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영국학교 적응기(1)
영국으로 떠나기 전, 아이들의 영국 적응에 대한 검색을 해보면 많은 아이들이 손톱이나 머리를 뜯는 등 적응 앓이를 수개월까지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다 괜찮아 어른이 문제지."라는 말은 일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세상을 덜 알기에 덜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도 있기도 하고, 새싹같이 자라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고 아직 어리기에 유연하고 하니, 어른들처럼 삐그덕 삐그덕 요란하게 적응 앓이를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한편 그것이 스트레스인지 몰라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앓고 증상이 다른 곳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작고 따뜻한 학교이기만을 바란다는 말은 말뿐이었을까, 집 앞에 평판이 좋은 학교에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홈스쿨링 계획서를 내고 아이를 2개월 간 학교에 보내지 않았었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2년 여 전에 새로 생긴 학교에는 자리가 있었는데도 보내지 않고 기다렸던 것이다. 지금은 영국에서 20분 정도 걷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기에 멀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꿀꺽 삼킨다. 그때는 영국 직장의 근무 형태가 얼마큼 유연한 지도 전혀 몰랐고 출퇴근 시간과 아이 픽업 시간을 맞추는 문제도 고민이 되었기에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보내는 것을 고집했었다. 학교를 옮겨야 하는 이유를 정식으로 클레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그 부분을 카운슬 스쿨링팀에 문의하기도 하였었다. 관련 자료 보내주며 그 담당자는 다소(?) 아니 그냥 냉소적으로 '클레임 요건 중 어디에 근거해서 클레임을 할 건지 모르겠지만 잘해봐라.' 식으로 이메일 답장이 왔었다. 읽어보니, 해당 구 내에 모든 학교에 자리가 없을 때 정원을 초과한 인원이지만 받아달라는 요청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 외에는 사유가 되지 않아 보였다. 클레임을 해서 출퇴근 문제와 어린아이 둘을 아내가 혼자 등하교시켜야 하는 어려움을 구구절절 설명해서 전학에 성공했다는, 카센터에서 만났던 어느 점잖은 어르신의 말씀은 정말 옛날이야기였나 보다. 세상은 어디나, 여전히 빈틈이 많은 영국조차도, 부모들에게 첨예한 학교 진학과 관련해서는 제도가 촘촘해지나 보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학교에 잊히지 않도록 이메일을 보내곤 했지만 귀국하는 그날까지 부동의 대기 2번으로 마감하였다. 그 이유는 우리보다 집의 더 가까운 거리에 누가 이사를 오거나, 손아래 형제가 신학년으로 새로 입학하면 대기하고 있던 손위 형제의 대기 순번도 당겨지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게 이루어지는지 정말 알 수 없고, 한 번은 리뉴얼을 할 때 우리 아이를 누락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이메일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국처럼 하나하나 따지는 게 불가능한 게 영국이다. 그저 '에효..'하고 한숨을 크게 한 번 쉬는 수밖에.
아이를 2개월 간 학교를 보내지 않은 것은, 꼭 학교 입맛이 까다로워서만은 아니었다. "애들이 영어가 늘만하면 방학이고 늘만하면 방학인 게 영국 학교야"라며, 길게 3-4년도 아니고 2년 있을 건데 오자마자 학교에 집어넣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지만 말이다. 모든 게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아이의 충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익숙한 친구와 정든 유치원, 한국 동네를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버리고 쌩판 낯선 곳에 뚝 떨어졌다. 언어는 당연하고 아직 동네 거리도 낯설고, 모든 것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위험'이라고 인지하던 예민 7살이었다. ‘낯선 공간에 친숙한 보호자가 없다는 건 안전하지 않아'라는 의식이, 폭발할 것 같던 호기심마저 이겨버려서 문화센터도 못 보냈던 아이였다. 그래서 아이의 부작용을 줄여보고자, 먼저 동네 거리, 마트, 사람들의 소리, 냄새에 먼저 충분히 익숙해질 시간을 주고 싶기도 했다.
나는 더 기다려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석 달의 시간 중 두 달을 흘려보내고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한 달 남았던 남편은 더는 안된다고 생각했던가보다. 자리가 있다는 학교에 보내자고 했다. "알았다. 그러자." 입학을 하기로 하고 찾아갔다. 그 전에도 이 학교에 대한 리포트를 직장 매니저였던 리사가 보내줘서 읽어봤었다. 아직 신설학교였기에 Ofsted 등급을 매긴 평가 리포트는 없었지만, Ofsted에서 조사한 학교 평가는 있었다. 학군이 좋다던 그 지역의 평균보다도 학업 성취도가 좋은 편이었기에 보내보는 걸로 결정을 했다.
시기는, 1년이 봄, 여름, 가을 3학기로 나눠지는데, 봄학기가 끝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아이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가정하에 일주일 정도 다니고 2주간의 방학을 맞이하면 무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일주일의 등교 후, 학교의 영향력은 가히 폭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학이 되고 스타벅스에서 자리를 찾던 중 아이가 갑자기 (엉망진창이지만) 영어 방언이 터졌던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 등록하러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학교의 교감쯤 되는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는 한 3일쯤, 아니면 일주일쯤은 반일만 하고 왔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아직 겨우 한국 나이 7살, 한국 초등학교는 오전이면 수업이 끝나는데, 영어도 되지 않고 학교 입학이라는 것도 해본 적 없는 아이가 아침 8시 40분부터 오후 3시 20분까지 학교에 있는다고 생각하니 내가 다 정신병이 날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아이가 여름 출생이니 1학년이 아닌 리셉션으로 진학하면 안 되겠냐고 재차 물었지만 가차 없었다. 그렇게 아이가 적응을 위해 얻은 시간은 딱 하루였다. 딱 하루만 오전에만 있는 것을 허락했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나까지 가르치는 기새로 "We are adults!"였다. 영국은 생각보다, 그리고 한국보다도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옛날의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은 어른의 판단과 명령을 따라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도 하나의 소우주로 보고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며 아이의 속도에 맞춰 키워왔던 것이 와사삭 부서지는 느낌이었고, '이게 영국인가?' 하는 충격을 받았었다. 선진국에 대한 환상 범벅은, '선진국 영국은 얼마나 아이를 인격체로 다룰까'기대했던 선진국 환상 범벅이 금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영국 생활을 하며 수없이 그 환상에는 금이가다 이윽고 돌아올 즈음에는 적응도 거의 됐겠다 눈에 영국의 티만 보이는 지 ‘이 야만적인 영국놈들’이라고 역정을 내는 일이 잦아졌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결과적으로 그녀가 맞았다, 내가 틀렸고.
We were adults. 어른이 판단하지 아이가 판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