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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blie Mar 17. 2021

뮤지컬 마틸다

우리 뮤지컬 여행의 첫 시작,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작

2019년 3월 17일. Norbiton station에서 연일 부는 강풍으로 인해 속도제한 규정(Speed restrict)에 걸려 연착과 취소를 연발하고 있는 기차를 타고가 우리의 첫 뮤지컬 마틸다를 보다!!


 부실하다 부실해... 강풍만 불어도 기차가 연착하고 취소되는 영국의 교통에 대해서는 별도 섹션으로 몇 편에 걸쳐 욕을 한 바가지 늘어놓을 셈이다. 누가 영국을 교통의 모범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최소 30-40년 전 이야기겠지. 한국에서 도로나 교통때문에 더 이상 영국이나 외국을 답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통은 한국이 최강이라 감히 단언한다. 그래서, 국회에서 도로 관리때문에 내가 일하던 기관 방문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도 위와 같이 말해주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돈낭비 하지 말라는 말은 꿀꺽 삼켰지만) 단칼에 거절했었다. 그들이 무얼 얻든 얻지 못하든 그냥 만나두면 나에겐 도움이 되었을까? 정치적 인간이 되는 건 이번 생엔 글렀다.


 노비튼역에는 보통의 세인스버리 마트 크기가 아닌, 이마트24와 같은 규모의 작은 세인스버리가 있다. 2년 하고도 며칠 전, 그 세인스버리 안에 갓 생겼던 무인 코스타 코너에서 나는 커피, 녀석은 핫초코를 들고 노비튼역의 강풍을 이기고 있었다. Fake Fur 코트를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영국의 3월 날씨였다.

마틸다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마침 마틸다 광고가 붙은 버스가 지나갔다. 강풍에 코스타 핫초코를 들고 내 뒤에 숨은 나의 다람쥐.

사우스웨스턴 레일 기차에서 내려 튜브(지하철)로 갈아탄다. 조그만 손이 거침없이 이끄는 튜브를 지나,

마틸다 전용 극장에 도착했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극장 안으로 들어서 봤지만,

 싸구려 표를 산 사람들의 설 자리는 바람이 불지 않는 극장 안에는 없었다. Upper Circle이라고 부르는 가장 싼 좌석 구역은 대부분 밖에서 줄을 서고 밖에서 입장을 하는 것이었다. 일찍 도착한 덕인지 우리는 다행히 안에서 대기하다 들어갈 수 있었다.

Upper Circle 입구와 기다랗게 늘어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드디어 입장이 시작되고 Upper Circle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그동안 공연되었던 유수의 작품 포스터들이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Upper Circle로 올라가는 계단


가는 길에 참새가 입구에서 지키고 있던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다. 우리 부모님 어릴 적에나 있었을 법한 엿장수의 방식으로 간식거리를 팔고 있다. 딱 걸린 나의 주머니는 통행세를 내고 말았다.

나의 주머니를 '픽 포켓'한 간식 스톨(Stall, 가판대), 중간 쉬는 시간에도 통로에서 팔고 있다.

 간식을 파는 스톨 외에도 작은 바 같은 라운지가 있어, 어른들은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음료, 과자,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다. 서양인들이 왁자지껄 그 라운지에서 먹고 마시며 짧은 시간 즐기는 게 낭만적여 보이면서도 같이 어울리기엔 이방인인 우리는 정신이 없을 뿐이다. 몇백 년이 되었을지 모르는 건물에서 열악한 화장실 환경과, 공연 중간에 그냥 앉아 있어도 무릎이 닿아 불편한 좁디좁은 좌석을 통과해서 화장실에 가는 것은 민폐를 넘어 모험에 가까우니 틈이 날 때마다 화장실을 가두는 게 아이를 데리고 하는 관람의 전략이 되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좌석에 앉아 한 숨을 돌려본다.


