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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Sep 20. 2021

당신과 당신의 선택

해리는 무엇을 선택했나

개봉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끊임없이 스크린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하 <마법사의 돌>)은 시리즈를 여는 이야기이자 관객을 황홀한 마법의 세계로 초대하는 초대장이다. 원작을 읽은 관객에게는 마법 세계가 얼마나 잘 구현되었는지 확인하는 설렘을,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에게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진행으로 놀라움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마법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현실 세계에 산적한 문제들을 꼬집는 텍스트이기도 했으며 기저에 깔린 철학적인 논제들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분)로 대표되는 머글 태생의 마법사에 대한 차별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에 대한 비유였고 <마법사의 돌> 중반쯤 등장하는 소망의 거울은 인간의 욕망이 삶을 어떻게 해치는가에 관한 철학적인 경고다. 기실 영화에 등장하는 마법사의 돌(socerer's stone)은 영국판 원작에서는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다. 어린이들이 철학자가 제목에 들어간 책을 읽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엄청난 이유로 미국판에서는 마법사로 둔갑해 출판되었고 미국 영화사인 워너 브라더스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미국판 제목에 충실한 나머지 영화 제목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된 것이다.


영어단어 philosopher는 단순히 철학자가 아니라 더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마법사의 돌>에 대사로만 언급되는 마법사 니콜라스 플라멜은 600년을 넘게 살면서 철학적인 사유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철학자의 돌은 실존하는 전설이기 때문에 바뀐 제목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https://www.buzzfeed.com/eleanorbate/what-is-this-sorcery). 플라멜과 덤블도어 교수(리처드 해리스 분)는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마법사의 돌에 관한 어떤 결단을 내린다. 시리즈 전반에 걸쳐 인물들에게 수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선택에 관한 결과를 때로는 잔인하게 보여주는 해리 포터 시리즈는 초반부터 해리(다니엘 래드클리프 분)에게 수많은 선택을 할 것을 종용한다. 덤블도어 교수의 결정으로 이모의 집에서 고아로 자란 해리는 11살이 되던 생일 해그리드(로비 콜트레인 분)를 만나 자신이 마법사라는 말을 듣는다. 호그와트로 가자면서도 해그리드는 해리에게 한 마디를 잊지 않는다. '네가 원할 경우에만'. 환영받는 곳이라곤 할 수 없었던 이모네를 떠날 수 있다는 말에 해리는 해그리드의 손을 잡고 호그와트로 향한다. 그리고 호그와트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의 상황을 만나고 각 상황은 해리의 성품을 보여주는 동시에 더 많은 모험의 세계로 관객을 안내한다.



호그와트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한 해리가 이후 해리에게 가장 중요한 선택은 기숙사다. 기숙사를 분류하는 마법의 모자가 있긴 하지만 전체 시리즈를 이미 모두 접한 관객은 사실 기숙사를 선택한 건 모자가 아니라 해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자는 슬리데린이 해리를 위대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해리는 슬리데린은 안된다고 모자에게 말을 걸고, 모자는 그렇다면 그리핀도르로 가라고 해리를 안내한다. 물론 마법 세계나 호그와트에 대해 일말의 지식도 없었던 해리가 슬리데린은 싫다는 선택을 한 것은 나쁜 마법사들이 슬리데린으로 간다는 론(루퍼트 그린트 분)의 이야기라는 편향된 정보에 의한 결과다. 역시나 시리즈 전체를 모두 아는 이라면 슬리데린에서도 선한 마법사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를 읽은 사람들도 읍읍). 기차에서 말포이(톰 펠튼 분)보다 위즐리 가족을 먼저 만난 해리에게 그리핀도르란 곧 위즐리 가족이고 슬리데린이란 곧 말포이와 다름없다. 차가운 인상으로 론에게 못되게 구는 말포이는 확실히 좋은 인상을 주는 마법사는 아니다. 반면 9와 3/4번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기찻간에서 마법 세계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론을 보면 위즐리 가족은 좋은 마법사들처럼 보인다. 해리는 이런저런 정보(아마도 자신의 부모님도 그리핀도르였다는 정보까지)를 조합해 그리핀도르를 선택하지만 과연 해리의 선택은 편향성 없는 순수한 선택의 결과였을까?


