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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blie Jul 13. 2021

어떻게든 상주고 싶어 안달난 영국학교

이채로운 영국 초등 생활

 있는 줄도 몰랐던 독서기록장을 받아왔던 첫날 쪽지 하나가 같이 왔다. 아이가 상을 받게 되었으니 조회에 같이 참석할 수 있도록 부모를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교 간 지 한 달인데 상이라니? 처음 받게 된 상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는 푸하핫 웃음이 나왔다.

첫 상. 그 명목은 무엇일까? 좀 다른 이야기지만, 항상 부모님/양육자에게 알림을 보낸다. 부모가 아닌 조부모나 다른 보살핌을 받고 있는 아이들 마음에 생채기가 덜할 것 같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같이 참석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이를 등교시켜 놓고 조회하는 장소로 갔다. 조금 기다리니 아이들이 반별로 차례로 줄지어 내려와 높은 학년은 뒤로 어린 학년이 앞으로 앉았다. 이때 질서를 아주 중시 여겼는데 아이들이 서로 잡담하는 것도 삼가토록 지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린 학년이 앉을자리가 없자, 선생님이 쓴 "Shuffle back"이라는 표현이 신선했다. 우리로 치면 "조금 움직여서 뒤로 가라"정도 일 것 같은데 Shuffle이라는 단어를 쓰는구나, 하나 배웠다.

아이들이 조회를 하던 작은 공간.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오프닝
호명을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나아가서 교장선생님에게 상을 받고 한 손으로 악수를 한다. 친구들은 큰 박수와 환호도 해주는데 우리 아이는 그게 부끄러워 상 받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한 학년에 50명 정도밖에 안되고 세 학년 밖에 없는 학교에서 매주 저렇게 많은 아이들에게 상을 남발하고 있다.

학교의 아름다운 직권 남용이다.
이렇게 웃으며 하는 기념 촬영이 상 받기의 마무리 과정. 나서는 게 어색해서 웃지 않는 분이 딱 한 분 계신다. 상 받는 걸 싫어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난감하다.




"잘 적응했어요" 상

 와... 그날 아이가 받았던 상은 "Settling into our school so well" 상이 었다. 학교에 와서 잘 적응했다고 상을 주다니! 상상도 못 한 기발한 상 아닌가?! 가만 생각해보면 그보다 칭찬할 만한 일이 없을 정도로 전학은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맞아, 한국에서도 전학은 어렵지. 아이에겐 큰 모험이야.
 우리는 왜 평범하지만 어려운 것을 칭찬할 줄 모르는 걸까?
"잘 적응했어요" 상. 그리고 선생님이 찍어준 가족 사진.



(절대적으로 잘했다는 건 아니고) 잘 발전했어요 상

 그 이후로 아이는 차례차례 "읽기에 큰 발전이 있었어요"상, "읽기와 쓰기에 큰 발전이 있었어요" 상을 차례차례 타 왔다. 우리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상을 주어서 이게 뭐지 싶으면서도 황송하고 작은 일에도 행복해졌다. 아이의 작은 성취 하지만 큰 노력을 부모로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기도 했다.


읽고 쓴다고 상을 주네?
읽기 발전 상과 읽기 쓰기 발전 상

 2018-2019 교육 연도(Academic Year 회계연도처럼 학년을 시작하는 한 해를 의미한다.) 2학년이 끝날 때는 종합적으로 많이 노력하고 발전한 것에 대해 증서 개념의 Certificate이 아니라 Prize를 줬다. 수식어가 살짝 더 붙어있는데 그냥 Progress에서 "Accelerated" Progress로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다.

2학년을 마치며 주었던 상



드디어 받았다!! 100% 출석상

 영국 학교는 출석을 정말 정말 중요시 여겼다. 학교 뉴스레터에 늘 출석률을 반별로 기재해 알리고 출석률이 가장 높은 학급에겐 조회시간에 큰 박수와 함께 학교 마스코트 곰돌이를 한 주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개근을 했다고 그렇게나 호들갑을 떨며 상을 주다니
무슨 상일까 했는데, 드디어 100% 출결 상을 받게 되었던 초대장. 무슨 상인 지는 절대 미리 안 알려준다.
자랑스러운 100% 출결상!



Dojo Champion

뭐라고? 도조? 스펠링이 어떻게 되는 건데?

