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집구하기는 난생 처음
어른 한 둘이 정착하는 것이라면 사실 임시숙소를 어디에 어떻게 구하는가 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동 동선의 양이나 먹거리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낯선 나라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시작을 너무 고되게 하고 싶지 않다면, 아침이나 저녁 식사가 포함되어 있고,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주인이 있는 한인 민박을 구하는 것도 괜찮은 옵션이다.
한식이 아니면 거동이 안 되는 아이를 데리고 하루 온종일 집을 구하고 차를 사고 문턱 높은 은행에서 아이를 세 시간씩 묶어두려면 아침을 잘 먹고 나서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항공 수화물에 밥솥을 갖고 탄 이유가 그것이었다. 당장 도착한 날 저녁과 아침부터 밥을 해 먹어야 하니 쌀과 3일 치 반찬과 기본 조미료, 간단한 식기류도 수화물에 실었었다. 생각보다 처리할 일이 산더미 같은 시작에 식자재, 조미료, 밥솥이 있는지까지 고민하는 것이 벅차기도 하다. 그리고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다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이끌고 들어온 숙소에 저녁 식사라는 미션이 남아있는 것도 큰 짐이었다.
그럼에도 무조건 한인 민박만 추천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에어비앤비에서 지내면서 집을 구할 때 주의해야할 점이나 생활 저변에 대해 예행연습처럼 배우게 되는 일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도착한 첫날은 밤이었다. 집에서는 냉기가 돌았다. 스토리지 히터라는 것의 성격을 배웠던 날이었다. 그 전 사람들에 이어 숙소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기에 히터는 꺼져있었고, 이 밤이 지나며 밤 전기로 충전을 할 때까지는 난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 겨울, 반도 안 씻었는데 찬물이 나오는 날벼락을 맞고 집을 보러 다닐 때 온수 탱크 용량을 확인해야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조건은, BRP를 받을 우체국이다. 우체국을 런던 북부로 잡아놓고 숙소를 런던 남부에 잡으면 아주 피곤해진다. 기본적으로 BRP 수령 우체국을 지정할 때는 숙소의 바운더리가 대강 잡혀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자가 나온 후 비행기 티켓팅이 되면 우체국 도보가 가능한 곳에 에어비앤비를 잡으면 편의하다. 모든 것이 낯선 곳이기에 교통에 대한 감각도 없고, 교통카드 구입도 가능한 공항에서 했겠지만 만일의 경우 심리적 로드를 줄이려면 도보가 좋다.
두 번째 조건은, 궁극적으로 살고 싶은 동네 안에 구한다는 것이다. 슈퍼나 약국 등 편의시설을 익혀두는 일을 두 번 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나 전철, 기차 등 교통 이용에도 새로 익숙해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집을 보러 다닐 때도 멀리 이동을 해야한달지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세 번째 조건은, 어쩌면 가장 중심이 될 조건이 될 수 있는데, 자녀의 학교 지원 리스트가 많이 모여있는 곳이 좋다. 학교 지원 방식은 자치구나 학교의 종류에 따라 다른데, 학교에서 재량권을 갖고 아이들을 받는 경우도 있고 학교 투어를 하고 학교에 직접 가서 리스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에 학교 근처에 가보며 분위기를 본다든지, 학교 근처의 환경을 오며 가며 보는 것은 학교 지원 리스트를 추리는데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에 예상 학군지에 임시거처를 정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우리가 살던 집을 그냥 이어받았던 분은 이미 집이 정해져 있기에 런던 시티에 숙소를 잡고 정착 준비와 관광도 겸하였다고 한다. 비교적 낭만적인 시작. 부럽다.
태어난 나라에서도 집은 구할 때마다 복병이 튀어나오고 부동산법이나 용어는 어렵기만 한데, 대체 가보지도 않은 나라에서 낯선 언어로 집을 구한다고 하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얼마 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한국에서 수년 씩 산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집을 구하는 걸 보면서 "남향", "세입자", (전 세계 한국이 유일하다는)"전세" 이런 한자의 뜻을 모르면 알아듣기 어려운 부동산 용어들때문에 곤란을 겪을 것을 보니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런던에 살면서, 월 200만원의 월세가 너무 아까워 영국에 집을 사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지만 외국인으로서 대출을 받는 것도 어렵겠지만, 영국은 집을 살 때 변호사를 끼고 산다고 할 정도로 집을 사는 일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영국에서 대학교수를 하시는 분께서도 10년 전쯤 집을 살 때였는데, 변호사를 끼고도 매도자 측이 연락도 잘 안되고 거의 잠수를 탄 상황에 가까워서 소송을 준비해야하나하던 찰나 연락이 되어 가까스로 입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영국에 처음 상륙하는 사람이 집을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인가 싶다.
