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로운 영국 초등 생활
학교에서 20분을 걸어 아이들이 도착했다. 1년에 한 번 있던 스포츠데이. 운동회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당연히 운동회인 단어인데, 그냥 스포츠데이를 한다고 알림을 받았을 때는 스포츠데이가 뭐지? 어떻게 하는 거지?, 학부모도 올 수 있다는데 부모의 역할은 뭐지? 마음이든 몸이든 물질이든 뭘 준비해야 하는 거지? 이방인 엄마는 머리 스핀이 급격히 빨라지며 또 당황스러웠다. 타국에서는 그게 무엇이 됐든, 처음이란 늘 그랬다.
돗자리가 필요할까?
차는 가져가야 하나? 주차는 어디에 하지?
누구랑 이야기하지? 혼자 어색하게 서 있게 되면 어쩌지?
다행히 요즘도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 어릴 때 한국의 운동회처럼 바리바리 싸들고 가야 하는 것은 없었고, 부모가 참석해야 하는 행사들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나 아빠 때론 조부모까지 참석하는 모습은 우리네와 비슷했다. 몇 날 며칠 준비해서 반별 대항도 하고 군무를 이루는 춤을 연습하기도 했던 우리네 운동회를 상상하고 가면 ‘엣? 그냥 애들 장난 아녀?!’이런 마음이 든다. 숟가락에 탁구공 안 떨어뜨리고 반환점 돌고 오기, 콩주머니 멀리 던지기, 달리기, 발 묶어 달리기, 이어달리기 같은 종목이 다이다.
학교 근처 딘튼필드에 원정 운동회를 갔다. 첫해는 아이가 등교한 지 3개월이 채 안 되는 때여서 아이는 운동회에 그리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멀리서 뒷모습만 보고 있는데도 불편해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베트남 남자아이는 엄마가 있다는 이유로 어리광 삼아 울기까지 했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만에도 감사하기로 했다. 한국 아이가 모두 3명이었는데 어쩜 달리기는 하나같이 꼴찌냐며 다른 한국 엄마랑' 쯧쯧쯧' 했다. 영국 학교는 이렇게 열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참석한 아이에게도 상을 주었다. 이름하야 A Great Team Player.
영국 학교는 어떻게 하면 상을 줄까 고민하는 곳인가 보다.
이렇게 무열정으로 참여한 아이에게도 어떤 이름을 붙여서라도 상을 주니 말이다.
1년 후, 또 한 번의 스포츠데이
두 번째 스포츠데이에는 아이가 사뭇 달랐다. 아이는 릴레이 경기에서 아이들의 실력에 따라 전략적으로 순서를 정하는데 의견을 내기도 하고, 친구들을 열을 다해 응원하기도 하고 승패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1년 전 겉돌던 녀석이 이제 이곳의 아이가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바로 옆에 붙어 앉아서 즐겁게 사진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고 있던 녀석이 2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한 마디 거든다.
결국 우리 팀이 졌어,
이때 우리 팀이 300점이었는데 레드팀이 점수가 더 높았거든.
하지만 승패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영국이었다. 어른들은 응원 플랜카드나 픽을 만들어 와서 아이들 사기를 높여주고 함께 즐기긴 했지만, 이기나 지나 웃는 분위기였다. 특별히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건, 달리기였다. 5명이 출발 신호와 함께 달리는데 2등으로 달리던 아이가 넘어졌는다. 1등으로 달리다 넘어진 것도 아닌데도 이런저런 이유를 다 끌어다 대며 1등 스티커를 아이에게 붙여주었다. 아이들 운동회에서 조차도 냉정한 승부의 세계인 한국과는 달리 넘어진 아이를 그렇게 위로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우리 어릴 때는 누가 넘어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넘어진 아이는 넘어진 설움에 꼴찌까지 설움을 더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근래 어떤 뉴스 기사에서 지방의 한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에서 친구가 넘어지니 그 경기에 달리던 아이들이 달리지 않고 모든 아이들이 넘어진 아이에게 돌아가 친구를 도왔다는 기사를 보고 한국도 우리 어릴 때와는 많이 달라졌구나 생각했다. 댓글에도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낫다", "아이들에게서 우리 어른들이 배운다."같은 훈훈한 글들이 넘쳐났다. 우리 한국도 이제 먹고살만한데 경쟁은 좀 뒤로하고 여유에 바탕하는 함께 나누는 행복을 찾았으면 싶다.
