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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 맛의, 브런치 글쓰기 20일

새콤 달콤 맵고 짜고, 쓰기까지한 브런치에 글쓰기

by Scribblie

브런치에 글을 쓴 지 20일이 되어간다. 20일이라는 시간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13편의 글을 썼다. 그리고 2편의 글이 탈고를 기다리고 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확실히 글쓰기에 대한 참 묘하고도 새로운 차원의 플랫폼이다.

단지 플랫폼의 성격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패러다임 자체가 새로워지는 곳이다.



접근 부담을 덜어주지만, 작가의 자세를 잡아주는 플랫폼 , 브런치


'출판'하면 독서와는 달리 참 멀고도 먼 세상 같았다. 디즈니 만화의 시작에 늘 붙는 Far, Far~ Away Kingdom처럼. 독립출판, 기획출판.. 성공했다는 유투버들의 영상도 보고, 블로그도 읽고... 그래도 내게는 두근거리는 멀고도 먼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다 알게 된 브런치북. '에라, 모르겠다. 실제로 책이 나오고 안 나오고를 떠나서, 원고를 체계적으로 쓰는 것부터라도 해야 망정이지.'싶었다. 아이디어와 정리 안된 방대한 콘텐츠만 갖고 있던 나에게 브런치는 최소한이자 최대한이었다.

작가 신청은 처음 맞이하는 최대 위기였다. 압축에 대한 300자의 벽, 그리고 나는 왜 작가인가... 하는 근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질문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지 않았는지를 깨닫게 했다. 첫 글을 써두고, 작가 신청까지 2주일이나 내면적 가다듬음 외에는 아무런 외형적 진전이 없었다. 그 사이 나는 어떤 어투를 쓸 것이며, 콘텐츠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로 구성할 것인지 구체화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 신청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차원의 플랫폼, 브런치


먼저, 왜 새로운 차원의 플랫폼이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블로그처럼 손쉽게 접근할 수 없다. 일단 작가 신청과 승인이라는 과정을 통해 단단한 콘텐츠가 확보되었는지, 또는 필력을 증명하거나, 혹은 특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분야가 있는지 등과 같은 검증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아니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 통과해야하는 걸로 보인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가볍게 쓰인 글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분명 작가라는 이름의 무거운 우산 아래, 감성 에세이든 정보 글이든 카툰이든, 만들어져 나오는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페이스북 개인 계정과 페이스북 페이지, 카카오스토리, 인스타, 과거로 가자면 프리챌과 싸이월드에도 글을 써왔었지만, 그 즉흥성과 무게, 공개성이 서로 매우 다르다. 지난 2년 간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비슷한 성격의 글을 상당히 정성을 들여 써왔지만, 일회성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처음 맛 뵈옵는 작가들을 위한 압박, 브런치


13편의 글을 쓰며,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몸이 맞춰져 간다.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이게 블로그스러운 건지, 책의 한 챕터인 것인지 처음에는 몸이 많이 헷갈린다. 화법도 플랫폼마다 상당히 바뀌지 않는가.. 개인적으로는 블로그 < 페이스북 페이지 < 브런치 순으로, 구어체<문어체 비중이다. 하지만 브런치에 온전히 원고처럼 문어체로 쓸 수도 없다는 느낌이 절반쯤 지나오면서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혼자 쓰는 원고와는 달리 피드백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읽은 통계와 '좋아요', '댓글'기능이 있다. 그래서 글을 쓰며 즉각적으로 글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내가 이 순간 발행을 누르면 읽을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글을 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말로 현장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고와 강연의 그 중간 어디 매쯤...


어쩌면 이것이 브런치가 가지는 출판계의 센세이션, 그리고 작가들에게 요구되는 혁명 압박(?)이 아닐까?!



눈치 보는 작가 생활, 안전한(?) 출판 사업, 혁명 브런치


늘 독자이기만 했던 나에게 작가란, '글을 내려주는 권위 있는 자'라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써주면 써주는 대로 읽어야 했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브런치는 작가가 독자의 눈치(?)를 보게 되는 구조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 어떤 글은 환영받고, 어떤 글은 그렇지 않은지 장단기적으로 지켜보며 자신의 글을 특화시켜갈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또한 브런치에서 출판사들과 데이터 공유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출판계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안전한 출판을 할 수 있는, (영국에서 일할 때, 영국인들이 그렇게 입에 달고 살던) Evidence Base의 출판 사업의 장이 아닐까? 출판사의 안전은 작가의 안전과도 정비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파워블로거가 책을 내는 것이 유행인 시대에, '인기=글의 가치'라는 프레임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지만...



