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것을 보면, 괜히 한없이 우울해진다. 특히, 기분이 안 좋은 날에 슬픈 발라드를 들으면 어느새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반대로 신나는 노래를 듣거나 코미디 등을 보면 또 기분이 긍정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의 감정은 갈대처럼 주변 분위기나 환경에 휘둘리는 것 같다.
어떤 작품을 보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어둡고 슬프며, 또 인간의 불행하고 추악한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도 꽤 비슷하다. 그리스 비극은 삶의 불행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인들은 이 비극을 보며, 삶을 우울하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참 아이러니하다. 안 좋은 걸 보는데, 어떻게 문화는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일단, 그리스 비극은 인간 삶의 본질을 다룬다. 인간의 본질 속에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마음속에 저마다의 욕망을 품고 살며, 이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사람들마다 그 정도와 조절하는 능력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또한, 욕망은 'Pharmakon'이다. 적당한 욕망은 우리가 어떤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하는 약(동기)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과해버리면 스스로를 몰락시켜버리는 독이 된다. 그리스 비극은 욕망을 약처럼 쓸 수 있게 도와준다. 인간이 가진 욕망과 같은 감정들이 어떻게 삶을 지배하는지 연극을 통해 생생히 재현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각자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와 '우리의 욕망과 같은 감정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준다. 재현된 캐릭터들은 삶의 비극 앞에서 몰락하지만, 관객들은 이 비극을 보면서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살아가는 방식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리스인들은 이걸 얻음으로써 그들의 문화를 번창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니체의 말을 인용하여, 이를 나타내 보고 싶다.
“비극의 효과는 디오니소스적 지혜를 가지는 것이다. 즉, 소극적 위안(카타르시스)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자각하고 고통과 기쁨이 뗄 수 없다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니체는 비극을 디오니소스적 충동을 아폴론적 지혜로 제어하여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라 했다. 여기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본능에 충실한 도취, 그리고 아폴론적인 것은 이상, 형상, 질서 등으로 해석된다. 어떠한 예술작품을 보고 디오니소스적 충동으로만 느낀다면 우리는 그저 카타르시스만 느낄 뿐이다. 하지만 그리스 비극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아폴론적 지혜를 준다. 우리가 느낀 이 카타르시스를 이상과 형상이라는 과정을 거쳐, 삶을 탐구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지혜를 얻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본질적으로 불행하다.” 우리의 삶이 본질적으로 불행하기에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더 나아가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비극은 음악과 신화의 종합이다. 실레노스는 근본적으로 삶을 고통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이걸 승화시켜서 비극을 만들었다. 그들이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던 삶의 잔혹함과 무상함 그리고 어두움을 승화시키기 위한 산물로써, 음악에 신화를 넣었다. 신화에 음악을 넣었을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음악에 신화를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리스 비극의 변천사를 보면, 점차 코러스의 비중이 줄어들고 대사의 비중이 늘어난다. 이렇게 대사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대사는 점차 감정을 논하는 게 아니라 사건의 논리를 논하게 된다. 에우리피데스에서 이 변화가 크게 나타나면서 이후의 그리스 비극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그리스의 문화도 쇠퇴했다고 생각한다- 이 음악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며, 삶의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모순성을 긍정하고 그것의 힘을 찬양하게 된다.
음악은 비극에서만 중요시되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부터 음악과 함께 해왔다고 생각한다. 가장 순수한 음악인 인간의 목소리, 그러다 이를 도와주는 악기 소리가 어우러졌다.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는 이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음악은 예술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목소리와 악기뿐만 아니라 디지털 사운드를 접목시키기도 한다. <올드보이>에서도 음악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올드보이>를 대표하는 OST인 ‘The last waltz’. 이 음악을 들으면, 눈밭에서 오대수가 자신의 딸을 안으며 슬픈 웃음을 짓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장면이 주려고 하는 감정을 음악 통해 더 극대화되어 느껴진다.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는 것은 음악을 굉장히 잘 썼고, 그만큼 음악이 영화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는 것 같다. 과거 그리스 비극에서 어떤 음악을 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코러스의 역할이 <올드보이>의 ‘The last waltz’와 같이 아주 큰 역할을 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비극에 어떤 음악을 썼는지 보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