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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blie Jul 19. 2021

Parents Evening, 그리고 감동의 워크북

이채로운 영국 초등 생활

이름도 파티스러운 Parents Evening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며칠 전 Parents Evening이 잡혀서 아이를 집에 두고 가벼운 몸으로 학교를 향할 수 있었다. 때는 11월 초, 동지의 정점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4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땅거미가 지고 저녁 7시쯤 된 것만 같았다. 그날의 일을 이렇게 감상적으로 적고 있는 것은, 역시나 마음 편하게 아이를 엄마에게 맡겨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년에는 퇴근하고 하교한 아이를 다시 데리고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분주하기만 했다. 아이와 둘이 하는 영국 생활 내내 늘 숨을 몰아 참고 있는 것 같이 살았다. 의식적으로 정신을 한 번씩 차릴 때만 그 몰아 참던 숨을 내쉬었고 그제야 한 번씩 주변의 풍경, 나지막한 담 넘어 평범한 가정집도, 예쁜 베리도 그제야 눈에 들어오곤 했다. 가끔은, 혼자 영국에 왔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도 기회가 되어 혼자 가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어떤 다른 것을 느끼고 향기를 맡을 수 있을지.

 학교는 작년과 같이 부모들이 대기하는 동안 볼 수 있도록 아이들의 워크북을 깔아 두었다. 아이 이름을 찾아들고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들춰보았다. 작년에는 마냥 신기하던 것이 시나브로 몸에 배어 자연스러운 내가 사뭇 낯설게도 느껴졌다. 작년엔 한국의 교육과는 너무나도 다른 교습 방식이 빼곡히 박혀있는 워크북이 신기해서 막 넘겨보며 빠짐없이 사진을 찍었었는데. 오른손에 동생, 왼손에도 동생, 유모차에 아기까지 주렁주렁 데리고 와 유모차를 한 손으로 밀면서 선생님과 상담하던 어떤 부부에 대한 기억도 향기처럼 스쳐지나가듯 기억난다. 학교 후 다시 학교에 온 아이들은 신이나 보이기도 했다. 긴장 잔뜩 가슴에 꼭 끌어안고 여배우처럼 꾸미고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한국의 학부모 상담과는 9시가니 시차만큼이나 동떨어져 보였다.

 참, 이름도 파티스러운 Parents Evening은 학부모 상담이다. 학교에서는 때가 되면 Parents Evening을 하니 예약을 하라며 링크와 함께 이메일을 보내왔다. 하교 직후 시간이 순식간에 마감되는 가장 인기 있는 시간이었다. 보통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셋 데리고 등하원시키는 영국 사람들은 그 걸음을 두 번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보통 15-20분 정도의 간격으로 상담시간이 잡혀있고 7시가 거의 마지막 타임이다. 영국은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웬만하면 7시에는 올 수 있을 테니.


 그날은 작년보다 조금 더 담대하게 먹거리를 사 가지고 갔다. 영국에도 뇌물수수법 같은 Bride Act가 있지만, 선생님들은 해당이 없는지 아니면 그 법이 관용적인 것인지, 선생님들은 크리스마스나 학년이 끝날 때와 같이 때가 되면 으레 껏 받게 되는 학부모들의 선물을 마다하지 않았다. Parents Evening에 먹거리를 사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상상해보건대 며칠에 걸쳐 부모에게 그동안 학교에서 아이를 어떻게 교육했는지 아이는 어떤지 설명한다고 생각하니 참 피곤할 것 같았다. 첫해 Mrs. Sons에게는 분위기를 알 수가 없어서 오렌지 주스 한 병을 달랑 사갔다. 그럼에도 Mrs. Sons는 매우 고마워하며 얼굴에 기쁜 기색 가득 "Bless you!"를 한가득 돌려주었다. 이번에는 마실 것과 과자도 챙겨갔다. 영국 사람들이 변변하게 간식을 학교에서 제공받아 허기를 채우며 상담을 하고 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같은 상담실에 있을 다른 선생님도 신경이 쓰여 넉넉히 준비를 해갔더니, 깡마른 Miss Cole이 고맙다며 “Mrs. Gonzales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길래 돌아보니 Mrs. Gonzales는 또 플라멩고를 출 것만 같은 눈빛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이와 나는 Mriss Cole의 첫인상이 잊히질 않는다. 처음 학교 답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 차갑게 생긴 깡마른 Miss Cole을 보며 제발 저 선생님이 담임이 아닐 길! 하고 마음속으로 빌었었다. 다행히 1년이 넘도록 장난으로 ‘손’선생이라고 불렀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가서 안기고 매달려있는 Mrs. Sons가 담임이었다. KS2 단계가 되며 반이 섞이고 Miss Cole이 담임이 되었을 때 우리는 긴장했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알고 봐야 하는 것. Mrs. Sons가 가진 투박한 따뜻함과는 다른 편안하고 세련된 리더십과 친절이 있었다.

