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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an 31. 2022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거부되는 사회의 비극

이해와 몰이해를 넘나드는 언어가 가진 묘한 속성에 대한 이야기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비극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해 1957년 초연된 뮤지컬을 영화화한 1961년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비극 로맨스의 시초격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탕하다 보니 서사에서 쉰 냄새가 나는 건 일견 필연적이다. 다만 상류층 가문 출신 자제들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하류층 출신 백인 토니(안셀 엘고트 분)와 푸에르토리코계 이민자 출신 마리아(레이첼 지글러 분)로 대체되면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데에는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1961년에서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미국 내 인종 갈등과 이민자를 향한 반감은 결코 누그러지지 않았고 지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이민자를 막는 물리적인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불법 체류자가 늘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주장과 실제 이민자 출신의 범죄율은 평균보다 낮다는 주장이 대립하며 이민자 이슈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과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다분히 현대적인 영화로 재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니와 마리아의 로맨스는 지나칠 정도로 낡아(만난 지 하루만에 결혼식..)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데 반해 관객들 사이에서는 다소 낮은 평점으로 평론가-관객의 대립 구도가 서기도 한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초반에는 일부러 스페인어를 번역하지 않았다는 자막이 나타난다. 영어라면야 이제는 외래어에도 많이 자리잡기도 했고 공교육의 교육 과정에 당당히 자리잡았기에 틀린 자막마저 잡아내는 관객이 있는 반면 스페인어는 아직까지 많은 관객에게 생소한 언어다. 따라서 미국 외부의 관객(스페인어를 알지 못하는)에게 번역되지 않는 스페인어는 관객의 시선을 묘하게 백인 하류층 소년들이 이룬 집단인 제트파로 옮겨놓는다. 기실 미국 외부의 관객은 정당한 미국인으로 인정받는 제트파보다는 샤크파에 속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는 샤크파에 동조할 법하지만 자막이 없는 스페인어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의 혼란은 제트파의 그것과 동일해진다. 외려 마리아의 스페인어를 눈치로 알아듣고 맞춰주는 토니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스페인어는 관객에게 혼란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관객이 제트파보다 샤크파에 동조하기 쉬운 이유는 제트파가 가진 언어권력이 많은 관객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제트파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언어인 영어가 모국어다. 샤크파 또한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들이 이민자 출신임을 알려주는 억양은 제트파가 지닌 언어권력에서 이들을 멀리 떨어트려 놓는다.



따지고 보면 억양에서 티가 나서 그렇지 샤크파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바이링구얼이 대부분인 집단이다. 미국에 정이 떨어졌을 때 샤크파는 푸에르토리코로 돌아가는 선택지가 언제나 존재한다. 조금 일찍 개봉한 <인 더 하이츠>에서 주인공 우스나비는 고향으로 돌아가길 꿈꾸며 돈을 모으는 청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제트파는 뉴욕의 서쪽 외곽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그렇기에 이들은 샤크파를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하고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구역을 놓고 싸운다고는 하지만 치기어린 청년들이 벌이는 국소전은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승자의 자존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이다. 몬태규 가문과 캐퓰릿 가문의 반목에는 이유가 없었으며 영향력에 대한 자존심 대결에 불과했던 반면 제트파와 샤크파의 반목은 절망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생존과 직결된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아닌 구역 싸움으로 누군가는 목숨을 잃기도 하고 누군가는 경찰에 연행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자존심을 건 전쟁에서 암호로 기능할 수 있는 무서운 수단인 스페인어는 제트파에게는 위협적인 도구가 되는 셈이다.


토니와 마리아의 로맨스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낡기는 했지만 이들의 간이 결혼식에서 마리아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점은 서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이전까지 영어를 주로 사용하던 토니와 마리아는 결혼에 이르러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며 대등한 위치가 된다. 스페인어를 몰랐던 토니는 이민자 출신인 발렌티나(리타 모리노 분)의 가게에서 일하면서 마리아와 대화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운다. 스페인어를 거부하는 제트파 출신인 토니가 맞이하는 결말은 스페인어를 받아들였다는 데서 연유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따르는 신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토니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세상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제트파 내에서 유일하게 새로운 세상을 탐색한 토니는 그 자리에서 제트파를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제트파에도 속하길 원하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 했던 토니는 결국 그 사잇길에서 비극을 마주한다. 반면 2021년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등장한 오리지널 캐릭터인 발렌티나가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백인과 결혼하며 백인 사회에 포섭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어를 주 언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발렌티나는 서사 내내 스페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 분)가 스페인어로 자신을 부를 때조차 화답하지 않는다.



제트파의 스페인어에 대한 경멸과 두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제트파와 샤크파의 대결 이후 발렌티나의 가게에서 모여 아니타의 스페인어를 듣는 순간이다. 자신의 연인을 잃고도 마리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용감하게 홀로 제트파 무리로 향한 아니타는 발렌티나를 호명하고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아니타의 입에서 스페인어가 나온 순간 제트파는 스페인어를 금지하며 아니타를 공격한다. 백인 남성의 가족으로 편입된 발렌티나가 나오기 전까지 제트파는 제트파 내의 여성들마저 내보내고 아니타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아니타에 대한 공격은 단순히 샤크파에 대한 반감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한 경멸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라고는 해도 직업도 없이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제트파와는 달리 샤크파는 엄연한 일자리를 갖고 정착한 이들이다. 제트파는 푸에르토리코계 이민자를 대표하는 샤크파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고 밀어낼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반감은 결국 언어에 대한 권력 차이에서 비롯되며, 국가의 표준어, 심지어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자신들을 감히 타 언어를 모국어로 삼는 이민자 출신들에게 내줄 수 없다는 우월의식의 발로다.


스크린과 ott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언어인 영어는 그것을 모국어로 하는 이들에게 본인들은 깨닫지 못하는 특권을 주었다. 봉준호 감독의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수상소감은 뒤집어 말하면 영어권 시민들이 비영어권 시민들에게는 당연했던 자막을 무의식중에 거부했음을 말해준다. 비영어권 관객에게는 영화에 있어 필수나 마찬가지로 딸려왔던 자막은 영어권 관객에게는 불편함에 해당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가졌던 언어 우월권을 침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낡은 서사를 기반으로나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2021년에 도달했을 때 영화는 아직도 변하지 않은, 영어권 시민들의 언어 우월의식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결국 이민자로 이루어진 미국 사회가 화합의 길로 나아가려면 이민자 출신들을 부드럽게 끌어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민자들의 언어를 거부하고 금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억양으로 차별하고 반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두 문화 사이를 잇는 가교가 될 수 있었던 토니, 미국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리프와 베르나르도, 푸에르토리코계 이민자 집단의 엘리트로 불렸던 치노가 맞이한 결말은 아직까지 이해의 영역을 넓히려 하지 않았던 미국 사회가 어떻게 사회의 구성원을 잃었는지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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