 아이가 처음에 도조 포인트라는 게 있다고 했을 때 또 구글링에 들어갔다. 확 와닿진 않았지만 우리로 치면 칭찬스티커 같은 거였다. 나중에서야 한국에서도 영어유치원에서는 도조포인트를 주는 것이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거나, 수업이나 학교 생활에서 선생님을 돕거나, 친구들을 돕거나 하면 포인트를 주는 것이었고 일정 기간 동안 그 포인트가 가장 높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 상이 뜻깊게 다가왔던 것은 아이가 학교생활에 이젠 겉돌지 않고 자신의 사회로 만들어 지내고 있다는 뜻이라 여겨져서 안심이 되었다.

모범생의 피는 역시 못 속인다며, 그런데 아이러니는 상은 받기 싫다고, 그래서 그럼 모범적으로 생활하지 말라고 하니 그건 또 안된다고. 어쩌란 말이냐.
도조 챔피언 상을 받았던 날은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가는 Mufty Day였다.



이런 상도 있었누? 별의별 상을 다.

 귀국을 한 달 반 앞둔 시점, 방학식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그만 다닐 예정이었기에 학교를 떠나는 마음이 가득했던 때 즈음이었다. 마지막 초대장이 왔다.

그날은 아이가 받는 상의 명목을 선생님이 불러주는데 약간은 의아했었다. 짜잔~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은 동명의 한국 친구가 늦게 등교를 해서 조회실로 들어왔을 때서야 영문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가 받을 상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에게서 상을 다시 회수해가서 그 아이에게 주었다. 당장이라도 플라멩고라도 출 것처럼 늘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스페인 출신의 곤잘레스 선생님은 이 상황을 해소하고자 더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며 아이에게 상을 다시 주셨다.

오페라의 한 장면 같은 곤잘레스 선생님의 해명 장면. 아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순간 언제 끝나냐며 상 받는 걸 어색해하고 있다. 아메리칸식(?)으로 포켓에 손까지 찌르곤 말이다
아마 끝났다는 기쁨의 미소로 기념촬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곤잘레스 선생님 표정이 한결 편해보이신다. 감사해요 미스 곤잘레스. 그립네요.


 아이가 정정해서 받은 상은 화려화려한 "호기심"상이었다. 이 상을 받아서 뿌듯했던 것은, 본인의 본성을 다 드러낼 만큼 학교 생활에 완벽히 적응해서 다녔구나 싶어서였다. 녀석은 정말 호기심이 많은 녀석인데, 한국에서도 장소와 사람에 대한 낯섦 때문에 호기심을 억누르곤 했었기에 말이다. 호기심 상, 원래 있기는 한 상인지도 궁금하다. 영국은 챌린지를 중시 여긴다. 학교에서도 자신의 상태에 답보하지 않고 노력하는 챌린지를 중시 여긴다는 것을 뉴스레터나 알림, 독서기록장의 선생님의 기록들을 보면 느낄 수 있었다. 호기심은 챌린지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다 하다 호기심상도 있구마잉


 여러분, 지금까지 상들을 보시면서 발견한 게 있으신가요?


 그렇다. 모든 상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열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험을 봤는데 제일 잘한 10명에게 주는 그런 상이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내가 노력하고 발전했을 때 주는 상들이라는 게 한국인으로서 내가 받던 상과 개념적 차이가 너무 컸다. 처음에는 정착 잘했다고 상을 주더니, 그다음에는 읽을 줄 안다고 상을 주고, 다음에는 쓸 줄 안다고 상을 주고, 마지막에는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참여를 다방면으로 열심히 한다고 상을 줬다. 처음에는 웃음이 났고 황당했지만 점차 상을 받을 때마다 그 작은 칭찬들이 '타지 생활 잘하고 있는 거 맞다.'며 나까지 따뜻하게 안아주는 듯했다.

가장 잘하는 건 아닌 거 알지만, 그래도 우리 꽤 열심히 잘 살았지?

 영국 사람들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행복한 것이, 영국 사회가 평화로운 것이, 어릴 때부터 모두가 최고로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나를 기준으로 내가 열심히 하고 발전해가면 된다는 것, 그런 것을 충분히 칭찬받아왔기 때문일까? 집에만 있어도 치열한 한국살이 1년 반, 영국을 몰랐으면 모를까, 한국 고단하다. 영국의 느슨함일지 평화로움일지가 어쩔 수는 없지만 막연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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