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교수들 1”
이번 화(話)는 대학을 다니며 마주치게 된 몇몇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교는 학부 학생 수만 30,000명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에서의 몇 년 동안, 같은 수업을 등록했던 사람들만 수천명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도 없었음은 물론이며, 모든 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인사라도 한번 나눈 사람들이라도 30,000명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숫자였다. 그나마도 1-2번 인사하고 나면 나와는 관계 없는 타인이 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통학 학교’라는 별명이 있는 만큼 통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였을 수도 있고, 많은 숫자의 학생들이 복수전공을 했기 때문에 학과별로 뭉치게 되는 유대감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내가 다수의 사람들과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앞서 밝힌 이유들로 인해, 대학교 시절을 떠올릴 때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주로 교수들이다. 이제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기 때문에 조교수였던 사람들은 부교수 정도가 되었을 것이며, 그 당시에도 나이가 들었던 노(老)교수의 경우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겠으나, 내 기억 속에 이들은 여전히 또렷하다. 이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의 자유로움 그리고 타인에 대해 대가나 보수를 바라지 않는 친절과 배려를 가르쳐 주었다.
첫번째, 바닥을 뒹구는 교수
천문학 개론 수업을 가르쳤던 교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이미 10년도 더욱 전이니, 그 당시 그는 나이가 젊은 교수였을 것이다. 아마도 30대 후반이었을 것 같은데, 많아 봐야 40대 초반 정도였을 것이다. 이제는 부교수가 된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천문학 개론 수업에서는 매주마다 태양계의 행성들, 겉보기등급/절대등급, 달 모습의 변화 등을 소개했는데, 계산 문제가 거의 없어서 꽤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수업은 둥근 형태의 빌딩으로 된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는데, 3층까지 빽빽이 들어찬 의자들은 무대가 있는 벽면을 제외하고는 둥글게 무대를 보고 있는 형태였다. 마치 콘서트 홀을 연상케하는 모습의 건물이었는데, 수업이 있을 때면 교수 한 명은 무대에 홀로 나와서 2시간 정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장면이 펼쳐졌다. 2층이나 3층에 있을 때면 교수가 너무나 먼 거리에 있어서 실눈을 뜨고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날은 천왕성을 소개하는 날이었다. 천왕성은 태양계의 행성들 중 혼자서만 누운 듯이 자전한다. 이 젊은 교수는 강당에 걸린 큰 스크린을 통해 천왕성의 자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마 많은 학생들이 큰 대강당에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교수가 돌연 바닥에 드러눕기 시작했고, 그의 목소리가 머리에 걸친 마이크를 통해 온 강당에 쩌렁쩌렁 울려 댔다 - 자신이 천왕성이 자전하는 모습을 몸으로 직접 보이겠다고.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곧이어 그는 ‘자신의 머리부터 발까지 이어지는 가상의 선이 천왕성의 자전축’이며 ‘이러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자신을 누운 채로 데굴데굴 구르면서 (자전을 하며), 무대 위 중앙에 놓인 의자를 마치 태양인 양 크게 돌기 (공전을 하기) 시작했다. 무대 위를 온몸으로 청소하고 있었다. 한참을 굴렀다. 다른 행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꼿꼿이 일어섰다.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동시에 무대 중심의 의자를 크게 돌았다. 그의 모습에 대다수의 학생들은 눈을 초롱이며 집중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설명 하나를 위해 교수가 강의실 바닥을 구르다니. 내가 가졌던 ‘상상의 대학교’ 모습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좋은 방향으로. 그가 무대를 구른 후에도, 아무도 비웃지 않았다. 그가 보였던 모습은 그가 가졌던 ‘교수로서의 권위’에 그 어떠한 흠집도 내지 않았다. 그에게서 배웠던 것은 가르침에 대한 열정 뿐만이 아니라, ‘권위’에 대해서 배웠다. 권위는 ‘권위적인’ 모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위가 아니라 단지 공포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권위적이지 않을 때 권위를 가질 수 있음을 배웠다. 언젠가 강의실 앞에 서게 되는 기회가 온다면 나는 그 곳에서 구를 수 있을까?
두번째, 노래하는 교수
언어를 배울 때, 노래를 통해서 배웠던 경험은 초등학교가 처음이며 마지막이었다. ‘헬로, 봉주르, 니하오, 안녕!’ 혹은 ‘제뉴어리, 페브러리, 마치 --’를 읽으면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면 나와 같은 옛날 사람이다. 아무튼, 이렇게 노래로 언어를 배우는 행위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시는 경험할 수 없었다. 이런 식의 학습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나 하는 유치한 학습방법이라는 생각들이 만연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이 방법은 꽤 유용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가? 지금도 영어로 달(月)을 헤아릴 때, 저 노래를 종종 흥얼거릴 때가 있잖은가.
그래도 대학교에서 노래를 부르며 언어를 배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노래 하는 교수를 만났던 곳은 라틴어 교실이었다. 초급 라틴어를 가르쳤던 교수였는데, 박사 과정을 마친지 1년 정도 되었을 법한 아주 젊은 교수였다. 첫 수업부터 항상 미소 짓는 표정과 이따금 내던지는 유쾌한 말 덕분에, 긴장이 깔렸던 ‘라틴어 초급’반의 수업은 첫 날부터 분위기가 많이 풀렸다. 수업이 더욱 느슨해질 수 있게 된 계기는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등장한 라틴어 문법시간에서 갑자기 그가 노래를 불렀을 때였다.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라틴어 문법은 인칭과 단/복수마다 동사들이 제각기 변화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죄다 외우기 위해서는 표를 그려 놓고 머릿속으로 우겨 넣게 된다. 이후, 현재시제를 배우고, 과거시제, 미래시제 등을 배우면서 이 표들은 곱절로 불어나게 되고, 그 때부터는 변형된 동사들이 이리저리 뒤엉킨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영어로 굳이 비유를 하자면) ‘I has went’(?) 같은 해괴한 문장이 되기 마련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지 위해, 동사 변형이 나올 때마다 이 젊은 교수는 반복되는 멜로디가 섞인 노래를 선창한 후, 학생들에게 따라부르도록 했다. 처음엔 모두 쑥스러워 우물쭈물하다가, 어느 새 모두들 민망한 웃음을 띠우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놀랍게도 효과는 직방이었다. 얼마나 중독적인 멜로디였던지 중간/기말고사 시험에서도 몇몇 학생들은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젊은 교수의 노력은 라틴어 학습의 즐거움을 한층 더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바닥을 뒹굴던 천문학 교수처럼, 라틴어 교수 덕분에 교육은 (특히 대학에서) 얼마든지 부드럽고, 재미있고 그리고 자유로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강의를 할 수 있다면, 나도 그처럼 유쾌하게 강의를 할 수 있을까?
글이 너무 길어졌다. 다음 편엔 기타 치는 교수를 시작으로 몇몇을 더 소개하고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