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ese New Year 아니고? 아이코의 교양과 다문화적 사려깊음
2019년 2월 5일. 영국에서 맞는 두 번째 설날이었다. 설을 앞두고 있노라니 생각이 난다. 그해 그 설날.
Happy Lunar New Year!
등교 시간에 학교 앞에서 만난 아이코가 레이카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특유의 착한 미소와 함께 음력설 인사를 했다. 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국 명절이 되면 두 부류로 나뉘는데, 더욱 외로워지거나, 어차피 평일이니 그냥 잊고 지내거나 그렇다. 첫 번째 설은 정착과 첫 출근으로 정신없이 지나가서 영국에서 설을 지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구정이었지?
두 번째 설은 그렇게 갑작스레 아이코의 인사로 설이라는 느끼면서 아이와 둘이 나던 영국 겨울 앓이에서 깨어났다.
아이코는 중국인 남편을 둔 일본인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로 구정을 쇠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도 중국인이고 대부분 영문권 사람들이 구정을 Chinese New Year라고 하니 Happy Chinese New Year라고 쉽사리 할 수 있었을 텐데, Lunar New Year라고 꼭 꼬집어 ‘음력’이라고 해준 건 사려 깊음이 아니었을까.
그때 한창 외국살이를 앓고 있었다. 유럽에 사는 한국인들이 주로 그렇듯, 화사하게 좋은 날씨가 지속되는 봄여름가을에는 잘 살다가도 겨울이 오면 냉기도는 집에서 가족 친지 없이 지내느라 향수병이 오곤 한다고 한다. 가족이 없는 게 문제인지 발바닥부터 전해오는 구들목의 온기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한국보다 훨씬 따뜻한 런던 겨울이지만 겨울은 힘겨웠다.
향수병은 아니었지만 외국살이를 힘겨워하고 있는 건 맞았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맺어나가기 고단했고 모든 걸 피하고 싶었고 일과가 끝나면 집에 들어와 박혀있을 때였다. 잠시 영국에 와서 같이 지내던 엄마도 8월 말에 돌아가시고, 연말에 남편이 다녀간 뒤로 앞으로 언제 다시 가족이 올 지 모르는 채로 길디 긴 영국의 겨울을 이겨나가고 있었다.
아마 아이코는 그런 나를 읽었었던 가보다. 난 그날 고해성사하듯 “사실 나 요즘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지내고 있었어요. 모든 게 고단했어요”라고 문자로 털어놓았다. 타향살이 20년 선배인 아이코는 그럴 때가 있노라며 많은 말이 아닌 말로 미안했던 나를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한중일 삼국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서로 가장 익숙하고 장단을 잘 알기에 민감한 부분이 있지만, 또 가장 편하기도 하고 잘 알기에 배려하고 친해지기도 쉬운, 낯선 나라 영국에서도, 그런 미묘한 관계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