해리 포터 시리즈는 그리핀도르 기숙사 위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주인공인 해리가 그리핀도르를 선택한 것은 선한 선택의 결과라 오인하기 쉽다. 하지만 <신비한 동물 사전> 시리즈가 공개되면서 후플푸프 기숙사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진 지금 선한 이들이 가는 곳은 오히려 후플푸프처럼 보인다. (마지막 배틀에서 영광을 위해 싸웠다는 그리핀도르, 손익을 위해 싸웠다는 래번클로, 양심에 찔려 싸웠다는 슬리데린과는 다르게 후플푸프는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싸웠다고 한다) 심지어 시리즈 후반쯤 공개되는 스네이프 교수(알란 릭맨 분)의 기억에서 해리의 아버지 제임스 포터는 스네이프를 괴롭혔던 학교 폭력 가해자다. 볼드모트와의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부모님의 모습만을 알고 있었던 해리는 이 일로 크게 충격을 받고 자신이 알던 것들이 다 진실은 아닐 것임을 짐작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리핀도르는 해리를 비롯한 삼총사 덕분에 이미지메이킹에 성공한 편이고 아직까지도 해리포터 팬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높은 기숙사로 꼽힌다. 여하튼 그리핀도르라고 해서 모두 선한 이들이 모여 있는 것은 아니며 해리가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그리핀도르는 적어도 첫 편인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가 내린 선한 선택의 결과인 것처럼 비춰지지만 그리핀도르도 해리의 선택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



해리로 대변되는 마법사, 혹은 우리 인간들이 내리는 선택은 편향된 정보의 결과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말포이조차도 슬리데린 집안에서 나고 자라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머글 태생인 헤르미온느에게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학교 폭력 가해자인 제임스 포터의 아들로 태어난 해리가 상대적으로 올곧은 성품을 지니게 된 것은 자신을 차별하는 이모네서 나고 자라 소수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될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덤블도어의 빅픽쳐). 인간이 내리는 선택의 결과는 유전과 환경의 틀을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마법사의 돌> 중반에 등장하는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는 해리와 론과 좋은 친구가 된 헤르미온느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이들에게 금지된 서가에 가볼 것을 권유하는 장면이다. 학교 규칙을 지키는 것을 중시하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총명한 헤르미온느는 니콜라스 플라멜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자 해리와 론에게 금지된 서가에서 찾아보도록 종용하는데 이 때 론은 "우리가 물들였나봐"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는 똑똑한 헤르미온느도 친구 집단이라는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을 암시하는 장면인 셈이다.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밤중에 기숙사를 나와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어기고 마법사의 돌을 찾으러 가게 된다.


다시 해리의 결정으로 돌아와서, 그리핀도르를 선택한 해리의 결정은 편향된 정보의 결과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앞서 우리는 말포이도 해리에게 제안을 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차에서 만난 론과 친해진 해리는 기숙사 배정을 받기 전 계단에서 말포이를 만난다. 말포이는 해리가 '그 유명한' 해리 포터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과 친구가 되자며 손을 내민다. 하지만 해리의 대답은 의외로 강경하다. '그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그리핀도르를 선택한 해리는 사실 말포이로 대변되는 슬리데린 대신 론으로 대변되는 그리핀도르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차에서 말포이보다 위즐리 가족을 먼저 만났기에 이조차도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받은 선택이라 볼 수 있지만 앉을 자리를 찾아 헤매던 론이 들어와 앉아도 되냐고 묻자 이를 받아들이는 선택을 내린 것 또한 해리다. 해리는 자신을 차별하는 이모네서 자라면서 자신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흡수하는 대신 정반대의 길을 걷기로 선택했고 그 결과 제임스 포터보다 훌륭한 성품을 지닌 이로 성장했다. 규칙보다도 친구에 대한 의리나 정의를 더 중시하는 해리의 모습은 퀴디치 수업에서 말포이가 네빌의 리멤브럴을 빼앗고 날아가자 후치 부인의 말을 어기고 날아가 리멤브럴을 되찾아 오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친구도 거의 없고 학우들 사이에서도 찌질한 취급을 받는 네빌을 위해서도 해리는 규칙을 어기는 위험을 무릅쓰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수업 시간 잘난척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지 않았던 헤르미온느가 우느라 화장실에 트롤과 함께 갇혔을 때도 해리는 론을 붙잡아 화장실로 향한다. 어쩌면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아니라 말포이였을지라도 구하러 달려갔을 것이다. 때로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해리의 모습은 야망을 중시하는 슬리데린보다도 용기를 중시하는 그리핀도르와 훨씬 잘 어울린다. 시리즈가 진행되며 해리는 마법의 모자가 자신을 슬리데린에서도 잘 할 것이라는 말을 한 것을 잊지 못하고 자신에게 내재된 성품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이 때 덤블도어 교수는 그리핀도르를 선택한 것은 너라며 의구심을 잠재워 준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수많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쩌면 마법의 모자는 해리를 그리핀도르로 보내기로 해놓고 해리를 떠본 것은 아닐까. 해리에게 스스로 선택할 용기가 있는지를 마지막으로 시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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