처음엔 딱 Winny the Witch의 마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키득키득

 아이와 나는 마음이 통했다. 둘 다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Miss Cole은 수영 수업을 위한 스쿨 트립을 돕는 나를 교실에 들어오게 해서 이들에게 소개도 해주었고, 마지막 날 아침에는 수업 시작쯤에 들어오게 해 주어 아이들이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기억을 남겨주었다.

She is your credit.

Miss Cole이 했던 많은 말들 중에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녀석이 처음 학교에 왔던 날을 기억한다며,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지 않냐며, 1년 반 만에 이렇게나 성장했다며 D는 너의 자랑거리라고... Credit 마치 백지수표처럼 들려왔다. 문득, 그런데 왜 한국에 돌아오고는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무녀리 같아 보이는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그렇게 푸짐한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직 시간은 4시대를 가리키는데 거리는 벌써 밤이다.



감동의 워크북


 숙제를 매일 내주기를 하나, 교과서가 있기를 하나, 한눈에 볼 수 있는 커리큘럼을 주길하나. 영국학교에서 아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알 방법이 당최 없다. 덩그러니 주는 건 '이번 학기에는 어떤 주제로 전과목을 해나갈 것이다.'라는 한 장짜리 마인드맵 같은 계획표가 다이다. 아이가 무엇을 배우고 있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아이를 통해 듣는 조각 이야기를 맞춰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학부모 상담에 가서 워크북을 보고서야 비로소 영국학교의 놀라운 배움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상담 순서를 기다리며 들춰봤던 워크북은 감동 그 자체였다. 과목은 영어, 수학, 과학, 사회건강으로 구성되는데, 각 과목의 워크북 앞에는 워크북을 어떻게 체크할 것이고 안내하는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크 심볼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우리와 다른 것은, 체크는 틀린 것이 아니라 맞은 것이라는 점! 재밌고 귀여운 표현으로 띄어쓰기는 Finger Space라고 아이들이 와닿도록 신체적으로 표현한다는 점!

Literacy 워크북의 마크 심볼와 체크리스트. 아이가 어떤 단어와 표현을 마스터했는지 체크가 되어있다.
아이가 읽을 수 있도록 칭찬과 코멘트도 달려있다. 수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워크북을 폈을 때 지난 수업 사진과 선생님의 코멘트를 본게 되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될까!

 아이가 아직 앞에 나서는 것을 많이 어려워할 때였다. 선생님은 아이의 감정까지도 세심하게 피드백하며 격려해주었던 것이다. 학교가 이렇게 아이를 키워줬기에 그렇게까지 빠르게 학교에 적응하고 영억 늘었던가보다. 어떻게 정원 33명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일일이 마음 담긴 코멘트를 달아줄 수 있는 것일까.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게 부끄러웠지?
하지만 너도 로켓 만든 거 우리 앞에 보여주는 게 좋았지?
마음을 건드리는 선생님의 코멘트


 수학 워크북도 심볼이 있고 핑크는 '퍼펙트!', 그린은 '다음엔 이렇게 하자', 퍼플은 '이건 좀 잘하자'라는데 웬만하면 그린과 퍼플은 휘두르지 않으시나 보다. 수학에서도 아이들의 개별적인 진도 체크가 눈에 띈다.

수의 어림과 도형을 이렇게 배우고 있었다. 첫 상담 때, 담임은 수학을 아주 잘하지는 않는데 수학적 문제가 아니라 그건 언어의 문제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이렇게 실물로 가르기 개념을 배우고 문제로 푸는구나~ 오오 드디어 그린펜이 등장했다! 집에서 수학이라곤 안가르쳤으니 그럴법도 했다.


 과학은 2학년이었던 당시, 한국에서는 3학년에 배우는 물질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다. PSHE라 부르는 사회 건강 과목에서는 도덕이나 정신건강, 그리고 위생과 같은 것을 가르치는 과목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가 Germ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손을 잘 씻었던가보다.


 그날, 워크북을 보고는 학교에 아이 배움을 의심 없이 통째로 맡기기로 했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반 전체로 교육한다기보다, 아이 하나하나를 정말 자세히 파악하고 이끌고 나가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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