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만에 12,000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처칠의 리더십, 런던 스모그
코로나에 대응하는 각국 정부의 리더십은 각양각색이다. 영국은 그중에서도 양극화된 대응방식을 보여주는 나라이다. 기초과학이 탄탄하고 자본을 많이 투입하는 영국은 백신을 빠르게 개발했지만, 최근 일 발생 환자 수는 4만을 찍었고, 1일 사망자를 1천 명을 찍기도 한다. 이러한 영국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것이 크라운 시즌 1의 제4화 Act of God이었다. 단 4일 만에 런던 시민 12,000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런던 스모그 그리고 영국의 영웅적 총리 처칠, 영국의 리더십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제4화는 듀크 오브 에든버러, 여왕의 남편 필립의 비행으로 시작한다. 런던 스모그가 소재인 편에서 왜 필립공의 비행 훈련으로 장면을 시작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야기가 흘러가며 내각 회의에서 늙은 처칠의 좁고 늙은 식견에서 밝혀진다.
명색의 공군 수장인데 비행을 못해서 되겠냐는 필립공, 필립공에게 비행을 가르치는 전쟁영웅인 피터 타운센드는 마가렛 공주의 불륜남. 영국 현 왕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적나라하게 다룰 수 있을까.
그중에서도 필립공의 정면샷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자신의 존재감, 자유의 박탈, 역할의 부재, 허수아비. 모든 불만으로 반항아 같은 필립공의 최근 탈출구는 새로운 취미, 비행이었다. 비행은 커녕 자동차나 보행자를 위한 시야 확보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40마일의 스모그, 그 두터움만큼 마음의 갑갑함도 깊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날 할머니에게 왕권에 대한 조언을 들으러 가기로 되어있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차를 운행할 수 없다는 말에 걸어간다. 여왕마저 걷도록 만든 스모그였다.
영화가 런던 스모그를 잘 재현하였다. 실제 런던 스모그 때 사진들을 보면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피워대는 굴뚝의 연기들이 고스란히 쌓여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다.
영국의 기상청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처칠이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상 변화의 위험을 알리는 레터를 꾸준히 보낸다. 처칠 이전 총리에게도 이미 전문가들은 런던 내의 화력발전소를 이전하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처칠 하에서 일하는 정부 각료는 그 정보를 들고 노동당 당수를 찾아간다. 왜? 그랬을까?
미국 피츠버그에서 이미 런던 스모그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고, 양당이 조사단을 구성하여 진상조사를 하였었고, 런던에도 공기 청정 구역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만들었었지만, 하등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처칠의 손에서 사라지고 말았기에 그 누구도 그 중요 문서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경제가 여전히도 건실하다고 믿게 하기 위해 유난히 추웠던 1952년 겨울, 석탄을 떼라고 정부는 권장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 정부 관계자는 독설을 뿜어내는데, 처칠이 이끄는 내각에 대해 "이것은 정부가 아니다. 망상에 취한 폭군 하나도 내쫓지 못하는 우유부단하고 겁먹은 노인네들의 무리이다."라고 무섭게 평하고 있다.
처칠은 세계 2차 대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여겨지는 영국의 영웅적 총리이다. 이십 대 초반의 처칠은 자신의 자서전에 따르면 직접 전쟁에 참여했을 때 고리타분한 기성 전문가들의 뜻을 따르지 않고 혁신적 작전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한다. 그런 그가 나이가 들며 어떻게 된 것일까. 보수적이 되는 것은 나이 탓인 것일까, 권력 탓인 것일까? 처칠은 이리도 실망스러운 리더였던가?
그 겁쟁이 노인네 내각 위원들도 더는 안 되겠던지, 스모그에 대해서 논하자고 한다. 그러나 처칠은 회의 탁자를 내려치며 날씨는 때로는 맑기도 하고 태양이 많이 내리쬐면 가뭄이 되기도 하고, 날씨가 좋고 나쁨은 언제나 영국에 있는 일이고 그저 비난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며 "Act of God"이라고 소리친다. 날씨는 신영 영역이라나? 날씨는 신의 영역이나 재난을 키울 것인가 줄일 것인가는 인간의 몫일 수도...
