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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Dec 13. 2021

타인의 감정을 내려다보지 마라

감정의 조롱이 불러오는 비극에 관하여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쓰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사회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보다 감정 조절이라는 명목 하에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연예인들이 감정을 과하게 표출하는 모습은 종종 밈화되어 몇년간 조롱거리로 전락하기 일쑤이며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도리어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모습을 드러내는 셀럽들은 의연하다는 말로 포장되어 우상화되곤 한다. 스포츠 경기가 거의 유일하게 예외적인데 승리 후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에 관해서는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패배 후 의연하게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 또한 대중의 찬사를 받곤 한다. 하지만 리액션을 업의 일부로 삼는 연예업계에서 감정을 전혀 표출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연예업은 자신의 사건에 대해서는 침착하게, 타인의 사건에 대해서는 다소 과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은 타인의 사건에 대해서는 무덤덤할지언정 자신의 사건은 결코 무덤덤할 수 없는 법이다. 실업률이 하늘을 치솟아도 신문기사를 읽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다시 업무로 돌아가는 이들도 막상 자신이 해고당하면 결코 침착할 수 없다. 나의 감정은 소중하지만 타인의 감정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는 결국 이로 인해 무너질지도 모른다.


호화로운 캐스팅으로 이목을 끈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은 미디어 훈련을 받지 않아 침착하지 못하고 결국 감정을 폭발시켜 사회의 조롱거리가 된 과학자들로 서사를 시작한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분)와 교수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혜성이 지구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학계와 백악관에 알리고자 한다.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만 같은 이 사안은 정치적인 이유로 우선순위가 밀리고, 케이트와 랜들은 언론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전형적인 과학자인 이들은 짧고 굵게 사안의 중대성을 브리핑하거나 대통령인 제이니 올린(메릴 스트립 분)을 적당히 구슬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지구는커녕 우주로 나선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는 데도 대통령이며 온갖 국가와 기업의 수장들을 구슬리는 데 도가 튼 이들이 총동원되어 결국 식물학자 귀환에 성공했던 <마션>과는 달리 <돈 룩 업>에는 수많은 정치적인 요소가 과학자들을 방해한다.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소식조차 재치있게 진행한다며 웃어넘기는 브리(케이트 블란쳇 분)를 비롯한 MC들을 본 케이트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어떤 이야기들은 재치있게 이약기할 수 있지만 어떤 이야기는 그럴 수 없다며 욕설을 섞어 강하게 진실을 경고한 케이트는 인터넷의 밈이 되어 대학원생 자리조차 잃고 마트의 직원으로 추락한다.



케이트의 분노한 모습을 비웃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침착해 보이는 민디 교수를 가장 섹시한 과학자라며 추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민디 교수를 셀럽으로 취급할 뿐 그가 하는 경고의 내용은 결코 귀담아 듣지 않는다. 데일리 립 쇼는 케이트와 랜들을 가장 뒷자리로 배치하고 바로 앞에 라일리 비나(아리아나 그란데 분)와 DJ 첼로(키드 커디 분)의 결별 및 재회 인터뷰를 배치한다. 그런데 대중들은 라일리와 DJ 첼로가 재결합하며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에는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대중에게 있어 주로 예술 영역을 다루는 셀럽들은 사생활과 감정을 파는 이들이며 대중은 이들의 삶에 이입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름조차 몰랐던 과학자들은 대중에게 엔터테이닝의 대상이 아니며 지루한 정보 지식의 전달자에 불과하다. 대중들은 어려운 과학 지식보다 자극적인 셀럽의 연애사에 더 열광하기에 방송사의 진행자들은 과학자들의 이야기조차 우스워 보이도록 진행하는 재앙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브리는 랜들을 전문가가 아닌 성애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눈앞에 닥친 현실 대신 랜들과의 불륜이라는 자극을 선택하는데 대중을 선동하는 미디어의 진행자조차 그 대중이 되어버렸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지구 멸망이라는 현실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으로 방송출연 금지 조치를 당하고 조롱의 대상이 된 케이트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중얼거리며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혜성이 지구에 불시착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케이트는 마트에서 물건을 계산하면서도 한결 침착해진 모습이다. 그리고 케이트를 알아보는 율(티모시 샬라메 분) 패거리를 만나고서도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초연한 모습으로 계산조차 하지 않은 그들을 보내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케이트의 모습을 본 율은 놀랍게도 케이트를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케이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그리고 케이트와 율이 단둘이서 옥상에 올라가 시간을 보낼 때 마침내 사람들은 혜성의 증거를 목격한다. 사석에서는 욕을 하며 감정적인 모습을 보일지언정 공적인 자리에서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던 랜들은 이제 침착하지 못한다. 랜들의 아내 준에게 불륜의 현장을 들킨 브리는 초연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승자인 척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쓸쓸하게 유리창이 다 깨진 가게에서 와인을 병째 들이키는 건 브리 쪽이다.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을 목격하고 데일리 립 쇼에 케이트 없이 출연한 랜들은 마침내 침착성을 잃고 불안감과 분노를 표출한다. 랜들도 이제 감정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혜성을 보고도 올려다보지 말라(Don't look up)는 올린 대통령의 말에 맹목적인 믿음을 보인다.



