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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un 22. 2020

이상의 구름 위에 뜬 이성적인 도전

헤테로 로맨스를 대체한 낭만

하늘을 날겠다는 꿈을 가졌던 이들은 무수히 많은 비웃음을 당했다. 하지만 이들의 수많은 실패와 실험으로 현대 인류는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이 결코 요원한 일이 아닌 오늘(코로나 때문에 한시적으로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스크린에 비행기가 아닌 열기구 이야기가 당도했다. <에어로너츠>라는 제목이 한번에 와닿지 않는 관객은 우주비행사를 뜻하는 영어단어 astronaut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천문을 뜻하는 astro 대신 aero를 붙인 에어로너츠는 극중 열기구 조종사로 번역되는데 왜인지 모르게 원어민이 아닌 필자에게도 느껴지는 단어의 낭만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내맘대로 번역해 본다면 하늘비행사 정도 될까.


영화 속에서도 하늘을 날다가 남편을 잃은 아멜리아 렌(펠리시티 존스 분)과 하늘에서 직접 날씨를 관측하고자 하는 과학자이자 천문학자이자 기상학자인 제임스 글레이셔(에디 레드메인 분)는 많은 이들에게 비웃음을 산다. 특히 괴짜 과학자로 정평이 난 제임스는 학회에서 발표하는 와중에도 비웃음을 당하고 집에 와서 속상하지 않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아버지가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고 대답한다. 이들을 비웃는 이들에게 화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멜리아는 영화 초반 열기구에 광대처럼 탑승한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마차에서 점프하여 공중제비를 돈 뒤 거창한 연설을 토하고, 심지어 열기구가 이륙한 후에는 강아지를 떨어트린다(강아지에게 패러슈트를 입혀 무사귀환시켰으니 걱정마시길). 이런 오프닝 탓에 아멜리아를 모험에 거침없이 달려드는 비이성적인 캐릭터로, 옆에서 이를 지켜보며 혀를 차는 과학자 제임스를 이성적인 캐릭터로 관객이 오인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열기구를 실질적으로 조종하는 조종사는 아멜리아이고, 기상관측에 미쳐 정작 가져왔어야 할 방수복을 놓고 온 과학자는 제임스다. 사실 강아지를 던지는 장면은 이후 제임스가 비둘기를 던지는 장면으로 변주되는데 정작 쇼를 하면서도 강아지는 살려서 귀환시킨 아멜리아와는 다르게 제임스의 비둘기는 저산소증으로 무사귀환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렇게 하늘을 날고자 하는 두 캐릭터의 이상과 이성을 번갈아 가며 묘사하여 관객의 심장을 졸이게 만든다.



영화는 제임스보다는 아멜리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아멜리아가 이미 열기구 비행으로 인해 남편을 잃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에어로너츠>의 기반이 된 실화를 검색해 보면 실존 인물인 제임스 글레이셔가 함께 비행했던 이는 헨리 콕스웰이며 아멜리아 렌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아멜리아라는 이름은 아마도 대서양 횡단에 여성 최초로 성공한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에게서 따온 이름일 것이다). 아멜리아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영화를 위해 각색된 것인데 기존 남성이었던 역사적인 인물을 여성으로 각색한 점은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인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멜리아와 제임스의 로맨스 서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 하늘을 날고자 한 이들에게 굳이 연애담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영화 중반부 파티장에서 제임스를 만난 아멜리아는 "나는 돈을 주고 부리는 마부가 아니"라고 말하며 비행을 거절하지만 제임스는 "잘됐군요, 저는 동료 과학자가 필요하니까"라고 화답한다(실제 두 인물을 연기한 펠리시티 존스와 에디 레드메인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이미 부부를 연기한 바 있다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하늘에서 직접 기상을 관측하겠다는 과학자와 역사상 누구보다도 높이 하늘을 올라가겠다는 열기구 조종사의 꿈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이성적으로 이 과업을 대하고 있다. 그렇기에 <에어로너츠>에 로맨스 서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쇼를 하며 열기구에 뛰어올라 강아지마저 집어던진 아멜리아는 곧바로 화장을 지우고 방수복으로 갈아입으며 못마땅해 하는 제임스에게 이런 쇼를 보러오는 이들이 결국 연구 자금을 대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관측에 여념이 없는 제임스에게 이 광경을 좀 보라며 재촉하는데 떨떠름해하던 제임스조차 런던의 풍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후 이어지는 공중 시퀀스를 보면 누가 이성적이고 누가 감정적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아멜리아는 끊임없이 열기구를 점검하고 제임스에게 방수복으로 갈아입으라며 재촉하지만 제임스는 안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관측과 기록에만 열중해 있다. 심지어 적란운을 만난 상황에서도 제임스는 자신의 목숨은 고사하고 아멜리아의 목숨에도 관심이 없는지 제발 내려가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다행히(?) 아멜리아는 적란운을 피해 구름 위로 상승하여 안전을 확보하고 다시 각자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제임스는 정신줄을 놓기 시작한다. 이는 적막한 구름 속에서 소리지르기(..)에서 시작하여 방수복을 사실 가져오지 않았다는 고백에서 정점을 찍는다(이 장면에서 경악한 관객이 적지 않았을 것..).