 공연이 곧 시작할 거라는 설렘보다 더 두근거리는 것이 있었다. Upper circle 가장 싼 좌석을 예매했더니 곧 고꾸라져 무대까지 바로 도착할 것 같은 절벽 기울기에 무서울 지경인 스릴까지 서비스로 받았다. 보면서 다음엔 좀 좋은 자리로 해줄게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재밌게 볼 줄 알았다면 좀 돈을 더 쓸 걸..미안해.. 미안해... 배우들이 개미처럼 보였다. 우리 구역에는 유럽에서 그다지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동유럽 쪽 젊은이들이 관광을 온 듯했다. 그래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연출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무대 구성을 보고 있지 않냐며 우스게 소리를 해본다. 아주 거짓은 아니었다.

좌석에서 일어서서 균형을 살짝 잃으면 바로 무대로 떨어져 배우들과 만나버릴 듯 스릴이 있는 Upper Circle


 동네 극장 말고 규모가 조금 있는 뮤지컬은 처음이라 좋아할지 몰라서 그랬는데 그렇게 좋아할 줄이야. 너무 재밌다며 Running time 2시간 반을 마치고도 여흥이 남아 신나게 역까지 뛰어왔다. 조금도 걷기 싫어하는 녀석인데 말이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엔 학교에 1파운드를 가져가지 못해서 기부하지 못한 Red Nose Day 기부까지 할 수 있어서 개운해했던 녀석. 세기도 벅찬 영국의 기부 Day들은 한번 총정리를 해야 한다.

Red Nose Day 기부를 하고 돌아서는 개선장군, 역까지 내달리게 한 공연의 여흥.
동생이 있으면 이런 것도 못하겠지

훌륭한 결론이구나!! 마하하. 그래, 동생은 네가 원하지 않아서 안 낳은 게 확실하다며, '영국과 바꾼 둘째'라고 자주하던 반농반진의 말에 위로가 되어주었다.

 어린이용 시트는 일찍 가지 않으면 확보할  없을 수도 있다. 시트에 앉아도 여전히   보여서 나중에는 이케아 욕실 스툴을 백팩에 넣어 다녔다. 영국은 어떤 공공시설에서나 입장 전에 여자 핸드백 크기를 넘어가는 가방은 모두 검사를 하는데, 빨간 백팩을 열면 빼꼼 인사를 하던 이케아 욕실 스툴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검사원의 얼굴과 설명 불가의 부끄러운  얼굴. 그 사이에 흐르는 무언의 기류는 짧고도 길었다. '하지만, 괜찮아. 영국 사람들은 배송도   시키고 모든  아무렇게나 부끄럽지 않게  들고 다니니까. 한국에서처럼 이상해보이진 않을  확실하지!'라며 혼자서 많은 근거를 붙여본다.  좌석에   아저씨라도 걸리면,  보여서 들썩거리는 아이때문에 주르륵 연결된 낡은 좌석들이 같이 흔들려서 모두 함께 3D 영화관이 되는  2시간 넘게 걱정하는 것보다 낫다며...

앉은키 작은 어린이를 위한 시트를 들고 내려오는 녀석.



 이날의 관람은, 2년이 지난 오늘까지 마틸다가 아이의 최애 책이 되도록 하였고, 영화도 찾아 몇 차례씩 보고, 나중엔 여름방학 뮤지컬 수업을 듣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Roald Dahl 작가의 마틸다는 영국의 아이들 필독서이자 뮤지컬로도 수차례 상을 타고 한국에서도 공연되기도 한 유명한 작품이다. Roald Dahl의 작품은 영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필독서이며 한국 아이들도 영한문으로 읽는 유명 책이다. 미국에서는 초4-5학년 정도가 읽는 책이고, AR(리딩레벨) 5인 책이다. 뮤지컬이 좋았던 건, 뮤지컬을 보고 나자 영화도 찾아보게 되고, 영화를 반복해서 보자 아이는 본인의 영어 실력을 넘는 마틸다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챕터도 읽지 못하고 덮고, 또 다시 한 챕터를 읽고 덮고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에는 마틸다를 몇 회독하게 되었다.

책 마틸다와 보통 영국 가정에서는 저렴하게 시리즈로 일괄 구매하는 Roald Dahl 세트 책.  그리고 Daunt Books에서 구매했던 마틸다 Activity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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