한편 영화 전체에서 가장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그야말로 기계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는 배쉬 기업의 대표 피터 이셔웰(마크 라일런스 분)이다. 심지어 혜성이 지구에 들이닥칠 때조차 아무렇지 않은 척 화장실로(?) 향하는 피터는 랜들과 데이터에 대해 논할 때조차 일말의 침착성을 유지한다. 신제품을 발표하는 무대에서도, 혜성의 경로를 틀기 위한 위성을 발사시키는 순간에도 기계같은 모습을 보이는 피터는 화려한 언변술로 사람들을 홀린다. 감정이 배제된 그의 화법은 놀라울 만큼 대중을 현혹시키는 면모가 있는데 혜성의 불시착으로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도 혜성에서 채취할 수 있는 광물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리라는 희박한 가능성에 케이트의 부모님조차도 말려든다. 숫자를 맹신하고 가장 과학적이며 이윤 창출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보이는 피터는 기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을 견디지 못한다. 배쉬 기업의 로고가 박힌 로켓이 혜성에 안착해 파괴하고 광물을 채취하겠다는 계획에 랜들은 수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반박하지만 피터의 반박은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당신에 대해 알고 있다'는 다소 유치하며 논리적이지도 않은 이유에 근거한다. 대중은 지구의 안위를 걱정하며 감정을 드러낸 두 과학자는 불신하지만 이윤 창출에 목숨을 걸고 냉정하게 발언하는 기업인에게는 신뢰감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케이트와 랜들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은 헐리웃 연예인을 기용해 하늘을 올려다보라는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라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라는, 사실은 우리 정치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끄라는 대놓고 이중적인 발언으로 선동하던 올린 일가는 선명하게 다가오는 혜성의 모습으로 드디어 대중의 신뢰를 잃는다. 이미 때는 늦었지만 케이트와 랜들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그럼에도 피터의 계획이(라도) 성공하길 바라며 지구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준비한다. 자신들과 감정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들과 모여앉은 이들은 이제 과학적이며 수학적인 계산은 내려놓고 서로를 포옹하며 용서한다. 한편 냉정한 피터를 믿고 피터의 계획에 동참한 직원들은 기계와 같은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로켓의 발사 결과를 보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 로켓이 발사되고 혜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누구보다도 감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유일하게 침착한 척 하며 어머니인 올린 대통령이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제이슨(조나 힐 분)은 최후의 1인이 되어 그 누구와도 감정적인 교류를 나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타인의 감정을 불신하고 조롱했던 대중은 그 감정을 고스란히 돌려받으며 심판받은 셈이다.



결국 영화의 말미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이들이 아닐까.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을 이상향으로 바라보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감정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정치인들과 연예계의 모순을 꼬집는 <돈 룩 업>은 때로는 타인의 감정에 귀기울이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학계의 전문가보다 정치인과 연예인의 발언에 더욱 귀기울이는 대중들의 모습 또한 신랄하게 비판하는 <돈 룩 업>은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묘한 발언을 한 셈이 됐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보았듯이 전문가들조차 정치에 휩쓸려 행동하는 모습은 대중이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며, 이 모든 역할을 연기한 것이 전원 헐리웃의 셀러브리티라는 점은 영화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결국 아담 맥케이 감독은 타인을 비방하는 것만이 목적이며 진실 그 자체에서는 멀어지게 만드는 밈 문화를 그저 꼬집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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