흔히들 과학이 이성의 영역이라 착각하지만 사실 과학만큼 상상력에 의존하는 분야도 없다고 한다.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만큼 상상하고 가설을 세워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분야가 과학이라는 것이다. 열기구 이륙에 지각하는 아멜리아를 기다리며 혀를 끌끌 차는 제임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딱딱한 과학자의 모습이지만 지상과 멀어지며 누구보다도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보여준다. 열기구 안에서의 모습만 보면 이렇듯 열정에 미친 감정적인 과학자같지만 영화는 사이사이 그의 연구를 보여주어 그가 어떻게 이성으로서 이상에 도전했는지를 묘사한다. 제임스는 눈꽃의 결정체를 연구했고 아무도 믿지 않음에도 저녁에 눈이 올 것이라는 기상예측을 해낸다. 죽은 남편으로 인한 비행 트라우마를 이기고 아멜리아가 열기구에 다시 탑승하게 만든 것 또한 제임스의 이러한 연구 결과물이었다. 아멜리아가 설득당한 것은 아마도 제임스가 이상에 눈이 멀어 순진하게 열기구 탑승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 기상을 예측함으로써 인류에게 가져다줄 이득과 그의 연구에 대한 헌신임을 확신한 때였을 것이다. 아멜리아 또한 무모하게 열기구에 탑승했다가 남편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로부터 교훈을 얻어 철저하게 비행을 준비한다. 영화 중반 하강을 준비하며 가스 구멍이 열리지 않자 상공 7000m 높이에서 열기구 위로 용감하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쫄깃해지지 않은 관객은 없을 것이다(심지어 이 때 제임스는 정신을 잃었..).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아멜리아는 이성을 되찾고, 지상에 가까워질수록 제임스가 이성을 되찾는다. 열기구 조종사인 아멜리아는 하늘에서 안전하게 지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상학을 연구하는 제임스는 지상에서 정확한 관측으로 연구하기에 이런 영화적 묘사는 타당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산소가 적어져 이성적인 사고가 안되는 제임스는 얼어죽어가면서도 내려가지 말자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이런 제임스가 정신을 잃고서야 아멜리아는 하강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가스 구멍을 연 아멜리아가 정신을 잃고 추락하고서도 여전히 제임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 자력으로 바스켓에 올라타는 동안 제임스는 죽은 것처럼 보인다. 간신히 제임스를 제정신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한 아멜리아는 이제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기 시작하고 제임스를 무사 귀환시키기 위해 목숨을 건 결심을 한다. 하지만 지상과 가까워지며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제임스는 함께 무사귀환할 방도를 찾아낸다. 아멜리아와 제임스는 각자의 영역에 누구보다도 충실했으며 서로를 동료 과학자로 인정하고 신뢰를 축적한 것이다.



여성 과학자 및 조종사 캐릭터가 영화 역사에서 묘사되어온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전문직 혹은 히어로 여성을 묘사함에 있어 이성적이고 로맨스 서사가 배제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지금 떠오르는 영화는 <캡틴 마블>정도다).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레이(데이지 리들리 분)조차 <스타워즈: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결국 키스신을 맞닥뜨려야 했고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로맨스 서사를 요구하는 편집장에게 반하는 조(시얼샤 로넌 분)의 모습을 그려 이런 행태를 비꼬았다. 그렇기에 (비록 전남편 서사가 있기는 하나) 실질적 주인공인 제임스 글레이셔와의 연애담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전문적인 지식으로써 열기구를 제작하고 조종하며 용감하게 창공에서 줄 하나에 의지해 열기구 위로 올라가는 아멜리아의 모습을 그린 <에어로너츠>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를 이야기의 두 축으로 내세우면서도 감정적인 캐릭터와 이성적인 캐릭터로 나누지 않은 것은 실제 인간이 성별에 관계없이 두 영역 중 한가지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멜리아와 제임스는 이상을 꿈꾸면서도 누구보다도 이성적으로 창공에 도전했던 이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제임스 글레이셔의 캐릭터 구축에서 놀라운 점은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멜리아를 무시하다가 역량을 보여주는 순간 인정하는 구시대적 캐릭터가 아닌, 처음부터 아멜리아를 동료로서 인정하고 함께 비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데 있다. 이런 제임스 글레이셔의 캐릭터는 대학가를 돌아다니는 아멜리아를 보고 여성에 대한 출입 규정이 있다고 말하는 19세기 남성들 사이에서 더욱 빛난다.


기상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하늘에 도전한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영화는 중간중간 나비 떼가 날아드는 장면이나 아멜리아가 남편의 무덤을 찾아가는 순간 제임스의 예측대로 눈이 내리는 등의 낭만적인 장면 또한 놓치지 않는다. 어쩌면 <에어로너츠>는 편견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과학자들의 낭만도 함께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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