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강의 중에 교수님께서 도스토예프스키의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말씀하셨다. 그땐 그냥 그렇구나 싶었었다. 아니! 근데, 대심문관을 읽어보니 그의 통찰력이 진짜로대단하다는 느낌을 팍 받았다. 심지어 도스토예프스키의 한 작품을 제대로 다 읽은 것도 아니고 대.심.문.관 부분만 읽었음에도! 내가 느낀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수의 이상과 속세화된 교회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심문관의 캐릭터 또한 인상 깊었다. 특히 그의 논리적인 말솜씨와 사상이 굉장히 신선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이 대심문관이 그저 자신의 고집에 갇힌 꼰대라고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나에겐 굉장히 지적이고, 섹시하고, 뚝심 있는 노인으로 보였다. 그는 예수라는 엄청난 인물 앞에서 위압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말한다. '나였다면 저렇게 당당하게 나의 소신을 펼칠 수 있었을까..?' 그가 굉장히 멋있게 느껴졌다. 심지어 요목조목 따져가며 논리적으로 말하는데, 이게 또 꽤 그럴싸하니깐 지적으로 보였다. 특히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감정이 격해지고 웅장해지게 말하는데……. 와! 멋있어서 소름 돋았다.
그만큼 도스토옙스키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거겠지?
자유
소설 속에서 ‘자유’라는 말이 굉장히 자주 나온다. 그런데 이 자유의 정의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보고 싶다.
소설 속에서 예수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자유가 아닌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다.
자유의지와 자유는 다르다고 조심스레 생각한다. 일단 예수가 말한 최종 목표는 사후에 천국에 가서 행복하게 영생을 누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목표를 선(先) 제시한 채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다. 혹여나 누군가가 이 자유의지를 ‘예수를 믿지 않는 선택’으로 사용하면, 결국엔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답을 정한 채 자유롭게 선택하라는 것은 ‘시험’한다는 말이다. 자유의지는 이런 ‘시험’을 위한 도구가 될 뿐인 것이다.
자유의 정의는‘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미 우리가 ‘시험’에 들어갔다는 것은 구속력이 있다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을 정말 100%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인간상
대심문관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두 종류의 인간상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예수가 준 자유의지를 소중히 여기며 메뚜기와 풀뿌리로 연명하는 인간과 자유의지를 제한하는 대신에 물질과 기적과 권세를 받는 인간.
이걸 보면서 사회주의가 생각났다. 첫 번째 인간은 국가의 명에 반하여 자유를 찾아 싸우는 자(운동가), 두 번째 인간은 국가의 명에 따르며 국가가 제공해주는 물질, 기적, 권세를 얻는 자. 사실상 두 번째가 굉장히 살기 편하다고 생각한다. 크게 어긋나지 않고, 말만 잘 들으면 모든 걸 제공해주니깐.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뿐만 아니라 대심문관처럼 공정하고 이상적인 리더가 있다면, 인적·물적 재화의 분배가 이상적으로 이루어질 텐데, 현실에게 이런 이상적인 리더의 존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설 속 무신론자인 이반은 신의 권위를 부정하는 두 번째 인간상에 마음이 있는 듯 보인다. 현실의 도스토옙스키는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러시아인이자 운동권 활동을 했기에 두 번째 인간상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질 것 같다. 그리고 현대 자유민주주의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겐 두 번째 인간상이 그렇게 좋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또한 100% 응원하진 않기에 첫 번째 인간상도 썩 마음에 들지만은 않는다. 참 까탈스러운 것 같다. 이상 속의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장점들만 모아놓은 사회가 실현된다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공산주의는 너무 이상일뿐 인더러 이 둘은 물과 기름 같은 느낌이라 섞이는 게 상상조차 가지도 않는다. 참 어렵다.
여기까지 내가 너무 과하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공산주의와 연결 지어 생각해보니 도스토옙스키의 필력이 굉장하다는 생각이 또다시 맴돈다.
우리는 너의 위업을 수정하여 기적과 신비와 권위 위에 그것을 세워놓았다. 그러자 인간들은 그들을 다시금 양 떼처럼 이끌어준다고, 그들에게 그토록 많은 고통을 안겨준 그토록 무서운 선물을 자신들의 가슴에서 마침내 거두어주었다고 기뻐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易 김희숙. 문학동네. p.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