처음 영국에 들어갈 때 집을 매입할 건 아니니, 일단의 용어들과 일의 처리 과정, 임대자와 임차인의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에 대해 알아두는 게 마음고생을 덜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 외에도 효율적으로 집을 구하기 위해 출국 전에 해야 할 일이랄지, 알아야 할 사이트, 일정 짜기, 중개업소와의 관계, 집을 구한 뒤 후속 처리해야 할 일들, 나중에 집을 빼고 나갈 때를 대비해서 해야 할 일들 등 알아둬야 할 많은 것들이 있지만, 이번 편에서는 가장 기초적인, 영국에서 집과 주소가 가지는 의미와, 집의 종류별 용어와 그 의미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영국에 입성함에 있어, 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배적이고 중요하다. 한국에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고, 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런 기능을 하는 번호가 없다고 볼 수 있기에 모든 신분 보장은 주소를 베이스로 한다. -많은 나라들이 주민등록화하고 싶어 했으나 국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이루지 못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입신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주민세 Council Tax 신고이다. 공과금이나 세금을 내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주소가 없으면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 학교 입학 신청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집을 구하는 게 아주 급하고도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연 그 이상으로 중요한 곳이 영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파트, 빌라, 주택 정도로 주택의 종류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디테치드 하우스(Detached House), 세미디테치드 하우스(Semi-detached House), 테라스드 하우스(Terraced House), 플랏(Flat)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배(Boat)”도 부동산으로 취급해 분류하여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강가를 걷다보면 배를 주거로 이용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카페나 레스토랑은 물론!
플랏/아파트
영국에서도 아파트라는 표현을 어쩌다 쓰기도 하지만, 주로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플랏으로 통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플랏이 우리가 생각하는 아파트랑은 또 다른다. 2,3층으로 쌓여 올라간 주택의 형태가 아닌 1개 층의 평면으로 1개 세대가 구성된 집을 모두 플랏이라고 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니 플랏은 우리나라의 다세대 빌라나 아파트 모두를 칭할 수 있고, 특별히 고층인 것은 아파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 일반인들이 어디서부터 아파트로 부를 것이냐 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지만, 런던 시티가 아니고는 7층 정도의 건물도 잘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정도 이상을 아파트라고 말하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생활하다 보면 아파트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게 된다.
런던 서남부에 살았던 경험으로는, 일반적인 중산층이고 가족생활을 하는 가정이라면 플랏에는 잘 살지 않는다. 아무리 좁다란 정원이라도 정원이 딸린 테라스드 하우스를 선호한다. 한국인들이 빌라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프라이버시, 아이들의 놀이공간, 가족생활 여유공간, 구성원 측면의 안전과 쾌적성, 안정적인 삶과 같은 이유이다. 같은 부지에 공동 개발되었던 연식이 비슷한 플랏과 테라스드 하우스의 월세는 1.5~1.7배 정도 차이가 났다.
