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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ug 02. 2021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

<방법>이 <방법: 재차의>에게 남긴 것들

영화 <방법: 재차의>는 익히 알려진 대로 드라마 <방법>의 후속편에 해당한다. <부산행>, <반도>로 유명세를 탄 연상호 감독이 작가로 나섰고 김용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드라마 <방법>의 세계관은 연상호 작가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지 기존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색채를 띤다. 영화에 등장하는 재차의는 드라마 시리즈에서는 전혀 다루어진 바 없는데 <부산행>, <반도>에 등장했던 좀비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그 때문인지 제작 단계에서는 좀비가 등장한다는 설이 있기도 했는데 엄연히 재차의는 좀비가 아니다. 주술사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 시체인 재차의는 본인의 의지가 없고 산 자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언행이 정교하다. 방법사 소진(정지소 분)을 중심으로 사람을 원격으로 살인(?)하는 방법술이 메인 소재였던 드라마 <방법>은 후속작을 낳으면서 방법술은 한켠으로 치워두고 재차의 조종술에 집중한다. 소진의 방법술은 여전히 살상능력이 높은 병기지만 한꺼번에 달려오는 재차의를 전부 죽일 수 있는 폭탄이나 대포가 아니라 한 번에 한 마리를 살상하는 화살에 가까워 영화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 때문인지 소진은 영화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늦게서야 등장하는데, 이 호흡이 영화를 드라마처럼 보이게 만든다. <방법: 재차의>는 <방법>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세계관을 재구축할 필요는 버렸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드라마 시청 없이는 이해가 어렵도록 만든데다 드라마와 영화의 호흡을 섞어놓는 기묘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드라마와 영화는 뭐가 다를까. 정확히는, 영화와 단막극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1회짜리 드라마와 영화가 러닝타임이 비슷하다면 드라마는 영화가 아닐까. 그렇다면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의 <킹덤: 아신전>은 영화인가? 당연한 얘기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영화는 두시간 동안 관객을 극장 안에 붙잡아 놓는다는 전제 하에 제작되는 동시에 한 편이 완결된 서사 구조를 지녀야 한다.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여러 에피소드를 전제하고 만들어지며 시청자가 언제든 채널을 돌릴 수도 있고 한두 회쯤 빠뜨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영화와 드라마는 대사구조도 다르고 화면 구성도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시청자들은 영화같은 드라마를 선호하는 데 반해서 관객들은 드라마같은 영화를 그닥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때 한국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던 미국 드라마들은 매 에피소드가 영화같은 드라마라는 장점을 내세웠지만 어떤 영화도 드라마 같은 영화라 홍보하지 않는다. 어떤 매체가 더 우월하다고 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영화의 몰입도나 완성도가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보다 높은 편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한 회쯤 느슨해지더라도 다른 회에서 만회가 가능한 반면 영화는 매 장면을 촘촘하게 설계해야 몰입도가 높은 영화로 입소문이 난다. 그렇기에 드라마의 호흡으로 제작되는 영화들은 관객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다.



드라마 <방법>이 초반부 소진의 과거와 방법사로서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서사를 진행하면서 진희(엄지원 분)에게 서서히 초점을 옮겨가면서 소진과 진희를 드라마의 투탑으로 밀어붙였다면 영화 <방법: 재차의>는 사라진 소진을 뒤늦게 서사의 중심으로 불러온다. 드라마는 주요 캐릭터가 뒤늦게 등장하기도 하고 한 회쯤 메인 캐릭터가 서사를 건너뛰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메인 캐릭터를 뒤늦게 불러오려면 고도의 연출이 필요하다. 이런 연출에 성공한 케이스는 세조(이정재 분)를 충격적으로 등장시켰던 <관상> 정도다. 영화 중반부가 되어서야 비로소 등장한 세조는 영화 초반부를 세조의 등장을 위한 포석으로 희생했기에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법: 재차의>의 초반부 소진에 대한 주목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소진을 그리워하는 건 진희 뿐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소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재차의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진희가 낸 책의 판매량 상승과 회사 도시탐정의 회생을 강구하기 위해서다. 영화의 물리적인 메인 빌런으로 기능하는 재차의는 소진의 주 무기인 방법술로는 소용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다 영화의 실질적인 빌런인 승일제약을 무너뜨리는 메인 캐릭터는 소진이 아니라 진희다. 그렇기에 소진의 뒤늦은 등장은 연출로서는 극적이지만 서사적으로는 극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


