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영국살이를 떠난다면 꼭 해봐야 할 것들, 제4탄
킹스턴에는 구립수영장이 두 곳 있었다. 킹피셔 수영장과 몰든센터 수영장인데 두 곳 모두 일반풀과 키즈풀이 각각 있고 아이들 수영 강습은 키즈풀에서 한다. 킹피셔는 물놀이 시설이 잘되어 있고 파도풀이기도 해서 재미있다는 장점이 있다. 몰든센터는 마지막에 수심이 3M인 구간이 있어서 다이빙 연습이나 생존수영 연습이 가능하다.
David Lloyd나 Nuffield와 같은 사설 스포츠센터에 수영장이 있긴 하지만 3개월, 6개월 1년과 같이 회원제로 등록을 해야만 갈 수 있기도 하고, 두 곳 중 한 군데 다니던 아이가 아토피가 심했는데 구립수영장으로 옮기고 나서 덜해진 걸 보면 사설 수영장이라고 해서 락스를 덜 쓰거나 해수풀이거나 하는 것 같지 않다. 한국에서는 웬만한 수영장이 다 해수풀이고 락스 냄새도 심하지 않은데, 영국의 수영장에 들어서면 30년 전처럼 끼쳐오는 락스 냄새에 깜짝 놀라게 된다. 영국인들은 세균 같은 데는 민감한데 화학적 유해성에 대해서는 무디다는 생각이 든다. 플라스틱 용기에 든 걸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것도 우리나라보다 경계심이 없어 보이고 말이다.
사실, 시설은 말도 하고 싶지가 않다. 사설 수영장은 남녀 샤워실이 별도로 있고 한국의 수영장과 같은 시스템이지만, 공공 수영장이었던 몰든센터는 충격적으로 공개적으로 보이는 곳에 샤워시설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렇다고 보이도록 벗고 씻는다는 뜻은 아니고 어차피 락스 물에서 놀았는데 뭘 씻냐는 듯 머리만 샴푸로 감고 대충 헹구고 나가는 개념인 것이다. 화장실 안에 샤워실이 별도로 딱 한 칸 있어서 처음에는 아이를 그곳에서 씻기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방수 수영모를 썼으니 머리는 안 젖었고, 몸에 락스만 없애도록 물로 헹구고 냉큼 집으로 와서 씻겼다. 나중엔 그마저도, 일요일 저녁을 해결하려고 뉴몰든 한식당에서 밥을 먹고 왔으니 집에 빨리 와서 씻는다기 보단, ‘수영 끝나고 안 씻었다.’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게 점차 영국을 닮아갔다.
탈의실도 타일 위에 맨발로 다니도록 되어 있어 찝찝한 마음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화장실도 맨발로 들어간다,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아이 슬리퍼를 챙겨 신긴 것은 나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슈커버를 줘서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러 들어가는 어른들이 신발에 슈커버를 씌우고 탈의실에 들어간다는 사실 정도이겠다. 게다 수영모를 써야 한다는 규칙도 없는지 수영모로 레벨을 구별하는 강습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긴 머리 휘날리며 수영장에서 머리를 감고 있다. 또 눈물이 난다. 한국인들처럼 머리를 매일 혹은 뜸해도 이틀에 한번 감는다고 보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때다 하고 수영장에서 머리를 소독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행히 대체로 머리숱들이 적다. 위안을 삼아 본다. 한 번은 그들 따라 수영모를 안 쓰고 수영을 해봤다가 머리카락이 눈과 얼굴을 다 덮어서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검은 물귀신 한 마리가 된 즉시 다시 수영모를 썼다. 너무 불편했다. 그마저도 머리숱이 적은 백인들이나 가능한 것인가 보다. 영국에 살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더러워진 것(?)이랄까? 한국인들 중에서도 깔끔에 깔끔을 떠는 엄마 밑에 자라 깔끔에 스스로 피곤했던 내가 더러워도 괜찮다는 걸 배우다 못해, 귀국해서 생활하는 걸 보고 남편이 반농담 반진담으로 “어우, 더~러”했다는 해프닝. 더러움을 배우고는 삶이 편해졌다.
어렵사리 장점을 하나 찾아보자면, 가족이나 그룹 탈의실이 있는 점은 편했다. 한국에서는 남녀를 나누고 옷 갈아입는 건 서로 볼 수 있지만, 몰든센터 수영장은 좁더라도 1인 탈의실, 2인 탈의실, 가족 탈의실, 대그룹 탈의실로 칸칸이 나눠져 있어서 프라이버시도 지켜지고 아이를 챙기는 것이 좀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묘하게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한국은 수영의 기술에 사람을 맞추는 방식이라면, 영국의 강습 방법은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수영을 맞춰 가르치는 느낌이랄까? 수영을 하고 있는 영국 성인들을 보면 한국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한국인들은 어딜 가나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 하나같이 자유형, 배영, 평형, 접영 중 하나를 구사하며 기술을 갈고닦는 모습이라면, 영국인들은 마치, 연못에 떠있는 개구리밥같이 유유히 유영하고 있달까? 레인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성인 중에 정식으로 수영을 배운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싶어 보인다. 어설픈 실력으로라도 자유형과 배영을 하면서 25m를 오가노라면 마치 선수급이라도 된 기분이고 타인의 시선도 느껴지는 듯 하다. 그들의 수영은 그냥 어릴 때 개울에서 물장구치다 익힌 개헤엄을 느리적 느리적 쉬어가듯 팔다리를 내젓는 것이 그들 수영의 모든 것이었다. 머리를 수면 위로 꺼내놓고도 어쩜 그렇게 가라앉지도 않고 유유히 헤엄쳐가는지, 수영장에서 조차도 영국인 특유의 여유가 부러웠다.
