악마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컨저링 유니버스는 기독교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띤다. 스핀오프로 나왔던 <더 넌> 시리즈는 아예 수녀가 주인공일 정도니 컨저링 유니버스 내에서 기독교의 지분은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영화의 배경으로서 작용하는 정도를 떠나 영화의 전체 주제의식에도 기독교는 큰 영향을 미친다. <컨저링> 시리즈에 등장하는 가족이 전원 이성 부부와 아이들로 구성된 점, 그리고 결국 악령을 퇴치하는 것은 기독교의 중심 가치인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것은 <컨저링> 시리즈가 단순한 호러영화를 표방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같은 오컬트를 소재로 한 <콘스탄틴>이 <컨저링> 시리즈와 맥을 달리하는 가장 큰 요소는 주인공인 콘스탄틴은 솔로 엑소시스트인 반면 워렌 부부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자 사랑하는 파트너를 두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악령을 보고 자라 세상사에 회의적이 된 콘스탄틴은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는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며 루시퍼에게 영혼을 예약해 둔 상태지만 워렌 부부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가치에 충실하다.


<컨저링>, <컨저링 2>에서 목숨의 위협을 몇 번이고 겪은 워렌 부부는 특히 <컨저링 2>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악령에 맞서 싸웠다.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이하 <컨저링 3>)에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다. 어린 아이 데이빗(줄리안 힐데아드 분)의 몸에 깃든 사악한 악령은 데이빗을 괴롭히다 못해 누나의 남자친구인 어니(로우리 오코너 분)에게로 옮겨간다. 어니의 지각은 이제 악령에게 조종당하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브루노를 악령으로 착각한 나머지 살해하고 만다. 전편까지 워렌 부부의 사랑과 피해 가족의 가족애에 기대어 오던 <컨저링> 시리즈는 <컨저링 3>에 이르러 약간의 변화를 꾀하는데 바로 어니와 여자친구인 데비(사라 캐서린 훅 분)의 사랑으로 가족애를 대체한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어니와 데비가 결국 가족이 되었다는 자막은 영화에 이전까지 등장한 적 없던 워렌 부부의 연애시절과 어니와 데비 커플이 교차되면서 어니와 데비 또한 워렌 부부처럼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것을 암시한다. 고루한 주제의식이긴 해도 딱히 문제될 건 없어 보이긴 하지만, 세번씩이나 우려먹었다면 좀더 다양성을 확보하거나 주제의식을 확장할 필요가 있는데 <컨저링> 시리즈는 워렌 부부에게서 더 나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담보하는 국가이고 국교로 정해진 종교는 딱히 없지만 기독교가 근간을 이루는 국가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특히 미국의 주류를 차지하는 백인을 제외해도 흑인이나 아시안을 결집시키는 곳도 교회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흑인의 역사를 조명하거나 흑인의 삶을 비추는 영화에 흑인 교회는 높은 확률로 등장하며, 아시안이 중심이 되는 영화에 교회가 등장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영화 <미나리>를 통해 한인 커뮤니티의 중심에 교회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극중 모니카(한예리 분)는 이주한 아칸소의 병아리 공장에서 만난 한인에게 왜 한인교회가 없냐고 묻는다). 희한한 점은 교회는 모두를 사랑하라는 복음을 전파하는 곳인데 모든 인종이 모이는 교회는 영화에선 도통 본 적이 없고 인종별로 모이는 교회만 잔뜩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외를 찾는다면 <버든: 세상을 바꾸는 힘>에 등장하는 흑인 교회에 마이크와 주디 커플이 유일한 백인으로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집단 린치눈치를 당하)는 경우와 <미나리>에서 아칸소에 한인 교회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니카와 제이콥이 역시 어색하게 백인들의 교회에서 어울리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지긴커녕 서로 겉돈다.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듯이 기독교의 가치 자체는 훌륭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를 뒤틀리게 해석하고 입맛대로 재단하는 인간들이 문제다. 워렌 부부는 신실한 기독교인인 만큼 만인을 사탄으로부터 구하고자 하기에 의뢰인들을 성심성의껏 대한다. 총괄 제작자인 제임스 완이 아시안임에도 불구하고 <컨저링> 시리즈에 등장하는 의뢰인이 전부 백인인 점은 좀 신기(?)한데 마치 같은 인종만을 구원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핀오프 시리즈인 <애나벨>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애나벨>의 경우 흑인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메인 시리즈는 <컨저링> 시리즈라는 점에서 굳이 타 인종을 다루려 하지 않는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만하다. 악령이라는 존재가 신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주로 교인들의 집에 출몰하기는 하지만 기독교를 제외한 종교의 신자들에게도 엑소시즘이 행해진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차피 다 각색하는 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인종이나 종교를 끌어들일 수도 있을텐데 이성 부부를 중심으로 한 백인 가족을 배경으로 한 <컨저링> 시리즈는 이제 재탕의 연속으로 보인다. <검은 사제들>로 한국식 엑소시즘을 선보였던 장재현 감독은 다음 작품으로 불교와 사이비 종교를 기독교에 섞어 만든 <사바하>로 획기적인 종교 공포영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감독직을 마이클 차베즈에게 넘겨주긴 했지만 컨저링 유니버스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제임스 완은 만인을 사랑하라는 기독교적 가치에 기초해 좀더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보니 <컨저링> 시리즈 내 기독교라는 장치는 이미 다양하게 변주된 바 있는 엑소시즘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악령을 다루는 공포영화는 이미 아리 애스터 감독이 <유전>이라는 걸출한 입봉작을 통해 극한까지 다룬 적이 있다. 엑소시즘이 웬만한 공포영화 관객에게 익숙해진 지금 <컨저링> 시리즈 안에서의 기독교는 워렌 부부의 믿음, 소망, 사랑 말고는 타 엑소시즘 영화와 차별점이 없어지고 만다. 워렌 부부의 서로에 대한 헌신은 그 자체가 판타지로 보일 만큼 대단하지만 치트키로 세 번이나 쓰이게 되면 치트키로서의 기능을 잃는다. <컨저링> 시리즈가 근대로 보기에는 애매한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고루한 가치를 담아내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관객은 오스카 시상식에 소수 인종이 수상하고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단순히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주제를 반복한다면 <컨저링> 시리즈는 그 매력을 잃고 만다. 심지어 미안한 일이지만 공포의 강도도 시리즈가 갈수록 감소하는데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워렌 부부의 엑소시즘이라는 소재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공포영화에서 파트너를 향한 신실한 사랑은 깊이 탐구된 적이 별로 없다. 심지어 공포영화의 법칙 중 하나는 영화 초반 성적인 유희를 즐기는 젊은 커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컨저링> 시리즈는 이 법칙을 비틀고 세상 그 어떤 것도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는 소신을 지켜왔지만 이제는 그 소신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 워렌 부부의 사랑은 악령과의 전쟁으로 증명할 필요가 없으며 관객은 이들의 러브스토리보다는 악령의 기원이나 만행이 더 궁금할 것이다. 컨저링 유니버스는 점점 더 넓어지는 데 반해 시발점이 된 <컨저링> 시리즈는 점점 힘을 잃는다. 아직 워렌 부부의 사건 파일이 많이 남은 만큼 <컨저링> 시리즈가 갈 곳도 많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곳이 반드시 백인 이성 부부를 중심으로 둘 이상의 자녀를 지닌 집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고, 1인 가구도 가구니까.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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