드라마, 특히 미국 드라마에서는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메인 캐릭터가 몇 회쯤 사라지거나 혹은 한 시즌 전체에서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음 화 혹은 다음 시즌에서 캐릭터들이 비운 자리를 채우거나 서사적으로 변명해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다. 하지만 영화의 경우 <신과 함께> 시리즈처럼 애초에 후속작을 한 번에 제작하는 케이스가 아니면 메인 캐릭터의 자리를 서사에서 오래 비우려면 그만한 변명이 필요하다. 드라마의 호흡을 이어받은 <방법: 재차의>는 드라마와 영화 사이 어딘가에 놓인 혼종이다. 특히 칼군무처럼 보이는 움직임을 구사하는 재차의 군단이 등장하기 전까지 영화의 전반부는 드라마 <방법>의 다음 시즌 첫 화라고 해도 좋을 것처럼 드라마의 호흡을 따라간다. 초반부의 연출이 드라마처럼 느릿느릿하기 때문에 소진이 등장하는 후반부는 서사를 따라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거기다 나름 드라마를 보지 않은 관객을 배려하기 위해 드라마 장면을 중간중간 삽입하느라 소진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 있던 소진이 왜 진희에겐 말한마디 없이 사라져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온데간데 없고 소진의 몸에 자리잡은 악귀에 대한 서사는 소진의 말 몇마디 후에 증발한다. 재차의는 방법술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좋은 소재지만 동시에 소진의 서사를 가로막는 벽으로 역기능한다.



연상호는 한국사회의 이면에 깃든 문제들을 파국적으로 그리는 데 능한 감독이었다. 어둡고 일그러진 그림체를 사용해 애니메이션계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그는 실사로 건너오면서 빛을 잃었다. 사회를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감독은 실사 영화계에 수도 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 실사 영화였던 <부산행>은 한국영화에서는 거의 시도된 적이 없는 좀비라는 소재를 활용해 신파적인 서사에도 불구하고 독특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수많은 좀비물에 익숙해진 한국 관객은 <반도>에서는 등을 돌렸다. 그런 그가 찾은 새로운 길은 오컬트 장르인 무속의 영역 중에서도 익숙지 않은 소재인 방법술이었다. 구세계에 해당하는 무속과 신세계에 해당하는 IT업계의 충돌은 완전히 성공적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독특한 세계관에 구축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문제는 드라마 세계관에 정착한 <방법>이 영화의 호흡에 맞추기에는 인물이 다양한데다 드라마 세계관에서 활약하던 매력적인 빌런 대다수가 회생 불가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약 두 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기존 세계관을 설명하고 새로운 빌런까지 소화하기엔 버거웠는지 소진의 전사는 영화에서 크게 생략되고 드라마를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갑툭튀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아마도 이런 제한된 시간 때문에 빌런의 묘사가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도 <방법: 재차의>의 단점이다. <방법>에서 진종현 회장(성동일 분)은 빌런이 된 경위와 과거가 상세하게 설명되는 동시에 소진의 과거가 얽혀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어 냈지만 <방법: 재차의>의 메인 빌런인 승일제약의 회장과 이사들은 빌런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특히 최종 보스로 군림하는 변미영(오윤아 분)의 캐릭터는 21세기 영화가 맞나 싶을 만큼 상투적이고 평면적이다. 편한 신발에 무채색 옷을 입고 다니는 진희, 학생 신분을 벗어나 검은색 고스룩 차림인 소진과 대비되게 강렬한 색채의 의상과 짙은 화장, 하이힐로 묘사되는(참으로 구시대적인) 빌런 미영은 빌런을 위한 빌런으로서만 기능하며 본인의 서사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의 러닝타임을 고려했다고는 해도 처단 서사마저 상투적인 데는 변함이 없으며 특히 수많은 남성 빌런 가운데 홍일점이라는 데서 아쉬움을 더한다. 대기업을 빌런의 위치에 공고화하는 동시에 재차의가 된 이들이 대기업의 피해자였다는 서사는 대기업 회장이 슈퍼히어로가 되어 세상을 구하는 서사에 익숙해진 관객에게는 진부함을 넘어 게으름으로 다가온다. 



드라마 <방법>은 억지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방법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도입하는 동시에 정의로운 기자와 오컬트 능력자의 여성 연대를 보여준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소진의 뒷이야기를 열린 결말로 처리했던 마지막 화는 다소 억지스러운 마무리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는데 영화판은 드라마의 호흡을 따라가면서 기존의 매력마저 잃고 말았다. <방법: 재차의>의 쿠키 영상은 방법의 세계관이 여전히 이어질 것을 암시하지만 상투성마저 이어져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의 세계관은 악귀가 깃든 몸으로 진희와 재회한 소진의 서사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연상호의 오컬트 서사는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 여전히 궁금하게 만든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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