숨 쉬는 발효 글쓰기의 장, 브런치 - 글의 리폼.


글의 길이를 조절하게 되었다. 시작할 때는 홀로 원고를 쓴다는 생각으로 책의 구성만 생각하며 하나의 글을 완성시켜나갔다. 지금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내 지구력이 탈고라는 레이스를 견뎌낸다면, 나중에 출판 구걸을 하러 다녀볼 심산으로 말이다.

하나의 글에 하나의 이미지나, 그림 정도를 삽입하는 정도로 정제된 글을 꿈꾸었었다. 그러니 처음에는 글 하나의 길이도 상대적으로 길었다. 그런데, 관심작가로 등록해둔 분들의 글을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는 즐기나 글 읽기는 그렇게 즐기지 않는 비문명인스러운 나는, 스크롤의 압박이 좀 부담스러웠다. 모든 글을 정독 아니면 못하는 자의 강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 편으로 구성하려던 글을 4개의 글로 쪼개 쓰게 되었다. "오호라, 하나의 거위로 4개의 황금알을 낳을 수 있겠네"하는 잔꾀가 번득였다. 하지만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결과를 맞았다. 하나의 글을 쪼개고 보니, 각 글에서 아쉬움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먼저 새로운 서두와 결말이 필요했다. 결국, 정보와 살을 덧붙이고, 구성을 재조직하고, 제목을 고민하는 것을 4배로 하게 되었다.

스스로는 대만족이다. 글이 더 쫀쫀해졌으며, 읽기 좋은 길이로 구성되었고, 정보도 조금 더 실하게 가미되었으며, 이미지가 다수 첨부됨으로써 시각적 부담은 줄어들었고 글은 더 리듬을 타게 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개인적인 경험과 가치에 국한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번 글만큼은 요령 없이 텍스트에 충실하고 쪼개기 없이 한 숨에 쓰고 올릴 예정이다. 글을 위한 글!이므로.



다른 플랫폼과 친하면 좋아요, 브런치.


조회수 욕심, 좋아요 욕심. 버릴 수가 없는 것은 다른 플랫폼과 다르지 않다. 플램폼이 다르다고, 나라는 사람의 성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어떤 작가님께서 쓰신 것처럼 새벽까지 글을 쓰다 다크서클이 생기고, 그나마 하던 깨작거리는 운동도 멈췄으며, 타이핑하다 거북목이 되었으며, 좋아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브런치 폐인이 되고 있다.

언제나 의도는 완벽하게 공과 사를 구별할 수는 없다. 그 공과 사가 누이 좋고 매부 좋아야 성사되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과 관련되어 있고, 나 또한 도움을 많이 받았던 다른 플랫폼에 글을 올리게 된다. 나도 도움을 받았으니 '개인적으로야 뭐 별다른 결과가 있겠냐마는 쓰고 있는 글을 나누면 영국 생활을 준비하거나, 영국 생활 초심자에게 '경험 나눔'이라도 되지 않겠나'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던 것이다.

그곳에서 예견치 못한 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교과서 마냥 재미없다'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라며 그곳에 옮겼던 브런치의 글이 조회수 2000을 넘는단 말인가? 나에겐 하늘만큼 큰 숫자이다. 원글이 있는 링크 주소(브런치 주소)를 알려달라는 댓글을, 이틀 사이에 50건이나 받게 된다는 말인가? 소박한 나에겐 세상을 다 산 듯 기쁜 큰 관심이다. 아마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일반에게 좀 더 친근한 플랫폼이었다면 더 직접적인 통계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 예상도 해본다.

그렇게 글쓰기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원래는 시간 순으로 구성해나가려던, 책의 구성을 살짝 뒤로하고, 그 플램폼의 가입자들이, 쉽게 말하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관심사를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기에, 챕터를 새로 구성할 수 있었다. 어투도 그에 맞춰 조정이 되고 있다.