그가 런던 시민의 목숨을 뒤로하고 시급한 안건으로 내세운 것은 필립공의 위험한 취미생활 문제였다.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있던 처칠에게도 혈기 왕성하고 변화의 주역이었던 젊은 날이 있었다는 것이라도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스물네 살 처칠의 비서는 어느 날 사무실을 나오다 젊은 날의 처칠 자서전을 읽고 처칠에 대한 존경을 마음에 품게 된다. 그저 사무실의 꽃 같은 자신과 달리, 전쟁에 나서고, 자신의 나이에 책을 내고 변화를 이끈 처칠에 대한 존경, 동시에 작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 곳곳의 젊은이에게 선언한다. 세상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다. 친절해라, 하나 사나워라. 현재는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을 원한다. 변화의 역할을 멈추지 마라.”까지 되뇌었을 때 처칠은 그만하라고 한다. 아마도,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젊은 날의 자신으로부터 아픈 충고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되묻는다. "그 젊은 이로부터 뭔가를 찾았나?"라고. 처칠의 일그러진 얼굴은 참 씁쓸하고 슬퍼 보였다.
스모그 사태를 거들떠도 보지 않던 처칠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의료 현장에 가게 된 것은 그의 비서에게 설득당해서였다면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라 동화였을 것이다. 그 비서가 길을 가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버스에 치여 즉사하는 일이 발생한다. 수많은 시민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처칠은 그녀를 보러 병원에 가고 그제야 상황을 인지하게 되며, 여왕의 긴급 접견 전언을 접하며 사태에 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한다. 여왕은 그를 왜 불렀을까?
사실은, 처칠이 의료현장을 방문한 일도, 언론이 처칠의 리더십을 높이 산 기사를 낸 일도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잠시나마 젊은 날의 그로써 흔들었던 비서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 드라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체로 선왕의 방식을 계승하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길을 가는 엘리자베스 여왕. 선왕은 내각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일을 삼가해 왔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마침내 처칠에게 사직을 권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하늘은 조금은 더 처칠의 편이었을까? 런던 스모그 4일째, 신은 안개를 거두었다.
처칠을 접견한 여왕의 재치로, 처칠은 지위를, 필립공은 (스모그 보다 위험했던) 취미를 지켰다고 한다, 아마도 여왕은 평화를.
처칠은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스모그 사건 당시 단 4일 만에 3,500명에서 4,000명이 죽은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최근 과학 통계로는 12,000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한다고 마지막 부분에 의미심장하게 기록하고 있다. 아래 표에서 12월 5일에서 9일 사이 일 사망자의 수가 900명까지 치솟고 그 이후로도 사망자 수가 500명 정도로 높게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천재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여왕 남편의 위험한(?) 취미생활이나 문제 삼고 있던 처칠이 인재로 대응한 재난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도시재생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 된 테이트 모던의 전신이 스모그의 주범인 화력발전소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재미있다. 아마 한번쯤 미술관 치고 건물이 터프하다고 느꼈다면 당신의 시선은 예리하다. 테이트 모던은 영국 산업의 주역에서 런던 스모그의 주범이 되었고, 결국 화력 발전소는 쫓겨나야만 했다. 그 이후 오랜 시간 방치되며 도시 슬럼화의 중심이 되어 큰 골치 덩어리가 된 적도 있다. 문화의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금이 테이트 모던의 건물 생애 중 가장 평화로운 때가 아닐까.
영국의 공공사업에서 어디든 빠지지 않는 이슈가 공기질이다. 도시재생사업을 할 때도, 스마트시티나 IoT 사업을 논의할 때도, 심지어 상업지구 및 경제 활성화 사업을 다룰 때도 실무적으로 50%는 공기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교통체증이 생기면 우리나라는 보도를 줄이거나, 녹지를 줄이거나, 심지어 집을 깎아내서라도 도로를 넓힌다. 영국은 체증이 생기는 길이 생기면 2차선을 1차선으로 만들어버리고, 1차선은 편도로 만들어버린다. 불편하면 더 불편해서 다니지 않게 하겠다는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쇼핑센터가 집결된 상업구역을 활성화시키겠다면서도 ‘좋은 성장(Good Growth)’이라는 명제 아래 주차와 차의 통행량을 줄일 방법을 더 많이 논의한다. 이 얼마나 상반된 일인가? 모든 연관성 없는 사업에서 공기질을 논하고 있다는 것도 우스웠지만-"이 대목에서 이게 왜 나와?"같은 말이다- 서로 상반된 가치를 실현시키겠다고 낑낑거리는 것을 보면, 속도전과 뒤집기의 귀재인 한국인으로서는 '뭐 하자는 건가?'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크라운 시즌1의 4화, 신의 뜻이라던 런던 스모그 편을 보고 있으면 무엇이든 잘 잊지 않고 늘 되새기는 영국인들에겐 어마어마한 충격, 머리와 가슴에 깊게 파서 새겼던 사건이라는 게 온전하게 와 닿는다. 그들에게는 '도둑질하면 안 돼.', '사람을 죽이면 안 돼.'와 같이 공기질은 기본적 가치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모든 사업에서 공기질 화두가 튀어나온다 해도 웃지 않고 함께 진지해질 수 있다.