아이만큼이나 학교 일이라면 뭐든 낯선 이방인 부모 입장에서 가장 좋았던 건, 무엇보다 부모에게 시키는 게 없었다는 거다. 그리고 2019년 6월의 일기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영국 공립학교의 운동회는 어설프고 이기고 지는 것이 전혀 중요치 않았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문득, 사시사철 푸른 영국의 잔디가 그립네.
어느 나라나 교과서 있는 게 상식 아니었나? 알고 보면 전 세계에 교과서가 있는 나라가 몇 없다나? 미국은 이렇게 한국처럼 교과서가 있다. 국정교과서는 아니어도 굵직한 몇 개 출판사에서 영어, 수학, 과학, 체육, 미술, 사회, 역사, 문학 등등 교과별로 학년별로 착착착 출간되어 있다. 그래서 한때(?) 영어 사교육 시장은 미교라 부르는 미국 교과서를 바이블처럼 했고, 대치동 같은 곳은 이마저도 미국 학년보다 빠르게 선행학습을 나간다.
아이가 유치원도 졸업 못한 일곱 살에 갑자기 1학년 중반으로 편입해야 했기에 1학년이 어떤 걸 배우는지, 할 수 있다면 집에서 좀 교과서를 보고 적응을 해서 영국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도 교과서가 있지 않겠냐며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고 교보문고 영어 교과서 코너에 가서 찾아보기도 했다. 맞이한 결론은 영국은 교과서가 없다는 사실이었으며, 그 사실이 참 놀랍다는 마음만 안은 채로 영국에 도착하고 말았다. 현지에 가서 확인하니 정말 사실이었고, 설마 교과서는 없더라도 학교에서는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겠냐고 상상했다. 말 그대로 상상이었을까? 아이가 학교에서 고생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하교할 때 담임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다음 주에 학교에서 할 내용을 미리 받아볼 수 있을까요? 집에서 미리 보고 가면 아이가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이런 대화 안 통한다는 거 이젠 안다. 그날 곤란해 보이던 선생님 대답의 결론은 서점에 가서 나이에 맞는 문제집을 사서 보는 것을 권한다는 것이었다. 어디서나 학교가 중심이고 예복습을 충실히 하는 것이 첫째라 생각했던 지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부모 상담에 가서 워크북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날 선생님이 거의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게 내 영어 문제인가 싶을 정도로 이해하지 못해 했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러분도 아래 워크북을 보시면 무슨 수로 다음 주에 할 것을 손에 쥐어 줄 수 있겠나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영국은 우열 교육을 한다. 우열 교육이자, 동시에 절대 교육이 아니라 상대 교육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상대평가 아니고 상대적 교육말이다. 그 학년에 달성해야 하는 절대 기준치가 있기는 하나, 모두가 교육의 최대치를 향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없고, 잘하는 아이는 본인의 위치에서 성장해 가고, 못하는 아이는 또 그 위치에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반적으로 그 교과시간에 나갈 수업의 주제는 같고 수준도 비슷하겠지만, 모두가 같은 워크시트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 아이가 이번에 하는 걸 봐서 다음에 무엇을 할지 담임선생님이 정하고 워크북에 붙이는 식이다. 특정 과목을 잘하는 아이가 지겹게 그 수업을 듣고 있지 않아도 된다. 근래 영국에 살고 있는 지인의 아들은 영어를 너무 잘해서 수업 시간에 배울 것이 없다며, 영어 수업시간에는 혼자 별도의 테이블에서 책을 읽게 한다고 한다.
영국이 교과서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스럽게 느껴지는 한국인이었다. 실로 교사의 역량과 열정에 모든 것을 맡겨두어야 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선생님과 학교를 참 잘 만나서 큰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평균적으로 교과서가 없다는 것은 균질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무척 학업 성취도가 안 좋던 동런던 한 학교가 자체적으로 교과서를 만들고 그에 따라 수업을 한 뒤 학업 성취도가 엄청나게 좋아져서 총리도 방문했다던 다큐멘터리를 본 일도 있다.
영국이 교과서가 없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맨땅에 헤딩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수업 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옥스포드 출판사나 콜린스, 그리고 그 유명한 트윈클 같은 곳에서 발간해낸다. 선생님들은 그중 적합하다고 생각되거나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구매하거나 다운로드하여 편집해서 활용한다. 괜히 영국 교사들이 업무 과다라고 하는 게 아니다. 한 반 33명 정원인데 아이 하나하나를 잘 파악하고 그에 맞게 학습을 제공하려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선생님이 아이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는 그 학년을 마무리하던 여름 성적표에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