가볍살스러운 말투라는 뜻이 아니다. 원래는 일상 정보 중심으로 감성 비중이 크고 정보가 가미된 에세이로 글을 구성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의외로 영국의 행정과 정치 등 사회 저변의 시스템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기에 글은 중수필에 가깝게 무게가 조정되고 있는 중이다. 영국에 가기 전, '그냥 여행 이야기 좀 말고', '한 달 살기 같은 것 좀 말고', '진짜 그 사회와 마찰 없이 사이좋게 살려면 알아야 할 유형뿐만 아니라 무형의 정보들을 좀' 얻고 싶었던 나와 같은 1만 2천의 아바타들이 있었던 것이다. 낯선 곳에서 생존해야 하는데, 뭔가 피부에 까칠까칠 닿는 듯한 것을 알려주는 책이 참 드물었다. 겨우 찾았던 일부의 갈증을 해소해준 책은 "커튼 뒤에서 엿보는 영국 신사"라는 책이었는데, 약 10년 전에 쓰인 책이다. 그 책은 나에게 영국 감각을 키워주어, 영국에서 모두가 겪는 아이 학교 생활 트러블과 한국인 마인드로 접근했다가는 더 고초를 겪을 일들을 잘 넘기게 해 주었다. 파편적 정보를 전하는 블로그들과 달리 책이 가지는 힘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영국에 살며 두고두고 그 책에 감사해했다. 지금도..

물레 위의 도예 흙과 손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도자기를 빚어내듯, 브런치와 다른 플랫폼을 오가며 하나의 매거진이나 브런치북을 완성하는 것은 브런치만이 가질 수 있는 출판 방식의 메리트 혹은, 매력 아닐까.


참, 다른 플랫폼과의 크로스오버 경험 덕에 브런치에 대한 보통의 이미지도 알게 되었다. '상업적이지 않은', '검증된 사람들이 글을 쓰는', '가치 있는 글이 존재하는' 곳, 브런치.



공짜 글을 쓰게 하는 텍스트판 유튜브, 브런치...?


그런 글을 본 일이 있다. 공짜 글을 쓰게 하는 브런치라고. 말 그대로 보면 그렇기는 하다. 이 글에서 이 부분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브런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같았다. 글쓰기 초심자이거나 본업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다른 플랫폼들처럼 날려 쓴 글도 아닌(이 글조차도 4시간째 쓰고 있다), 공들여 쓴 글을 비용 없이 선공개하게 하는 브런치의 시스템이 위기로 다가오기에 충분할 것 같다. 열정 페이가 열정을 명분으로 한 착취이거나, 재능 기부의 다른 이름이 재능 이용일 때가 있는 것처럼...

나름 내가 가진 경험치도 "영국에서 유일한"이라는 수식어를 누군가가 붙여준 고유한 영역인지라, 그런 위기감을 안 느낀 것은 아니다. 이미 누군가 다 읽고 단물 빠진 글을 누가 출판하려 들까? 하는 고민. 누군가 내가 쓴 글의 정보를 2차, 3차로 우려먹어 흔해빠진 정보가 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꽁꽁 싸매고 지키려던 가치들이 어떻게든 풀어 유통되게 하려고 애쓰는 세상으로 바뀐 것 같다. 파워 블로거들이, 자신의 고유한 정보를 성심껏 공유하고, 인기 유투버들도 수익이라는 가치와 동일시될 수밖에 없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낚시질하는 수단으로 선공개를 택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밖에는... 이미 순수문학으로 등단을 하신 분인데, "'요즘은 디지털'이라고 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브런치를 텍스트판 유튜브라고 하나보다.

이에 대해서는 입장이 나뉠 수밖에 없다. 이도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이나, 이미 레거시 출판의 틀에서 튼튼하게 자리 잡은 작가님들이나 둘도 없을 강력한 콘텐츠를 소유한 분들은 비평해 마땅할 수밖에 없고, 나같이 뭐라도 시작해봐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에 대한 기대감과 위기감이 공존할 것 같다. 기획 출간이 되지 않아 독립출판을 해야 하는 선택지만 남은 경우라면, 비용을 들여야 할지 판단하기 위한 시험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참으로 조심스러운 이야기이다.



프롤로그도 없이 에필로그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글 같기도 또는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써온 나는 요즘, 글 쓰는 쫀득한 재미에 푹 빠졌다. 브런치의 많은 작가분들이 그렇듯 나도 본래의 직업이 있다. 하지만, 브런치에서만 나는 진짜 내가 된다. 둘, 셋, 생각할 여력이 아직은 없다. 기존에 속한 사회가 씌워놓은 나라는 틀에서 탈출하게 해 준 브런치에, 일단은 많은 생각 없이 감사한다.


인생을 다시 쓰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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