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목격이 거부당하는 이유
왜 해리의 증언은 신뢰받지 못하는가
해리 포터 시리즈는 긴 만큼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시리즈 초기에는 해리의 모험담을 다루다가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해리의 성장을 다루고,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지나서 해리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에 가까워진다. 웬만한 성인보다도 많은 일을 겪어낸 해리지만 신체적인 나이로 인해 불사조 기사단에 정식으로 가입하지 못하는 해리는 어른들의 세계가 상식적으로 돌아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볼드모트(랄프 파인즈 분)가 돌아왔고 세드릭 디고리(로버트 패틴슨 분)가 볼드모트에게 살해당했다고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 분)는 증언하지만 마법부는 해리의 증언을 거짓말 취급한다. 한때 살아남은 아이였고 볼드모트의 부활을 두 번이나 저지한 해리는 마법부의 불신으로 한순간에 사기꾼이 된다. 해리를 믿어주는 건 얼마 되지도 않는 불사조 기사단의 일원들과 위즐리 가문의 남매들을 비롯한 일부 친구들 뿐이다. 해리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세드릭 디고리의 시신이라는 증거마저 남긴 볼드모트의 부활은 왜 정치적인 이유로 사장되어야 하는가. 이제 성장을 넘어 어른들의 세계에서 정치적인 이슈가 어떻게 이용되고 왜곡되는지를 다루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하 <불사조 기사단>)은 특히 '진실의 목격'에 주목한다.
<불사조 기사단>에서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생명체는 디멘터와 세스트랄이다. 디멘터는 마법사에게는 보이지만 머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머글인 두들리(해리 멜링 분)은 디멘터의 존재를 느끼지만 목격하지 못하고 마법사인 해리만이 디멘터를 목격하고 패트로누스 마법으로 디멘터를 쫓아낸다. 당연한 얘기지만 더즐리 가족은 사실은 해리가 두들리를 구해줬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해리(혹은 디멘터)를 피해 어딘가로 달아난다. 마법사인 해리의 눈에만 보이는 목격이 머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점은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같은 마법사들도 해리의 목격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패트로누스 마법 사용으로 호그와트 퇴학 통지를 받은 해리는 덤블도어 교수(마이클 갬본 분)의 청문회 요청으로 퇴학 취소의 기회를 잡는다. 청문회장 내에서 디멘터를 목격했다는 해리의 증언은 무쓸모에 가깝다. 청문회에 참석한 이들이 해리의 증언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해리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마법부의 통제를 받는 디멘터가 아즈카반이 아닌 머글의 거주지에 나타났다는 것은 마법부가 디멘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무능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리가 아닌 다른 성인 마법사가 등장해 디멘터에 대한 증언을 하고서야 해리의 퇴학처분은 취소되지만 마법부 차관인 돌로레스 엄브릿지(이멜다 스턴튼 분)를 비롯한 일부 마법사들은 여전히 해리의 목격을 불신한다.
모든 마법사가 볼 수 있는 디멘터와는 달리 세스트랄은 마법사 중에서도 일부에게만 보인다. 호그와트의 마차를 끄는 세스트랄은 죽음을 목격한 마법사만이 볼 수 있는 생명체다. 세스트랄을 처음으로 본 해리는 다른 친구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다가 자신 이외에 세스트랄을 볼 수 있는 마법사를 만난다.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하고 세스트랄을 볼 수 있게 된 루나(이반나 린치 분)는 공교롭게도 괴짜 취급을 받는 마법사다. 똑똑한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분)조차도 마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해리에 대한 친구들의 불신은 깊어져만 간다. 디멘터와 세스트랄은 보이는 진실과 보이지 않는 진실을 대변하는 훌륭한 매개체인데 특히 세스트랄의 경우 해리를 믿지 않던 친구들이 결국에는 세스트랄을 타고 런던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보이지 않는 진실을 해리의 친구들이 받아들였음을 인정하는 상징물이 된다. 정치적인 이슈에 얽힐 일이 없어 상대적으로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의 폭이 넓은 해리의 친구들은 해리에게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배우고 물리적인 무언가를 손에 넣으면서부터 해리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가운데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패트로누스를 불러내는 마법이 고급에 속하는 이유는 패트로누스 자체가 신뢰를 상징하는 마법이며 타인의 신뢰를 얻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편 자신이 본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현실을 경험한 해리는 자신이 목격한(혹은 했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믿기 시작한다. 해리가 아직 무엇을 믿고 믿지 않아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은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헷갈리게 했던 스네이프 교수(알란 릭맨 분)다. 해리의 마음을 볼드모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오클러먼시를 가르치는 스네이프 교수는 해리에게 있어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스네이프 교수의 기억으로부터 해리는 자신이 알던, 혹은 안다고 생각했던 부모님과 부모님의 친구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실부모하고 부모님의 성품을 직접 알 기회가 없었던 해리는 언제나 부모님에게 호의적이었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에 막연히 제임스 포터와 릴리 제임스가 좋은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막연하게 짐작해왔다. 부모님과 더불어 유일한 가족으로 여긴 대부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먼 분)은 불사조 기사단 내에서 유일하게 해리를 성인으로 대접해주는 마법사였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기억 속에서 제임스와 시리우스는 스네이프를 괴롭혔던 학교 폭력 가해자에 불과하다. 스네이프의 기억을 통해 제임스 일당을 목격한 해리는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깨닫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만은 굳건하다.
