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은 칵테일 같아

by 김서니

아버지 환갑이라 다 함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느 가족 여행처럼 웃고 울고…는 아니고

짜증 내놓고 미안해하길 반복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가족여행 십계명을 낭독하지 않고 출발한 탓인 것 같은데요..

사실 핑계입니다.

이렇게라도 책임을 돌리지 않으면 제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부모님의 불평불만에 짜증으로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지요.

그에 멈칫하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보는데, 너무 죄스러운 겁니다.


그러지 말자 매일 다짐하고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후회할 짓을 도대체 왜 하는 것이냐 미련한 인간아, 하면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맞불작전을 펼칩니다.

다 이런 거 맞지요..?

그렇다고 해주실래요..?


그래도 다행히 후회스럽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벤트가 어색한 아빠를, 깜짝 파티로 더 어색하게 만들었고 (계속 얼른 정리하고 밥 먹자고 말하심)

감사패 낭독하다 울컥해 열네 줄짜리 글을 단 네 줄밖에 못 읽게 만들었으며

(아빠의 용돈을 걸고 한) 온 가족 병뚜껑 멀리 보내기 게임은, 결승전에서 실수한 막내 덕에 용돈을 지켜낸 아빠를 웃게 했지요. 이 모든 것은 영상으로 남았습니다.

혼자 방에 들어가 영상을 보는 아빠의 모습을 또 한 번 (몰래) 카메라에 담은 자매들의 숨죽인 웃음은 아빠의 ‘황당+웃참’하는 애매한 표정으로 끝이 났고요.


파티 준비하기를 잘했다, 감사패 열심히 쓰기를 잘했다, 가족여행 하기를 잘했다, 근데 짜증은 좀 내지 말걸 그랬다(…) 싶었죠.


좋은 추억과 죄스러운 마음, 감사한 마음이 뒤섞인 여행이었습니다.


가족여행은 정말, 단순하게 ‘좋았다’ ‘즐거웠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쓴맛, 단맛, 신맛 등 다양한 맛의 음료를 섞은 칵테일처럼

여러 감정이 녹아든 시간이라 해야 할까요.


달달, 청량해 목 넘김이 기분 좋은 칵테일 가족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심성이 고와지려는 딸의 노력이 가장 필요하겠지만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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