디테치드 하우스/세미디테치드 하우스
디테치드 하우스는 '따로 떨어져있는'집이라는 의미의 우리나라 단독주택과 일치한다. 물론 프라이버시 측면에서도 가장 훌륭하고, 정원이나 주차공간 등 생활이 윤택하기로는 디테치드 하우스가 단연 좋은 만큼 가격도 일반 주택들 중에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세미디테치드 하우스는 우리나라에서는 땅콩주택이라는 용어로 익숙한 집의 형태이다. 얼핏 보면 하나의 집처럼 생겼지만, 출입구가 두 개이고 마치 데칼코마니 같이 생긴 두 집이 붙어 있는 경우이다. 하나의 대지에 두 개의 집을 짓는 효율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테라스드 하우스보다 프라이버시가 지켜지고 살의 질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테라스드 하우스
테라스드 하우스는 우리나라에서도 타운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주택이 측벽을 공유하며 좌우로 길게 붙어 있는 경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테라스하우스도 고급주택의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테라스드 하우스는 18세기경 1차 산업혁명 시기 직물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열악한(?) 주거의 형태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2차 산업혁명 등 2차 세계대전까지도 꾸준히 도시의 산업 발달과 함께 고밀도 개발을 위한 주거 형태로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테라스드 하우스 정도만 되어도 좁은 정원을 소유하고 있는 중산층의 주거 형태로 볼 수 있다. 내가 살던 킹스턴의 테라스드 하우스는, 방의 개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월세가 400만원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동산 용어나 권리 관계도 올바로 모르고 어떻게 타국 땅에 가서 집을 계약했는지 모르겠다. 출국 전 외국에 간다고 알려지기 시작하면, 알음알음 사돈의 팔촌이라도 소개받게 되거나, 없던 종교도 생기면서 교회라는 연이 생기고 도움을 받는 게 보통의 모습인데 우리 부부는 그런 것을 유난히 꺼려한다고 해야 할지 두려워한다고 해야 할지 그런 타입들이다. 그래도 억지로 연 지워준 한 두 분이 있었지만, 현지의 삶에 익숙해지고 나면 이런 기초적인 것들을 설명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진다는 것을 1년쯤 지난 뒤에 나도 깨달았다. 육아도 6개월 터울 선배가 고충을 제일 잘 이해해주고 대화도 되지, 조금만 더 지나도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 앞으로 더 대단한 고비 많다부터, 사실 기억도 잘 안 나니 공감도 설명도 잘 안 되는 것과 같달까?
유학생이나 가족 없이 단신으로 가거나 해서 집을 통째로 빌리지 않게 되는 경우나 에이전트를 거치지 않고 계약을 하는 경우, 집을 구하는 게 정식으로 구하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손쉬운 듯해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똑바로 체결되지 않은 계약 관계나 책임질 제삼자가 없어서 더 고생을 하며 한인 커뮤니티에 글을 남기는 경우들을 더러 보았다. 보증금을 반환해 준다고 하고 반환해 주지 않고 임대인이 연락두절되는 경우도 허다했고, 심한 경우는 몇십 년 된 신발장에 오히려 하자를 발생시켰다면서 보증금 이상의 배상비를 청구하여 이김에 집을 리모델링할 비용이라도 뽑으려는 듯하다는 하소연 글을 본 일도 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더듬 더듬어 알고 나면 참 당연하지만 모를 땐 알 수 없는 부동산 거래 기초 용어와 아주 기본적인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기본 권리를 설명해볼까 한다.
사실 처음 도착하면, 낯선 영국 발음 -사실 영국 발음만 있으면 다행이겠다. 퍼펙뜨로(Perfect)를 연발하며 집을 보여주던 중개인이 생각난다- EU 각종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다양한 발음에, 어려운 용어에, 계약서나 계약 관계를 따진다는 것이 정말 웬만한 정신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배움에 대한 기회비용이라 생각하며 결국 어느 정도의 손해에 대한 각오도 마음 한 켠에는 늘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부동산 용어, 계약 절차, 계약서 상 확인해야 할 권리 사항, 흔한 관행들을 소개해드리니,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는 이 정도의 기초 지식이라도 갖고 영국 부동산과 권리 관계를 따질 퐈이팅!을 해보시길 바란다.
먼저, 듣기도 거북한 Landlord부터.
Lord? 무슨 Yes, my Lord도 아니고, 참 듣기 싫은 용어였다. 우리에게도 집주인이라는 표현이 더 통용되긴 하지만, 꼭 임대인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편이다. leaseholder라는 표현도 있을 텐데 계약서 상에도 Landlord라는 표현을 쓰더라. 더러워도, 집주인 그러니까 임대인이라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두자. 임차인은 평범하게 Tenant이다.