목격에 대한 또 다른 흥미로운 비유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로 부임한 차관 돌로레스 엄브릿지다. 호그와트에서 교수직을 이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엄브릿지 교수는 호그와트 내부를 깊이 들여다보기 이전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보고 호그와트를 판단하려 든다. 사실 엄브릿지의 판단은 이미 청문회에 참석해서 해리의 퇴학에 찬성한 모습에서 볼 수 있듯 편견이 개입된 판단이다. 호그와트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엄브릿지의 시각에는 문제되는 모습만이 목격된다. 외부의 시각에서 정녕 트릴로니 교수(엠마 톰슨 분)의 수업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덤블도어 교수에게는 트릴로니 교수를 채용한 이유가 별도로 있었고 이는 특히나 볼드모트의 부활을 믿지 않는 마법부에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호그와트는 기본적으로 교육 기관이기 때문에 엄브릿지의 시각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긴 하다). 이외에도 신비한 동물들에 대한 이해 없이 해그리드(로비 콜트레인 분)에게 몇가지 질문만을 하고서 금지된 숲을 통제한 엄브릿지는 결국 분노한 켄타우로스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스네이프 교수에 대한 불신으로 오클러먼시 수업을 마치지 못해 볼드모트가 의도한 대로 미스터리 부서에 당도해 자신에 대한 예언을 보게 된 해리는 결국 잘못된 믿음에 대한 댓가를 치른다. 한편 해리를 자신으로부터 유리시켜 볼드모트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하려 했던 덤블도어 교수 또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기도 한다. 목격에 대한 해리와 덤블도어의 견해는 조금씩 잘못된 측면이 있었다. 해리는 머리가 아닌 눈으로 본 것은 믿었지만 목격했다고 생각한 것까지 믿어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덤블도어는 볼드모트의 물리적인 시야에서 해리를 제거하는 것이 볼드모트의 관심에서도 제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한편 이들의 실수로 인해 결국 마법부의 오러들은 볼드모트의 부활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고 이는 마법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다. 현실이었다면 아마 볼드모트를 목격한 오러들은 돈을 받고 입을 다물거나 양심발언을 하고 어딘가로 좌천되었겠지만 꿈과 희망을 담보하는 판타지에서는 정의가 실현된다. 비록 해리는 소중한 이를 잃었지만 해리의 발언은 호그와트에서, 그리고 마법사 사회에서 신뢰를 되찾는다.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트리위저드 시합 후 종업식에서 덤블도어 교장의 연설은 시리즈를 꿰뚫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덤블도어 교수는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이 거짓보다 낫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하며 세드릭 디고리가 볼드모트에 의해 살해되었고 볼드모트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거리낌없이 알려준다. 물론 그럼에도 덤블도어 교수 또한 많은 비밀을 간직한 마법사였지만 어린 아이라고 해서 진실 대신 거짓을 알려주어서는 안된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지닌 현명한 마법사이기도 했다. 친구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마법 이외에 든든한 배경을 얻은 해리는 이제 세스트랄을 보고도 기겁하지 않고 세상에는 보이는 것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한 단계 성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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