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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ug 09. 2021

원탑 캐릭터를 잘 활용하려면

할리 퀸만 일할 수는 없다

DC유니버스는 <맨 오브 스틸>에서 첫 단추를 단단히 잘못 끼운 유니버스다. 지구를 주 무대로 지구인 빌런이 주를 이루던 초기부터 외계 빌런의 떡밥을 쌓아올린 마블과는 달리 DC유니버스는 외계인 태생인 슈퍼맨이 DC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리면서 현대적인 빌런의 개념을 구식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슈퍼맨 은퇴설이 나도는 가운데 DC를 회생시키기 위한 많은 캐릭터들이 출격했고 몇몇은 성공적이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할리 퀸(마고 로비 분)을 제외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거의 남기지 못했다. 어떻게든 캐릭터 군단을 살려 보려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 멋지게 활약한 할리 퀸마저 구세대로 돌려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DC유니버스의 빌런은 할리 퀸에게 큰 빚을 지고 있어 앞으로도 할리 퀸은 멱살잡혀 끌려나오게 되겠지만, 할리 퀸의 활용 방식은 바뀔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할리 퀸을 보다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매력적인 캐릭터가 더 필요하다. 애초에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캐릭터 군단이었지 할리 퀸의 원탑 무대가 아니었다. 특히 윌 스미스가 연기한 데드샷 플로이드 로튼은 지금 생각해도 아까운 캐릭터다. 진지하고 복수심에 가득 차 있었던 드라마 버전의 데드샷과는 달리 영화판의 데드샷은 윌 스미스에게 넘어오면서 코믹하면서도 명사수라는 코드네임에 걸맞게 사격액션이 볼만한 캐릭터였다. 서사 전개 방식이 아쉽긴 했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안티히어로들을 대거 소개했고 각각의 캐릭터들은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오면서 기존의 수어사이드 스쿼드 출신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이탈하는 바람에 새로운 캐릭터를 수혈해야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합류한 캐릭터들은 매력도가 낮다. 그러다보니 혼자서 통통 튀는 캐릭터성을 지닌 할리 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할리 퀸의 매력을 온전히 살려주지도 못했다는 점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패인이다.



잠시 시계를 돌려 <버즈 오브 프레이>로 돌아가 보면 DC 유니버스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많은 수의 여성 안티히어로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했다. 원더 우먼에서도 아마존의 여전사 군단이 등장하거나 치타와 같은 여성 빌런이 등장하긴 했지만 여성 팀업은 없었다. 다이애나는 아마존의 여전사들 대신 연인 스티브 트레버와 함께였고 다이애나의 감정적인 서사가 시작되는 지점은 대부분 스티브 트레버가 일종의 레버 역할을 할 때였다. 하지만 조커를 잃은 할리 퀸은 그를 대신할 남성 캐릭터를 찾는 대신 여성들과 의기투합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불필요하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던 할리 퀸은 <버즈 오브 프레이>에 이르러 드디어 바지를 선물받았고 그야말로 자유롭게 액션을 펼쳤다. 여성들과의 협업으로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스크린을 누볐던 할리 퀸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돌아오면서 다시금 여성 '안티히어로'가 아닌 '여성' 안티히어로로 회귀한다. 영화 초반 남성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전신을 가리는 수트를 입었던 할리 퀸은 금세 강렬한 붉은 색의 롱스커트로 갈아입는다. 더욱 최악인 건 할리 퀸이 착장을 달리한 이유가 이렇게 강하고 능력치가 높은 여성 캐릭터마저도 성적으로 대상화한 남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성 캐릭터에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 연애 서사가 유독 할리 퀸에게만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어사이드 스쿼드 내에 몇 안되는 여성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성적으로 대상화될 여지가 많은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함께 등장하는 랫캐쳐 2 클레오 카조(다니엘라 멜키오르 분)는 여성임에도 대상화되는 여지가 훨씬 적다. 블러드스포트 로버트 드부아(이드리스 엘바 분)가 종종 kid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소아성애나 아동성애에 엄격한 미국에서 성인 캐릭터들이 어린 여성을 연애 대상으로 보는 것을 의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오는 의상부터 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남성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활약을 펼친다. 킹 샤크 나나우에(실베스터 스탤론 분)와 우정을 형성하고 인간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다른 남성 캐릭터들을 제치고 굳이 클레오에게 부여하거나 후반부 결투 장면에서 신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인해 남성 캐릭터에게 도움을 받는 서사는 클레오 캐릭터조차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클레오는 할리 퀸보다는 대상화되는 데서 안전권에 위치한다. 할리 퀸에게 굳이 고문 장면을 삽입하고 코피를 묻히며 불편한 롱스커트를 갈아입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데는 서사를 진행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할리 퀸을 관객의 눈요기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 퀸에게 큰 지분을 빚진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할리 퀸의 원맨쇼를 길게 할애한다. 지하 감옥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혈혈단신 수많은 용병들을 처리하고 유유히 탈출하는 시퀀스는 할리 퀸의 능력치를 간단하게 설명함과 동시에 최고의 액션신으로 자리매김한다. 기실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도 볼거리가 많고 시원시원한 액션을 구사하는 이 시퀀스는 다른 캐릭터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솔로 액션신을 오로지 할리 퀸에게만 할당하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존 히어로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정신줄이 풀린 것만 같은 독특한 액션신을 선사함과 동시에 마고 로비가 연기하는 할리 퀸의 매력이 마음껏 발산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 바지를 입고 보다 짧은 머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경찰서 탈출 액션을 수행했던 할리 퀸은 굳이 불편한 옷에 긴 머리를 하고 코피를 흘리며 진행하는 액션 시퀀스로 인해 남성 관객을 겨냥한 눈요기로 전락한다. 심지어 치마까지 뜯어 굳이 노출을 감행하는 데는 액션이 아닌 의도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개봉한, 전원이 전신을 감싸는 수트를 입고 액션을 수행했던 <블랙 위도우>의 위도우 군단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기에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할리 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 이외에도 다른 캐릭터들의 매력 또한 그닥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더한다. 이드리스 엘바나 존 시나는 타 작품에서 연기하던 캐릭터와 크게 다를 바 없어보이고 폴카도트맨 애브너 크릴(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분)은 캐릭터 자체부터 매력도가 떨어지는데다 크게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레트로 감성을 우주 배경으로는 잘 녹여냈던 제임스 건 감독은 지구에 불시착하며 DC와 <더 보이>가 합쳐진 것 같은 괴작을 만들어냈다. 그런 와중에도 살아남아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는 할리 퀸을 다음 작품에서는 좀더 활용할 수는 없는 걸까. <버즈 오브 프레이>의 후속편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릴 뿐이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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