완전 빠져들어 잠도 안 자고 보았던 영드가 또 하나 있는데, 다운튼 애비 Downton Abbey였다. 다운튼 애비의 매력은 영국은 세계 1차 대전 전후로 세상을 나눌 수 있는데, 그 이전은 고루한 옛 사회가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면, 그 이후는 격변의 시대가 사람들의 고정된 사고를 깨고 워커 계급도 돈을 벌거나 전문직을 가짐으로써 지위 상승 때론 신분의 상승까지도 꿈꾸게 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반대급부에는 Lord로서 살던 귀족의 지위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광활한 영지를 유지 운영할 고민을 해야 한다. 평화로운 자신들만의 영역을 깨고 그곳에 집을 짓고 평민들을 들여 임차료를 받아 영지를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파격을 맞이 하게 된다. Lord, Landlord. 그곳에서 왔을까...?
알고 나면 쉽고도 당연한 부동산 용어, "영어로 뭐라고 하면 모두들 알아들을까?"
부동산중개업소를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찾으면 Realty dealer, Real estate agent, Realtor가 1,2,3번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냥 보통 Agent라고 부른다. 그럼 계약서는 뭐라고 부를까? Contract? 쉬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단어이다. 하지만, Tenency Agreement라고 부른다는 사실. 보증금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Deposit이라고 부르는 것이 쉬이 와 닿는다.
듣보잡 용어들
여기까지는 한국에도 있는 개념들이었다. 하지만, 사회가 다르고 부동산 관련 제도나 관행이 다르기에 우리에겐 개념조차 없는 단어들이 있다.
Reference Check
레퍼런스라고는 참고자료. 논문 쓸 때 참고하는 자료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쉬이 말하면 "뒷조사"정도 되려나? 임차인이 돈을 잘 낼 수 있는 지 아닌 지, 수입 등을 조사한다는 뜻이다. 레퍼런스 체크도 돈이 든다. 그런데, 임대인은 위한 것인데도 2019년까지도 임대인이 아닌 임차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였었다. 결국 아쉬운 사람이 내라는 원리였을까? 다행히도 2019년에 부동산 관련 규정에서 임대인이 내도록 하여 더 이상 임차인이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Inventory Check
인벤토리 체크는 집에 입주와 퇴거하는 날 아침 검사원이 나와서 집의 상태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말한다. 보증금 반환을 100%해줄 것이냐 차감할 것이냐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입주 시에 임차인 입장에서는 꼬투리 잡을 것은 꼼꼼히 잡아내어 보고서에 기록토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 혹여나 나중에 사용자 과실로 잡히지 않으려면 말이다. 정신없이 입주하는 중에 검사원을 따라다니며 잔소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입주하고 2-3일 내에 발견된 하자는 부동산에 통보해서 보고서에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었다.
Deposit Protection Certificate
한국에서는 임대인이 받은 보증금을 어쩌든 임차인이 어찌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에크로와 유사한 성격으로 보증금을 제3의 기관에 의해 보호토록 할 수 있고, Deposit Protection Certificate은 보증금 보호 증서를 의미한다.
참, 한국에서 계약을 위해 사전에 집을 보는 행위는 Viewing이라고 한다. 영국 입국 전부터 써먹어야 하는 단어이니 꼭 알아두자. 계약이 아닌, 집을 보러 다니기 위해 부동산과 약속을 하고 집의 조건을 이야기하기 위한 용어는 실전 집구하기 편에서 실전적으로 다뤄보기로 한다.
부동산 계약 절차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집을 뷰잉(Viewing)한 후에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함에 이의가 없다는 것이 구두상으로 확인이 되면, Balance Invoice를 중개사무소에서 작성해주었다. 정식 계약 이전에 레퍼런스 체크를 하고 본계약을 체결하게 되므로 그 비용과 보증금, 인벤토리 체크비, 첫 달 임차료가 기재된 내역서라고 할 수 있다. 그중, 그 집을 다른 임차인에게 뷰잉이나 계약하지 못하게 하는 계약금에 해당하는 Holding deposit과 레퍼런스 체크비는 바로 지불하였다. 그 이후 입주 전 계약서 Tenancy Agreement를 쓰게 된다. 밸런스 비용은 입주 일주일 전까지 부동산으로 납입하라고 되어 있지만, 영국 입국 후 7일 만에 계약하고 10일 만에 입주한 번갯불에 콩궈먹듯 집을 구한 스피드였기에, 계약서 쓰는 날 나머지 밸런스를 입금했었다.