영국은 실패가 많은 나라이다. 그것은 여느 나라처럼 사람의 욕망 범벅인 정치 문제도 있지만, 무엇이든 먼저 겪는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진국이라는 단어에서 읽혀지는 것은, 대단한 나라, 잘난 나라, 따라야 할 나라가 아니다. '먼저 겪어본 나라'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전철이 없기에 실패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선두에 있었고 대부분의 기술과 제도의 처음을 겪었기에 실패도 그만큼 많은 나라였다. 하지만 영국만의 특별한 힘이 있다면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생 아로새길 것처럼, 일어났던 일들은 끊임없이 리뷰한다.
런던 스모그도 그랬다. 1952년 런던 스모그를 겪고 1956년 공기청정법이 나왔다. 그전까지는 경제적인 이유로 경탄(Hard coal)을 쓰는 것에 대한 제한이 없었다. 공기청정법 발효 이후로는 난방 연료로 연탄과 같이 유해물질이 덜 나오는 석탄이나, 가스, 전기 등을 사용하게 했다고 한다. 요즈음은 전기 난방을 하는 것이 보통이기에 집집마다 솟은 굴뚝은 실제 사용되지 않고 런던 풍경의 낭만을 담당하고 있다.
작년 황사가 심했을 때 서울시가 공공주차장을 폐쇄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많은 비난도 들렸다. 중국발 미세먼지를 겨우 새발의 피인 공공주차장을 폐쇄하는 것으로 대응한다고들 말이다. 영국식이라 생각했다. 머리가 심하게 좋은 개개인의 집단이자 효율이 너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당장 작동할 수 있는 방식인가 의문이 들었었다. 공공시설 주차를 못하게 한다고 차를 안갖고 나올 한국인이던가? 주차할 다른 기막힌 방법을 머리 굴려 찾아낼 한국인이 아니던가.
장기적으로 저성장 고도화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나라도 종국에는 받아들이게 될 방식인지도 모르겠으나 모든 제도는 국가와 국민의 근성, 그리고 사회의 문화에서 출발해야만 한다는, 더 이상은 선진국-먼저 실패해본 나라-의 방식을 실패까지 카피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가 알고 있던 영웅 처칠은 위기 대응력이 떨어지는 고집 센 영감이었고, 단 4일 만에 자국민을 12,000명이나 죽음으로 몰아넣은 무능한 리더십의 총리였다니. 영국의 리더십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게, 코로나에 사회 약자들을 밑거름 삼고 있어 보인다. 처칠 때와 같이 부실한 일반 공공의료로 취약계층은 죽어나가고 있고, 중상류층은 돈을 많이 내고 사립병원에서 살아남고 있을 것이다. 백신을 개발하는 기초 과학 기술과 자본 투입력은 분명 영국이 부인할 수 없는 선진국이나, 많은 서민들의 희생 위에 서는 것 같아 보인다. 만약 그 자본을 공공 의료 분야에 쏟았더라면 구할 수 있는 국민 목숨의 자릿수가 바뀌었을 것이다. 요즘 백신 확보 문제로 K-방역의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진 기사가 많다. 안타깝게도 일반 의료와 첨단의료 둘을 다 잡을 수는 없는가 보다. 재원은 한정적이기에 결국 선택의 문제가 남기때문 아닐까.
영국의 최대 이슈, 다이애나 왕세자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시즌 4가 최근 개봉되었다. 영국 정부에서는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닌 픽션이라는 문구를 달라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고, 윌리엄 왕자 등 왕실 사람들도 유감을 표했다고 한다. 크라운을 보다 보면, 어떻게 현존하는 여왕의 남편을 반항아에 희대의 바람둥이로 묘사할 수 있는지, 여왕이 즉위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였다고 드러낼 수 있는지, 차기 왕위 계승권자인 찰스 황태자를 불쌍한 바보(?)처럼 그릴 수 있는지, 참 담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이애나 왕세자비 이야기는 영국 황실에서도 가만히 있기 어려운가 보다.
시즌 4에 대한 이야기는 부스럼이 가라앉을 때까지 살짝 기다려보기로 하고, 다음에는 철의 여인 대처가 정말 영국을 위기에서 구하기만 한 총리였는지, 현재 영국이 겪고 있는 그 여파와 함께 리뷰해 보기로 하자.
출처 : [드라마 장면 - 넷플릭스 트레일러, Sony Pictures Home Entertainment @ YouTube], [기타 그래프 및 자료-HistoriyPod], [런던 공기질 수치-Airqual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