영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기롭게 전화를 걸어 아이의 수영 강습 등록 문의를 했을 때, 2~3년씩 대기한다고 해서 어이가 없었지만 2년 만에 돌아갈 입장인데도 또 한 번 호기롭게 대기 리스트에 올렸다. 영국은 배움에 효율성은 없어도 뭐든 참 일찍부터는 시작시키는데, 가성비의 민족인 한국인들은 보통 초1-2에 수영을 시작하기에 시킨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이 대에 비해 시작하는 수영 레벨이 낮아서 그런 지 이듬해 기대치 않게 수영을 시작했다.
다시 수영 강습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한국은 자유형 팔까지 돌리면 배영을 시작하고 그런 식이라면 영국은 자유형 팔도 안 돌렸는데 천장보고 눕도록 뒤집는다. 되게 신기하지만 잘 먹힌다. 자유형이 기본이긴 하지만 꼭 쉬운 수영법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배영이 더 쉬운 것 같다. 그리고 호흡법을 가르치기 전에는 얼굴을 처박은 채 팔을 돌려서 짧은 거리 숨을 참고 가도록 가르쳤다. 그러다보면 좀 빠른 아이들은 답답하니 한번씩 고개를 들어 숨을 쉬는 경험을 자연스레 하고, 머리 무게 때문에 물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면 고개를 옆으로 돌리도록 교정을 별도로 해준다. 한 시간에 두 레벨이 수업하는데 그렇게 빠른 아이들은 즉석해서 옆반으로 보내주기도 했고 그럼 다음 시간부터 자랑스레 수영모색이 바뀐다.
그즈음에 아이들을 뒤집고 머리를 받쳐준 채 누워서 물장구치며 반대편까지 가는 연습을 시켰다. 그렇게 뭔가 기계적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돌아갔다. 뭐든 분석하고 연구하기 좋아하는 나라답게 인간을 참 많이 연구해서 교습법을 개발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고, 이 수영 교습 기관에서 양성하는 강사들은 일률적으로 그 순차와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강사 개인의 방식이나 역량에 따르지 않고 매뉴얼에 따라 어느 교사가 하든 비슷했다. 오히려 영국 학교는 교사 개개인의 역량에 아이들의 학습이 크게 좌우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수영도 못하는 아이들을 첫날부터 수업의 끝에는 물에 뛰어내리도록 했다. 비록 1m이긴 했지만, 차례로 뛰어내리게 하며 물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일부터 했다.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났을 때는 일반풀로 데려가 뛰게 했고 더 지나서는 자유형도 못하는 애들을 까마득 어두워 끝이 보이지도 않는 수심 3m인 곳에서 선생도 물장구를 치며 떠 있는 채로 뛰어내리는 아이들을 받아주었다. '아니 저 깊은 곳에서'싶었지만, 그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안전한 상황에서 위험을 경험하는 것을 매우 추구하는 내 입장에서는 고개를 내저으며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 외에도 수업 마지막 즈음에 가라앉는 장난감이나 링을 던져주고 빨리 많이 모아 오도록 하는 게임을 시키며 자연스럽게 잠수 연습을 유도하기도 했고, 생존 수영 중 하나인 Star Float라고 팔다리를 별 모양으로 벌리고 물 위에 편안하게 누워 떠 있는 연습도 자주 시켰다. 모두가 여행을 떠났던 방학 중이라 모두 결석해서 수업에 혼자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특별히 넓은 판 위에 아이를 올리고 두 선생님이 흔들며 거친(?) 파도를 경험시켜주었다. 처음에는 재미로 하는 것인가 했더니 나름의 생존수영 강습이었던 것이다. 애미랑 둘이 사느라 다들 놀러 갈 때 못 가고 수업에 왔다고 이런 특별 대우라니!
역시 아이들은 짬짬이 하는 잡담이 제맛이다. 한 명씩 풀의 반대편으로 가는 동안 밑도 끝도 없이 잠수를 하는 남자아이도 있었지만, 여자애들은 수다를 떨기도 한다.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니 보통 수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수영을 가르치는 다른 문화도 몸으로 배우고 수영과 관련된 용어도 배우고 산 영어다.
수영 수업은 성격 급한 애미가 6개월 전부터 귀국 준비를 서두르느라 마음이 축나서 6개월 만에 귀국 정리되고 말았다. 자유형을 채 완성을 못하고 물에 빠지는 건지 수영을 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태에서 끝이 났는데, 신기하게도 배영은 수영 2개월 만에 어설프나마 떠서 갈 수 있게 되었던 것. 그것이 영국 수영 강습의 효과라면 효과였을까?
분야 가리지 않고 모든 면에서,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고 소박하다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완성도 떨어지고 비효율적인 것이 영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