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하는 선생님 사이에서

by 간호사K

퇴근길에 비가 많이 온다고, 나가는 길목에서 만나 갑자기 집 앞까지 차로 데려다주시겠다던 J샘. 갑작스러운 호의와 배려에 고맙기도, 이런 정성을 받아도 되나 당황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감정은 기쁨이었다. 근래에야 가끔 수술방에서 만나서 대화라도 했지만 이전에는 인사만 하고, 이름만 아는 다수의 직장 동료 중 하나인 관계였다. 몰랐는데, 다음 주까지만 근무하고 사직한다고 하셨다. 4월 즈음 발리에 가서 서핑과 스쿠버다이빙을 공부해볼 요량이라고 하셨다. 이 일을 더는 -더 오래는- 못 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단다. 지금 코로나 19 때문에 그쪽 나라에서 우리를 피해서 못 갈 수도 있겠다고, 현실적이지만 슬픈 농을 던지면서.




예전에는 의욕에 넘쳐 여러 자율적 교육, 원내 활동과 위원회도 욕심이 생겼었는데 요즘은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생활을 한다. 일상적 업무도 충분히 에너지를 요하니 지친다. 무엇보다 원내에서 무언가를 이루는 것도 좋지만, 부서 특성을 살려 성과를 만들기는 막연하게만 느껴져 아직 와 닿지 않는다. 신규부터 고연차까지 동료집단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인지. 그래서 일상에서 다차원적인 개인적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는 건가. 00 병원 수술실 간호사 000. 그것만으로 정의되지 않는, 특유의 분위기나 정체성은 있되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누군가로.




일하면서 일상이 광범위하게 침해받고, 나의 정체성과 욕구에 의문이 들고, 소진되어 부정적 감정이 앞선다면 그때가 내가 직을 그만두는 때가 되겠지. 여기서 느꼈던 추억과 성취감을 마르게 하는 때가 되면 말이다.

그게 어떤 업으로 이어질지는 그때 걱정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탈출구를, 나만의 숨구멍을 찾고 있는 것일 테다. 근래에 알게 된 이웃 블로거가 말해준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성과만 바라볼 지라도 '본인만의 무언가'는 남더라고. 관심과 에너지를 주는데 그거면 충분히, 충분히 기쁠 것 같다.


나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매일의 게으른 관습과 싸우며 다채로운 정체성을 성숙시키기 위해 의식적 노력을 하는가. 때로는 과거의 나를 극복해가기도 하는가. 자신있게 나를 존중하고 내일을 기대하는가.


내 사고를 풍성하게 해 주신, 친애하는 작가가 계속 생각나는 요즘이다. 가깝게 사니 그래도 언제든, 당신이 있는 곳을 발견하면 다가가겠다고 그 마음으로 여기에 왔다. 아직 여기에 있고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내게 많은 용기와 미소를 주었다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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