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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크립씨 Feb 24. 2024

굿바이 토론토

2016년을 기다리며

“떠나는 것 그리고 기억하는 것”


그 날은 평소에 입지도 않는 양복을 챙겨 입고, 새로 샀던 피코트를 그 위에 걸치고 집을 나섰다. 넥타이까지 매려고 했지만, 아무리 유튜브 영상을 따라해도 소검 (넥타이를 매면 뒤로 나오는 좁은 부분)이 벨트까지 내려왔다. 결국 포기하고 넥타이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얼른 목적지로 향했다. 캠퍼스 외곽 어느 건물에 도착하니, 졸업 예정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카메라 셔터음이 분주하게 울려 대고 있었다. 나도 얼른 줄을 섰다. 내가 토론토를 떠날 날이 “공식적으로” 카운트다운되기 시작됐다. 언젠가 떠날 줄은 알았지만, 조금 더 의식하고 있었더라면 넥타이 매는 법 정도는 미리 배워 두었을 것이다.


토론토는 어차피 떠나게 될 곳이었다. 내가 도착하는 그 날부터 ‘나는 언젠가 이 곳을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대학과정이 지루하고 느껴질 때마다 토론토를 떠날 그 날을 막연하게 꿈꿨다. 그 날이 오면 무척이나 기쁘고 들뜰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막상 그 날이 다가오니 놀라운 감정이 들었다. 떠날 때는 나의 “집”을 떠난다는 아쉬운 감정이 마음에 가득 차면서도, 그 곳에서 보낸 나의 ‘몇 년’의 기억이 휘발되며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토론토에서 보낸 내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 도시 이곳저곳에 서린 내 기억에 대한 욕심이었는지, 나의 감정이 어느 쪽에 더 가까웠는지 잘 모르겠다.




대학생활은 도서관에서 지루한 시간을 버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4학년으로 올라갔을 시점에는 토론 위주의 세미나 수업이 생겼는데, 토론식 수업은 항상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특히, 4학년 때는 수업조교가 아니라 교수가 직접 토론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원을 지원하는 과정은 내 예상보다 훨씬 골치를 썩혔다. 다행히도 시간은 흘러, 토론토를 떠나는 것은 다소 불쑥 찾아왔다.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날, 대학교 행정처에서 이메일이 한 통 왔다. 졸업자 신청을 해야하며 졸업 사진도 찍으라는 공지를 보냈던 것이다. 사진관 직원에게 예약을 잡고 12월 초에 졸업 사진을 찍었을 때는 마치 졸업식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이 곳을 떠난다.


토론토대학의 켈리도서관 - 안에 들어가면 어찌나 건조하던지, 건물 전체가 하나의 큰 제습기였다.


4학년을 마쳐가던 이 시절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지원서를 보냈던 대학원 몇 곳에서 합격증이 날아왔고, 학부 과정도 기말고사만 마치면 그토록 기다리던 졸업이 목전이었다 – 원하고 원했던 ‘사학과’ 전공으로 말이다 (내 평점은 내가 부렸던 게으름의 흔적이 스며 있었다). 비록 처음 입어보는 양복은 아주 어색했고, 넥타이는 사진 기사가 매어줘서 넥타이 노트 모양이 조금 찌그러져 있었고, 머리도 정리가 안되어 덥수룩했지만, 토론토를 꽤 만족스럽게 떠날 수 있게 된 점이 무척 기뻤다. 아주 흡족했던 때였다.



졸업사진을 찍고 몇 주도 지나지 않아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렀다. 기말고사 기간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이것들을 모두 해치우면 드디어 끝’이라는 생각에 한없이 들떴는데, 막상 마지막 기말고사 답안을 제출하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들뜬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했지만, 오묘하고도 적적한 감정들이 가슴을 채웠다 – ‘더는 이 곳에 올 일은 없겠지’. 팔짝팔짝 뛰며 집에 가는 모습이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건만, 캠퍼스를 빠져나갈 때는 다리를 질질 끌고 나가는 모양새였다. 졸업은 도통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이 곳에 영영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이 곳을 아주 떠난다니. 이상했다.


마지막 기말고사 이후 며칠은 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퍼졌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마침내 토론토를 떠난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토론토를 떠나게 되면 다시는 내 삶에서 토론토에 살 일은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제서야 문득 토론토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이상했다. 내 육신은 여전히 토론토에 있었는데 말이다! 토론토에서 추억이 서린 곳들을 분주하게 들르기 시작했다. 관광객이라면 절대 가지 않을 학교의 어느 구석, 자주 버스를 타던 곳, 그저 그런 쇼핑몰 등지에서 사진을 남겼다. 몇 년이나 토론토에 살았지만, 그 곳을 떠나기 직전에 보냈던 며칠만큼이나 토론토의 모든 풍경과 거기에 서린 모든 기억을 눈에 담으려고 애 쓴 적이 없었다. 내 기억이 사라질 것이 두려워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내 욕심이었을 것이다. 토론토를 기억 저 편으로 묻을 준비가 된 것이다.


며칠 뒤 나는 토론토를 떠났다.





시간이 지나고, 졸업식 덕분에 다시 토론토와 만났다. 졸업 가운을 입던 순간, 졸업장을 받던 순간, 졸업식장에서 내 이름이 불리던 순간, 이 모든 순간들이 합쳐졌을 때는 생일을 맞아 놀이동산에 온 것만 같았다.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는 나를 보고 있자니 조금은 씁쓸했다.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마음 속에서 즐거움의 감정만 가득 차버렸기 때문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며칠도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 날 이후로 토론토에 대한 기억은 졸업장 한 장으로 덮어졌다. 


토론토에서의 기억은 지난 몇 주 동안 글을 쓰며 새록새록 살아났다. 그 곳에서의 생활 덕분에 중요한 가치들을 배웠다. 대부분 일에는 시간이 걸리니 인내하며 기다릴 것, 성취감을 느끼기 전에 겸손한 태도를 가질 것, 대가를 바라지 않고 타인을 도울 것, 내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질 것 등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모든 것들은 알게 된 것은 토론토를 떠난 후에도 한참이 지나버린 지금이다.


그 때는 왜 그리도 그 곳을 떠나고 싶어했던지. 수능을 망쳐버리고 토론토로 뚝 떨어져버린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는지, 그런 나를 스스로 아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혹은 사학과 전공의 환상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허무함 때문이었는지.


굿바이 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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