계약은 전자계약을 했었다. 중개소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이메일로 전자계약서류를 보냈고, 각자 서명날인이 끝나면 시스템에서 계약이 완료되었다는 이메일을 보내주었었다. 한국에 이제 서서히 전자계약이 도입되고 있는 듯 하지만 아직 한국 중개사무소에서는 낯설기만 한 일 같다.
입주일에는 짐을 들이기 전에 인벤토리 체크를 한다. 가급적 검사원을 따라다니며 문제가 있는 부분은 꼼꼼히 지적하여 보고서에 담기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보고서가 작성되어 이메일로 오면, 빠진 것은 없는지 없는 것이 있다고 쓰여 있지는 아닌 지 확인하고 수정을 요청하자. 나중에 퇴거 시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말이다.
자, 인벤토리 체크가 끝나면 드디어 짐을 들이고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어 본다. 이제 각종 제세공과금 등록과 아이 학교 배정 신청 러쉬가 기다리고 있다.
내 나라 부동산법도 다 알지 못해 때때로 당하게 되는 것이 집의 거래인데, 하물며 외국에서는 언감생심, 그저 집을 구했다는 것에 감사하였었다. 그런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이것 정도는 계약할 때 확인해두자."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특히, 요즈음처럼 코로나로 인해 예정보다 일찍 귀국을 해야 하거나, 유학생들도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어 잠시 한국에 갔다가 재입국을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여 근래 부동산 문제가 많이 포스팅되는 것을 보았다. 계약서를 다 읽기 힘들면 1장 요약본이라도 꼭 읽어보자.
Break Clause
계약 파기 조항이다. 전체 계약기간의 절반이 지나면 서로 2달 간의 기간을 두고 계약 파기를 통보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집의 상태가 살아보니 너무 안 좋을 수도 있고, 코로나와 같은 예측하지 못하게 중도 퇴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계약 파기 조항이 있는지, 확인해보자.
Deposit Protection
보증금은 법에 따라 제3의 기관에 의해 보험과 같은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을 확인하자. 주인이 보증금을 다 써서 없애고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보증금을 차감(Deduction)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 증서를 꼭 받아챙기자.
랜드 로드는 1도 손해보지 않을 거야 - 인벤토리 체크
계약 당시 부동산이 말하길, 들어갈 때 하는 인벤토리 체크 비용은 임차인이 지불하고 퇴거 시에는 임대인이 한다고 했었다. 현재는 임차 관련 법조항이 발의되어 레퍼런스 체크 비용과 함께 인벤토리 체크 비용도 임차인에게 물릴 수 없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링크) 다행이다, 관행적으로 주인을 위한 편의임에도 임차인이 부담해오던 인벤토리 체크 비용을 이제는 2019년 이후 법적으로 임대인이 내도록 되었으니!
업체써서 청소해라 아니면 물린다? - 무브 아웃 클리닝
퇴거 시 프로페셔널 클리닝을 하고 영수증을 첨부하라는 계약서 조항이 있었다. 필자의 계약은 2018년 2월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조항이 불법이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19년 바뀐 법에 따르면 더 이상 무브아웃 청소도 임차인에게 물릴 수 없도록 바뀌었다.(링크)
디포짓, 넌 믿을 수 없으니 6개월치 땡겨놓자?
흔히 레퍼런스 체크 시 재정증명을 할 수 있는 직장인의 경우는 보증금을 1.5배를 받았었고, 재정증명을 할 수 없는 학생의 경우 6개월치 까지도 보증금으로 내곤 했다. 하지만 현재는 한 달치 보증금(최대 5주치)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링크)
복지나 사회 약자를 위한 행정 제도가 발달된 나라일 것 같지만, 임차권의 보호나 권리 부분은 사실 우리나라의 제도에 아주 못 미쳐왔다. 오죽하면 가디언지에서 랜드로드는 사회의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기사 타이틀을 뽑았을까? 자본주의, 계급사회, 귀족사회라서 가진 자 중심인 게 더 심한 것이었을까? 땅에 집을 지어 내려주던 Lord이기에?! 그 법을 만드는 주도권도 그들에게 있기에?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