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랜더

함부로 떠나는 게 아니었어, 영혼의 일부는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머무니까

by Scribblie

그리움은, 그곳 혹은 그 대상에 영혼의 한 조각이 남겨진 것이다.

나의 영혼 부스러기 한 줌은 영국에 남겨져있나 보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웃랜더를 보며 깨달았다.

https://g.co/kgs/jvycR7

1975년에서 200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778년에 갑작스레 떨어진 클레어는 그 험한 3년의 세월을 뒤로 다시 20세기로 돌아오지만,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다. 딸 브리애나의 말처럼 정신의 일부분이 종종 어딘가에 가 있었던 것은 클레어가 단지 제이미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하기엔 영혼 한 줌이 떨어져나가 보인다. 18세기에서 아웃랜더였던 것인지, 20세기에서 아웃랜더인 것인지 알 수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아웃랜더는 나의 거울이 되었다. 왜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이방인인 것인지. 영국에서도 돌아올 때까지 이방인이었는데, 고국에 돌아와서도 아웃랜더라니... 영국에서 같은 시기를 공유했던 한국 사무실 사람들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출근을 했어야지, 복직을 안 했으니까 그렇지." 2년을 살다와도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그 시간은 접어놓은 듯 없어지고 몸이 복귀한다고 했다. 영국 향수병 같은 건 휴직할 00 씨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어도 자꾸 차 머리를 들이대는 우회전 차량에 아직도 적응이 안되고. 사람인지 차인지 구별 없이 달리는 오토바이들도 그렇고. 미친 듯이 속도 내어 주워 담아야 하는 마트의 계산대, 집에 앉아 있어도 긴장되는 이 모든 한국의 텐션과 속도. 한국의 옷 치수 신발 치수도 다시 습득 중이다. 처음 영국에 갔을 때 어떤 호칭이 나에게 맞는 건지 영국 사이즈를 익히던 때처럼 말이다. 돌아왔을 때는 이마트에서 새벽 배송이라는 것이 된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었다. 신문명이라니... 다행이다 바지런한 남편이 이미 익숙하게 익혀놓은 상태였고, 아직까지도 마트 주문의 주도권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세인스버리의 세일하면 사던 6개 2파운드짜리 매그넘 아이스크림의 가격은 기억해도 한국의 물가는 모르겠다.

처음부터 영국에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처럼 살다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이 이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기처럼 백지상태에서 영국을 바라보기로 했었고, 어떤 편견, 한국에서의 기준을 아무것도 적용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온전하게 알고 난 뒤에 나쁜 것과 좋은 것을 판단하기로 했었다. 그렇게 지나치게 영국에 적응해버린 나는, 귀국 1년이 지나도록 38년을 살았던 한국에서 아웃랜더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아웃랜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글은 아웃랜더에 대한 리뷰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웃랜더가 스코틀랜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득 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눈에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장관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원래도 인간의 피조물에 더 흔들리는 건축쟁이라 그런 것인지.


시간의 평행이론에 기초한 이야기라는 것도 매력적이다. 고등학교 때 다니던 국영수 보습학원의 수학선생님은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었다. 수학 외에 물리 이야기도 자주 들려주셨는데, 그때 시간 여행 이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이 일직선에 존재하지만, 그 시간들은 축이 여러 개가 존재하여서, 지금 현재 나의 시간 축에서 거꾸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의 축으로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아웃랜더의 시간 여행이 딱 그 방식이다. 그래서 클레어가 18세기로 여행을 가서 3년을 살고 돌아왔을 때, 20세기의 시간도 3년이 흘러 1948년이 되었던 것이다.


아웃랜더를 보며 영국에서 살면서 왜 그리도 스코틀랜드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지 조금 반성했다. 싫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여력이 닿지 않았을 뿐이기에 조금만 반성했다. 귀국 전에 주변인들의 추천으로 레이크 디스트릭트 여행과 3시간 거리의 하이랜드 하이킹을 추천받았더랬다. 아이와 둘이 감히 그곳에 가볼 생각을 했었지만, 귀국 정리는 차 팔랴, 의자 팔랴, 식탁 팔랴, 청소업체 선정하랴.. 만약 여행을 갔더라면 어디 하나 크게 구멍이 났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발디뎠던 가장 북쪽은 버밍엄으로 잉글랜드에 그치고 말았다.

'스코틀랜드인'하면 영국인들도 못 알아들을 영어를 쓰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다. '영화 원티드 주인공인 제임스 맥어보이가 "스코티쉬 영어에 대해 사람들이 Whining 한다고 하는데"라며 인터뷰한 기사와, 아이가 즐겨보던 케이티 모락이라는 씨비비 프로그램의 발음들이 중독성이 있어 나는 책을 읽어줄 때 나도 모르게 뒤끝을 올려가며 영어를 하던 때가 있었고, 아이는 한 때 평소에도 스코티쉬 발음으로 영어를 하던 때가 있었다. ' 정도가 나의 스코틀랜드의 전부였다.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49176525

아웃랜더에서는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인에게는 야만적이라 평가되었지만, 직설적이고 솔직하며 신의가 있고 명예를 중시하고 단순무식(?)하여 목숨을 잘 거는 걸로 되어 있다. 잉글랜드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스코틀랜드인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잉글랜드인 특성에 대한 희화화도 볼 수 있었다. Civilised(영국식 스펠링으로), 문명화(?)되어 있지만 이중적이며 가식적이고, 때로 진실한 잉글랜드인들은 명예롭게 빚을 잘 갚는다는 정도이다. 역사 주인공으로서의 시선 앵글이 바뀌면 어떻게 다르게 비치는지, 재미나다.

활동 반경도 참 넓다. 시대만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로케이팅은 프랑스와 자메이카, 아메리카 대륙으로 뻗어나간다. 18세기 영국이 Great Britain을 정착시키던 혼란의 역사적 배경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 역사, 미국의 독립 전쟁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그 시기 다양한 계층과 주체들의 다양한 입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클레어의 시선을 빌어 조지 워싱턴을 직접 눈 앞에서 보는 가상현실에라도 와 있는 기분도 누려볼 수도 있다.

영국에 영혼 한 조각을 남겨두고 와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모자라, 요즈음은 하루 5-6시간씩 시청했던 아웃랜더때문에 18세기에 정신을 놓고 현실에 돌아오지 못하는 중독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덕분에 때 아닌 영어가 늘고 있다. 영국에서보다 영어가 더 늘고 있는 것 같은 웃픈 현실.


그나저나 나의 집 나간 일부 영혼은 영국에서 돌아오긴 하는 걸까?

그저 생에 한 번쯤 영국에 들러 그 영혼을 한번 만나고 돌아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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